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부도위기, 유로존 붕괴로 이어질까?

김지호 | 입력 : 2011/10/05 [11:56]
‘그리스, 금년 내 부도 가능성 98%’ 이라는 초대형 악재에 세계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이 파장은 금융계를 넘어 세계 정치역학 질서마저 흔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도의 도미노 현상을 더 우려하고 있다. 그리스의 부도는 재정상태가 열악한 이태리, 스페인과 같은 국가들의 뱅크런에 의한 연쇄부도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 30년간 이룩해 온 유럽통합이 한 순간에 파열될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국민소득 3만 불의 그리스가 어떻게?

그리스를 바라보는 각국의 시선은 차갑다. 같은 유럽연합 내에서도 동정과 연민의 여론은 찾기 어렵다. 그리스 국민들은 게으르고 무책임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을 비롯한 북부 유럽인들은 그리스를 지원하려는 정부정책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모욕적인 평가가 그리스인들에겐 억울한 측면도 있다. 국민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기에 영합하여 국가를 빚더미에 쌓이게 만든 정치 지도자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1차 대전 이후 1930년 대부터 1980년까지 50년 동안 그리스의 연평균 성장률은 5%가 넘었고 평균 실질 국민소득은 세계1위였다. 하지만 1981년에 집권한 사회당(PASOK)이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무리하게 복지예산을 늘리면서 지난 30년간 국가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리스의 베니젤로스 재무부장관은 “민주화가 이루어진 1974년 이후의 37년만으로 평가하지 말고, 전후에 이룬 그 이전 60년간의 업적을 보아달라”고 호소하면서, 그리스는 그 길로 갈 것임을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막대한 빚을 떠 넘겨 주었다는 사실이다. 81년에 집권한 사회당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바로 파판드레우 현 총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복지 정책도 문제 지만 그리스는 고령화라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그리스의 합계출산율은 OECD의 평균 1.73명 보다 낮은 1.53명으로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복지 예산 중 노인연금이 비중이 70%에 육박하면서 구조가 왜곡되어 있다. 오히려 교육, 실업 등 사회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복지예산은 보잘것없다. 대부분의 지출은 공공부문의 급여와 방만한 차입으로 눈덩이처럼 쌓인 부채에 대한 이자 갚기에 쓰이고 있다. 현재 그리스의 국가부채 3천억 유로는 GDP의 두 배나 된다. 당장 10월 중순까지 국채상환을 위해 80억 유로가 필요하지만, 유럽연합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면 부도가 난다. 사실상의 부도(De facto default) 상황인 것이다. 

발등에 불 떨어진 독일과 프랑스, 한발 빼는 영국

메르켈 독일총리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사태를 방치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필요한 조치등을 다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독일의 지방자치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이 메르켈 총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현재로선 빈사상태인 그리스를 회생 시킬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지원의 조건으로 그리스 정부에 재정 지출 삭감, 세수 증대 등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미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그리스 정부는 세수 증대를 위해 특별재산세를 신설하여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 하고, 세금을 내지 않으면 전기를 끊는 막장방안마저 내놓고 있지만 전력노조와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조세폭동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나친 긴축으로 구매력을 위축시키면 경기 악화를 가속화하고 세수 감소로 인해 재정이 더 악화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최근 메르켈 총리는 고강도 긴축을 이전처럼 강하게 요구하지는 않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대출금의 안전확보를 위해 고강도 긴축을 요구하는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유로존의 중심축인 독일과 프랑스의 최대의 이해는 유로화의 유지와 안정이다. 되돌리기에는 그에 따른 천문학적인 비용도 문제지만, 너무 멀리 와버린 유럽연합의 근본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의 부도로 촉발될 연쇄 부도로 일부 국가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은 이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인 것이다. 그리스의 부도가 유로존 이탈로 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그리스에 대한 최대의 투자처인 프랑스 은행들이 줄 도산의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이들 나라들이 그리스의 회생에 대한 기대를 접은 채, 자국 은행들이 채권을 회수할 수 있도록 시간 벌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일원이면서도 자국 통화인 파운드를 고수하고 있는 영국은 한발을 빼고 있다. 캐머런 영국총리는 “유로존 회원국이 아닌 영국은 구제금융에 참여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IMF를 통한 기금에는 참여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영국에서는 잠복했던 유럽통합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80년대 대처정부에서 재무상을 지냈던 로드 로우슨은 타임즈에의 기고문에서 “유로의 설계는 예상대로 파국적인 모험이었던 터무니 없이 무책임한 것” 이라고 비난하고 캐머런 수상에게 유럽통합 과정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완전한 정치통합이 없는 유로존 프로젝트는 눈물로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로존 과연 파열될까?

현재로서는 유럽중앙은행의 국채매입이나 유로존 회원 17개국이 공동으로 발행하는 유로본드 외에 그리스의 부도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없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가 상충되어 실현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따라서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 있는 한 자체적인 해결방법은 없어 보인다. 금리와 통화가치를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비니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즈의 기고문에서 디폴프 선언과 유로존을 탈퇴하여 이전 통화인 드라크마로 돌아 가는 것만이 그리스의 유일한 대안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하면 통화가치 하락으로 경쟁력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그리스는 내심 이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현지 언론 카티메리니는 정부가 유로존 탈퇴에 대한 찬반투표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그리스 정부는 지난달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대변인은 유로존 탈퇴 여부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했지만, 이를 곧이 받아들이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리스의 부도 가능성 98%를 유로존의 파열 확률 98%로 확대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유로는 지난 30년간 통합과정의 그 어느 때보다 위기에 처한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