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우리에게 고구려는 무엇인가?

역사상실과 함께 탈민족주의는 영토를 내주는 명분이 될 수 있다
편집부 | 입력 : 2008/03/21 [03:10]
시인 김지하-역사학자 윤명철 대담
 
김지하 시인(62)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소식을 접하고 “내 혼이 빠져나가는 듯했다”고 휘청거렸다. 김 시인은 한국과 중국 간 고구려사 논쟁의 본질을 ‘21세기 동아시아의 중심을 선점하기 위한 역사전쟁’으로 규정했다. 미래의 강자가 되기 위해 왜 과거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가. 역사전쟁이라면 무엇을 전략과 전술로 삼아야 하는가. 고구려는, 그리고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문명의 역사화’에 관심을 기울여온 시인과 ‘역사의 문명화’를 추구하는 역사학자 윤명철 동국대 겸임교수(49・고구려연구회 이사)가 2003년12월 24일 경기 고양시 일산 김지하 시인의 자택 거실에서 가졌던 대담내용을 중국의 제국주의적인 팽창정책에서 기인한 동북공정을 뒤틀린 차원의 중국통합과 한반도침략 전략으로 보고, 민족주의적인 대응차원에서 정리해 보았습니다.[편집자 주]

● 21세기와 역사전쟁

▽윤명철=고구려는 기원전에 세워진 나라이고 멸망한 지 130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와서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진 듯합니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진행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도 있을 것 같은데요.
 
▲   김지하 시인 
▽김지하=나는 21세기적인, 소위 숨겨져 있는 역사의 의지,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섭리 같은 것이 움직여 새 차원이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 흔히 문명의 전환기라는 표현을 쓰는데 나는 문명의 끝과 시작이 맞물려 있는 ‘종시(終始)’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윤=지금은 고구려가 멸망한 7세기 후반과 상황이 비슷합니다. 고구려와 수・당간의 전쟁은 동아시아적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이었지요. 전쟁이 끝나고 당시 동아시아의 강국이었던 고구려는 역사의 생명을 상실했고 고구려에 밀리던 중국은 완전한 통일을 이루어 패자(覇者)가 됐어요. 그 무렵인 670년 일본 열도는 우리의 구심력에서 벗어나 일본이라는 국호를 채택하면서 3개 지역체제가 형성됐습니다.

▽김=20, 30년 전 한국은 국가의 비전이 산업화와 민주화였고 이 두 가지가 싸우는 형국이었습니다. 나는 이 두 가지의 시효가 이제 마감됐다고 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의 비전은 무엇일까요. 크게 보면 하나는 흔히 얘기하는 동아시아 물류(物流)의 허브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류를 통해 제시되는 문화교류, 즉 문류(文流)의 허브가 되는 것이지요. 나는 틀림없이 한국이 동아시아의 허브가 되리라고 봅니다.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혁신운동이나 사업은 반드시 과학의 향기, 문명의 향기가 크게 일어났던 지역의 약간 옆에서 시작됐거든요. 큰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명의 전선(戰線)이 있는 지역, 비슷하면서도 작고 다른 향기가 나는 곳이 고구려였습니다.

▽윤=21세기 동아시아는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중일 3국이 긴박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지요. 역사전쟁은 역사의 자기소유를 통해 문화적 패권을 쥐려는 것이고, 정치 경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려는 것입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동아공영권을 실천하기 전의 단계로서 반도사관(半島史觀・한국의 역사적 영역을 한반도만으로 좁혀 해석)이나 만선사관(滿鮮史觀・일본의 만주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주사를 중국사에서 분리, 만주와 조선을 한 체제 속에 묶는 사관)을 내세웠던 과거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중국은 동아시아의 패권 장악뿐 아니라 중화질서를 재현하고 조선족 등 소수민족의 반란을 약화시키기 위한 명분을 위해 역사전쟁에 매달리고 있어요.

● 역사 전쟁은 사관(史觀)의 싸움

▽김=청춘기에 받은 고통은 평생 갑니다. 한국이 동북아의 허브로 막 일어서려는 의미심장한 시간에 고구려사가 저렇게 되면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지요. 중국과의 역사전쟁은 사관으로 싸워야 합니다. 고구려사를 회복하려면 어떤 해석학이 필요한가를 생각해야지요.

▽윤=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 사학계는 스스로 잉태한 사관이나 사상이 없습니다.

▽김=행동이든 삶이든 우리 나름의 중심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주장하면 국수주의라고 내치는데 그것만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지요. 내 껍데기가 몇 개냐의 문제인데, ‘가이아 이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인간이 자기의 막(膜)을 가지고 있고 막이 자기 정체성의 근거라고 했습니다. 나의 인체는 가죽이라는 막이 있고 민족에 대해서는 민족의 막이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주의자이자 아시아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세계주의자입니다.

▽윤=고구려 문제도 마찬가지겠군요. 고구려 문제를 민족적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동시에 세계사적 시각에서 보면서 그때 그때 필요한 전략과 전술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화를 부정해서도 안 되지만 우리를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탈민족주의라는 신제국주의에 투항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역사는 미래다

▽김=지금은 혼란의 시기입니다. 이에 대해 새롭고 과학적이고 통합적인 처방이 나와야 하는데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불을 붙여주는 문화이론, 다시 말해 사상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생명 평화 조화의 세 가지 덕목입니다. 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는 다양성이 살아있는 문명으로 이 세 가지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고 봅니다.

