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에 격돌하는 유럽 3강

김지호 | 입력 : 2011/12/04 [14:32]
유럽연합은 지난 20여 년간 주축인 독일, 프랑스와 영국의 삼각대 위에서 안정을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이 3강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유럽연합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이는 유럽의 재정위기 해결방안을 놓고 자국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면서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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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쟁점은 금융거래세(FTT)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역할이다. 금융거래세(FTT)의 도입은 영국의 필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프랑스가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이 제안하여 일명 ‘토빈세’라고도 불리는 금융거래세는 국제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여 투기목적의 자금이동을 제어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투기자금이 유럽 재정위기를 촉발시켰다고는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거래세가 핫이슈가 되어 테이블에 오른 이유는 막대한 자금을 비교적 손쉽게 장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EU 집행위는 현재 금융기관간 거래의 85%에 0.1%의 소액세율만 부과해도 연간 570억 유로의 세금을 걷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그리스의 국가부채 규모가 10월말 현재 약3500억 유로인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인 것이다. 

금융거래세를 놓고 격돌하는 영국과 독일

그러나, 금융업 비중이 GDP의 약9%를 차지하고 연관산업까지 치면 무려 30%에 달하는 영국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캐머런 영국 총리는 “영국에게 금융거래세를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80% 이상의 세금을 영국이 부담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에 치즈세를 만들겠느냐고 묻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외환거래량이 가장 많은 곳은 영국 금융가이며, 전세계 외환거래의 36.7%가 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2.1%와 3%에 불과하다. 영국의 오스본 재무장관은 “독일의 금융거래세 주장은 영국의 심장을 조준한 탄환”이라고 적대감을 나타냈다.

메르켈 총리가 속한 기독교민주당(CDU)의 볼커 카우더 위원은 “영국이 자국의 이익만 돌보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 유럽에 대한 이기적인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메르켈 독일총리도 “유럽연합의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국의 금융산업을 희생해서라도 금융거래세를 도입해야 한다”며 영국을 압박했다.

토빈세의 본래의 목적은 세금 없이 치고 빠지는 단기자금을 규제하여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국은 독일과 프랑스가 주장하는 금융거래세는 ‘토빈세’가 아니라, 통행료를 걷는 ‘로빈후드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톨게이트가 전세계에 모두 함께 설치되지 않는다면, 공연히 행인들만 다른 곳으로 내쫓을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은 최악의 경우 유럽과 결별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국의 흥망이 걸린 금융거래세를 거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유럽중앙은행 역할론으로 재 점화된 독일과 프랑스 갈등 

독일의 반대로 수면아래로 들어갔던 유럽중앙은행(ECB) 역할론을 프랑스가 다시 꺼내면서 양국간의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 이태리까지 상황이 악화되면서 자국의 국채금리가 급등하게 되자, 다급해진 프랑스가 ECB에게 이 국가들의 국채를 사들이라고 압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발레리 페크레세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ECB의 역할은 유로화 안정뿐만 아니라 유럽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며, 이를 위해 ECB가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은 위기 국가들의 합당한 자구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ECB의 역할 확대는 위기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프랑스의 주장을 반박했다.
 
독일이 ECB의 채권매입을 위한 유로화 추가발행을 반대하는 이유는 자국의 인플레이션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도 프랑스와 같이 ECB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파운드를 사용하므로 유로화의 인플레이션 문제에는 한발 비켜 서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취임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자구책 마련을 촉구하면서, "ECB의 주 역할인 물가안정에 실패하면 급격히 신뢰가 추락할 것"이라며 최대 출자국인 독일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감정싸움으로 번진 영국과 프랑스의 설전 

프랑스는 영국이 위기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면서 간섭만 하고 있다고 불만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데 짜증난다, 입 다물라"고 강펀치를 날린 바 있다. 그는 또, 영국이 섬나라여서 유럽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모욕적인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당신과 메르켈은 이태리와 그리스의 정권을 교체하려고 시도한 것이 명백하다. 이것이 정당한 것이냐?”고 따진 폴 메이슨 BBC 뉴스나잇 편집자에게 “당신은 미리 그렇게 단정해놓고 묻는 것 같은데, 틀렸다, 그런 시도가 없었다”고 반격하면서, “당신이 섬나라에서 왔기에, 유럽건설의 미묘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비아냥댄 것이다.
 
그의 무례한 발언에 영국이 발칵 뒤집혔다.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스 의원은 “사르코지는 유럽에서 영국을 제외시키려는 새로운 드골”이라며, “그는 우리가 말하는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고, 오직 우리 돈을 손에 넣으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비난했다. 1963년에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초창기 유럽경제공동체인 EEC에 영국이 가입하려 하자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저널리스트 다니알 하난은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칼럼에서 “사르코지가 맞다, 우리 섬사람들은 EU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며, “그들은 왜 부채를 더 많은 부채로 처리하는지, 그리스가 더 많은 빚을 얻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 유로화 유지를 위해 왜 유럽인들의 이익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파운드를 쓰고 있는 영국이 그들로부터 왜 청구서를 받고 있는지 진정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ECB 링 위에서 벌이는 삼파전

실제로, 영국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내심 바라고 있는 입장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위기를 계기로 유로존 국가들의 강한 결속을 부르짖으며 영국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ECB를 이들의 대리자로 간주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9월 영국에 불리한 금융규제안을 내놓은 ECB를 유럽법정에 제소했었다. 또한, 독일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ECB에 대한 프랑스의 불만도 커지면서 양국의 공조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ECB라는 링 위에서 독일, 영국, 프랑스가 삼파전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에 누구의 손이 올라갈지 현재로선 속단하기 어렵지만, 지난 세기의 대전과 같이 독일과 영국의 양강구도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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