“식민지 조선, 바티칸을 울리다”…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100년 전 선교박람회 재현 전시 개최

‘세상의 영혼들’ 통해 되살아난 조선의 자존심…270여 점 유물·희귀 자료 첫 공개
최희정기자 | 입력 : 2025/06/30 [17:04]

 1925년 바티칸 선교박람회 개최 100주년 특별기획전 ‘Anima Mundi(아니마문디, 세상의 영혼들)’ 포스터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나라를 빼앗긴 시절에도 세계와 당당히 소통했던 조선 천주교회의 위대한 발자취를 조명하는 특별기획전을 마련했다.


박물관은 오는 7월 5일부터 9월 14일까지 1925년 바티칸 선교박람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Anima Mundi(아니마 문디, 세상의 영혼들)’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의 후원으로 열리며, 개막식은 7월 5일 오후 3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시복 100주년 기념미사순교자 자료집 봉정식 후 박물관 특별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전시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되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1925년 바티칸 선교박람회 포스터

 

1925년 교황 비오 11세는 성년을 선포하며 바티칸 선교박람회를 개최했고, 세계 전역의 선교 지역이 참여하는 이 박람회는 산업기술이 아닌 문화와 신앙, 민족의 영혼을 전하는 새로운 방식의 전시였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도 참가를 결정했으며, 일본 산하가 아닌 독립된 ‘조선관’을 세워 식민 지배 하에서도 스스로의 정체성과 신앙을 세계에 드러냈다.

 

당시 조선 천주교회의 주교들은 일본 교회에 소속되길 거부하고 별도의 조선주교회의를 조직, 평양에서 제주까지 전국의 신자들과 함께 1천여 점의 유물을 모아 로마로 보냈다. 유물마다 이름표가 붙고 기증자 명단이 정리됐으며, 각 교구는 조직적으로 출품을 준비해 ‘신앙과 문화의 저항’이라는 상징을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는 그때의 ‘조선관’을 국내 16개 박물관, 수도원, 바티칸 민족학 박물관의 협조를 통해 재현한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전시품으로는 ▲바티칸 민족학 박물관이 소장한 숭공학교 제작 기와집 모형 ▲드망즈 주교의 사진기 및 직접 촬영한 인쇄 사진(대구대교구 사료실 제공) ▲한글 목판본 천주교 교리서 등이 있다.

 

 뮈텔, 드망즈, 드브레, 사우어 주교의 사진. ‘Le Catholicisme en Corée’, Imprimerie de la Société des Missions Etrangères de Paris, 1924

 

또한 ▲출품 기증자 명단인 ‘라마박람회 조선출품자 물품금품씨명부’ ▲15개 분류 카테고리 문서 ▲조선 천주교의 장례 교리를 담은 ‘선생복종정로’ ▲한국 최초의 양봉 교육서인 ‘양봉요지’(1918년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소장) 등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다.

 

사진기와 유물뿐 아니라 당대 선교사들이 촬영한 조선의 농경사회, 수공업, 놀이문화, 자연풍경 등이 포함된 희귀 사진 자료는 조선의 민속과 생활상을 담은 귀중한 근현대 다큐 기록으로도 가치를 지닌다.

 

박물관 측은 “이 전시는 단순히 100년 전 유물을 다시 모은 것이 아니라, 민족의 문화적 자긍심과 신앙적 저항이 어떻게 세계와 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시도”라며 “식민지 조선이 보냈던 절절한 메시지를 오늘의 우리도 국제사회에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 수많은 천주교 순교자들이 처형된 서울 중구 서소문공원 내에 위치해 있으며, 신앙과 인권, 자유의 의미를 기리는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다.

 

한편, 서울 마포구 절두산에 위치한 절두산순교성지도 한국 천주교의 또 다른 순례 명소다. 병인박해 당시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장소로, 현재는 절두산순교기념관과 박물관, 성당이 조성돼 천주교 박해의 아픔과 신앙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올해 한국 천주교회는 순교자 시복 100주년과 바티칸 선교박람회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문화행사를 준비 중이다. 서울대교구 주최로 열리는 ▲전국 성지 문화예술제 ▲순교자 영화 상영회 ▲신앙과 인권을 주제로 한 아트캠프 ▲순교성지 음악회 및 학술대회 등이 연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식민지의 억압 속에서도 세계와 당당히 마주했던 조선의 신앙과 문화. 그 영혼들이 다시 깨어나는 여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그 위대한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사진=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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