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통 NHS에 메스를 대는 영국 정부

김지호 | 입력 : 2011/11/04 [10:25]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이상적인 의료 시스템으로 인정받아 온 영국의 국가건강서비스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 캐머런 수상이 이끄는 보수-자민 연립정부의 주도로 하원에서  NHS 개편법안이 지난 10월 상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은 상원의 위원회에서 상세한 검토를 거친 후 입법화 될 예정이다. 

▲  NHS 에서 운용하는 앰블란스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개편법안은, 지난 60년간 사소한 변화는 있었으나,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기본적인 틀을 수정한 파격적인 개혁안이다. 2년여에 걸친 오랜 논란과 수정 끝에 마련된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개편안이 내포한,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시스템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고, NHS를 지키려는 국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지난 9월 하원이 법안을 전격적으로 통과 시키자, 의료인들과 시민들은 격렬한 시위와 함께 50만명 이상이 화급하게 서명한 개편안 부결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상원에 제출했었다. 상원은 통상적으로 사회 구조의 급진적인 변화에는 제동장치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상원에서는 이러한 국가의 중추 시스템을 수술하는 혁신적인 법안에 대해서는 추가수정이나 재검토를 위한 반려결정이 나올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법안이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의외로 쉽게 통과 된 것은, 이대로는 더 이상 NHS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할 수 있다. 

고령화에 따른 NHS 비용의 급격한 증가 

그 주된 배경으로는, 의학의 발달로 값비싼 신약들과 인구의 고령화에 따라 의료비용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현실적인 고민을 들 수 있다. 또한 중앙 집중화로 비대해진 NHS 조직의 관료주의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NHS는 정규직원만 약 120만명으로 전세계에서 5위 안에 드는 대규모 조직인데, 의사, 간호사, 기술자를 비롯한 임상근무자를 제외한 관리직이 절반정도로 약 60만명에 달한다.

원래의 개편안은 1948년 NHS 탄생 시 법으로 명시한 ‘보건부 장관은 국민에게 건강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구절을 삭제하여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료서비스의 민영화 계획’이라는 비난이 거세지자, ‘건강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확보한다’로 수정했다. 국가가 세금으로 NHS를 직접 운영하던 기존의 시스템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일부 기능을 민간에 위임할 수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법률전문가들과 자문해본 결과, 얼핏 단순해 보이는 구절의 변경으로 정부가 NHS에서 손을 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정부는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이는 향후 국민 건강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두고 끊임없는 논란거리로 비화될 여지가 있다.

NHS의 구조와 시스템

현재의 NHS의 체계는 보건부 장관 휘하에 10개의 전략보건당국인 SHA(Strategic Health Authority)가 151개의 기초의료트러스트인 PCT(Primary Care Trust)를 지휘 감독하고, PCT가 환자를 돌보는 병원과 GP(일반의원), 치과의원, 지역보건단체들에 재원을 분배 지급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PCT는 NHS의 핵심 관리조직으로서, NHS 전체 예산 약110억 파운드(한화 약200조원)의 80% 정도를 PCT가 관장하고 있다.

진료체계는 크게 1차 진료소로서 일반병원 개념인 GP Surgery와 2차 진료를 하는 종합병원 역할의 Hospital로 구성된다. 환자는 일차적으로 등록한 GP Surgery에서 가정의학전문의인 GP(General Practitioner)에게 진료를 받고, GP가 분야별 전문의의 추가진료나 검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소견서와 함께 Hospital로 보내는 시스템이다. 응급환자는 대부분의 Hospital에 설치되어 있는 A&E(응급센타)로 직행한다.

Hospital의 의사들은 책정된 급여를 받는데 비해, GP Surgery에는 치료 건수가 아닌 등록된 인원의 수에 따라 PCT가 관리비용을 지급한다. Hospital에 보내는 비율이나 처방한 약값이 적정수준을 넘어가면, 그에 따라 일정비율로 비용이 차감된다. 따라서 GP는 등록된 환자들을 최대한 건강하게 관리함으로써, 진료횟수를 줄이고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으로 인해 민간병원의 병폐인 수익을 위한 과잉진료나 불필요한 처방의 유혹 없이 최선의 진료를 추구할 수 있고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관계가 구축된다. 

개편안의 골격과 목적

개편안의 골격은 기존의 SHA와 PCT를 모두 폐지하고, 이 기능을 GP가 중심이 된 컨소시엄 형태의 임상 위원회인 250개 정도의 CCG(Clinical Commissioning Groups)를 구성하여 대치한다는 것이다. CCG는 보건부 장관 휘하의 국가 위원회(National Board)로부터 지휘를 받고 자금을 할당 받아 Hospital 등의 진료기관에 배분한다. 반면 GP Surgery나 치과의원, 중환자 관리와 같은 특별서비스에는 국가 위원회가 CCG를 거치지 않고 비용을 직접 지급하는 2열 구조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가능한 한 비효율적인 병원들의 숫자를 줄여 나가면서 가벼운 수술과 같은 분야를 GP Surgery에 이양하여 낭비를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기존의 PCT가 하던 관리기능을 GP를 중심으로 한 임상인력의 자율적 운영 맡김으로써, 관료주의를 개선하겠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개편안의 핵심 목표는 GP Surgery에 비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Hospital에 자율성을 주면서 경쟁 개념을 도입하여 예산을 절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추진일정과 의료계의 반응

캐머런 정부는 개편법안에 따른 시스템이 2013년부터는 본격 가동되도록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노동당의 앤디 번함(Andy Burnham) 예비 보건부 장관은 “상원에서 법안의 수정을 위해 한 줄 한 줄까지 토론하면서, 수개월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GP 연합회인 Royal College of GPs의 클레아 제라다(Clare Gerada) 회장은 “건강 서비스를, 돈을 더 내고 자리를 배정받은 승객들의 줄과 그렇지 못해서 먼저 타는 자가 임자인 줄, 두 줄로 세우는 저가항공과 같이 만들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녀는 또 “개정법안은 GP들로 하여금 환자를 놓고 최선의 진료제공과 경제적 목표 달성이라는 상반된 목표 사이에서 타협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보건부 대변인은 “저가항공 비유는 그야말로 넌센스, 새로운 NHS에서는 모두가 일등석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반격했다. 

캐머런 수상은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거인 NHS에 메스를 대는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후일 역사에 60년 전통의 NHS를 붕괴 시킨 원흉, 아니면 붕괴위기의 NHS를 구한 위인으로 기록될지 아직은 모른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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