▽윤=고구려는 한민족사에서 반도사관을 완벽하게 극복한
▲ 윤명철 동국대 교수
나라였습니다.
고구려는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지배했던 나라로 동아시아의 모든 문화가 모이는 중심지였습니다. 고구려인들에게는 선택받은 천손(天孫)민족이라는 자부심과 역동성, 탐험정신이 있었어요. 저는 고구려사를 통해 우리의 사관을 형성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를 ‘해륙(海陸)사관’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김=역사는 과거의 학문이 아닙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만 가지고 싸우면 안 됩니다.

▽윤=저는 역사학이 미래학이라고 봅니다. 한국 사학계는 사실을 찾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택한 사료라는 것이 우리가 아니라 중국인들이 취사선택한 것이 주가 됐어요. 그러한 비아(非我)의 기록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사실 외에 행간에 숨어있는 진실과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김=우리는 신화를 읽음으로써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잘 하지 않습니다. 신화도 역사입니다. 우리가 환상이나 신화를 대할 때도 내적, 무의식적 상징적 전개를 읽고 동시에 당대의 역사, 또 생명의 여러 양태들을 짚어나가야 하지요. 우리가 세계사 전체에 대해 방향이나 원형을 제시할 수 있는 첫걸음이 오늘날의 고구려 문제라고 봅니다.

▽윤=지금의 고구려 논쟁이 100년 후가 되면 효력 있는 사료가 됩니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영토를 내주어야 하는 명분을 주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상생(相生)과 평화를 위해서도 우리는 역사를 지키고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료]1.생명과 평화운동의 문화원형(김지하 시인)

지금의 ‘대혼돈’, 인간내면의 도덕적 황폐,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시장실패와 그로 인한 민족간의 빈부격차의 심화, 전면적 지구생태계 오염, 온난화 등 기상이변, 테러와 전쟁 그리고 앞으로 100여년 동안의 폭염이 지구를 강타한다는 예측과 기괴하고 치료불가능한 대병겁(大病劫)의 도래! 아직도 유효한 주역과 지금 오고 있는 정역 사이의 선후천 관계의 역, 일종의 ‘간역(間易)’, 주역과 정역을 종횡으로 하는 ‘등불과 기둥의 새 역(燈柱新易)’이 명백하게 예언되고 있다.

예언대로라면 ‘새로운 팔괘’의 출현이 곧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천주주문(侍天主呪文)의 단전법(丹田法)이라는 ‘궁궁’ 수련체계의 등장과 함께 이것은 우선 새로운 세대의 원형, 문화원형으로서 ‘태극궁궁’의 재현(再現)일 것이다. 그것은 이제 아마도 ‘태극궁궁’이 아닌 ‘궁궁태극’일 것이다.

그와 함께 ‘생명과 평화의 길’은 정규적인 학술문화의 연찬을 통해 유럽의 비주류 생성학, 혼돈학과 생태학을 동양적 변화의 과학인 역(易사상), 기철학과 화엄 및 선(禪佛敎)의 전통, 노장학과 그리스도교, 모슬렘을 오랜 선도풍류의 생명학의 전통 위에서 창조적으로 결합하고 이를 촉매로 한 고대 동아시아 문예부흥과 반관료주의적 문화혁명, 평화와 자발성에 의한 세계문화대혁명을 통해 우주생명학으로 대차원 변화함으로써 탁월하고 통합적인 과학 바로 그 대혼돈을 처방•치유할 새 과학을 성립시켜야 한다.

이것은 독공공부와 계시의 합발에 의한 큰 앎, 바로 ‘만사지’일 것이니 우선은 생명학, 우주생명학의 연찬이라고 부르자. 유념해야 할 일이 있다. 시천주 조화정 즉 모심과 살림 이후와 만사지 사이에 ‘영세불망’이 끼어있는 점이다. 평생을 잊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니 학술문화•수련실천 모두에서 ‘그 변화를 밝히고 밝히며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으면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 지극한 기운으로 변화되고 지극한 차원에 가서 지극한 성스러움에 이르리라.(故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至於至聖)’

다시 앞으로 돌아간다.

강증산이 하늘이 내린 율려라고 부른 앞 주문, 강령주문(降靈呪文)이다. ‘지극한 기운이 지금에 이르러 내게 크게 내리시길 원하옵니다.(至氣至今願爲大律)’ 명심해야 할것은 강증산(甑山)이 율려라고 까지 부르고 김일부(一夫)는 ‘여율’이라고 전복시킨 바로 그 ‘지극한 기운(至氣)’ 즉 한울님 자신이라는 새 패러다임이 다름 아닌 ‘혼돈한 근원의 우주질서(混元之一氣)’라는 점이다.

자기조직화에서 창조적 진화로 비약하는 조건이 바로 신의 이 혼돈성과 탈혼돈성, 또는 혼돈 차원의 그 나름의 질서인 점이다.

생명과 평화운동의 문화원형은 한마디로 ‘한’이다.

삼축과 이축 사이의 관계 자체가 ‘태극궁궁’이요 ‘혼돈적 질서’다. 마치 음악에서 율려와 여율에 비길 수 있다. 또는 황종율(黃鍾律)과 협종율(夾鍾律)에 견줄 수 있다.

그러나 ‘황종자리에 협종이 들어가 다스리면 이롭다는 곤괘(坤卦•黃裳元吉)’의 비밀, 코스모스 자리에 카오스가 들어가 중심 아닌 중심, 해체의 촉매가 되면 매우 길조라고 보는 이 이중성, ‘아니다•그렇다’의 생성관계는 사실 산조(散調)나 속악(俗樂)의 정간보(井間譜)에서 하늘(天)과 땅(地) 사이에서 즉흥적으로 부산히 움직이는 중심아닌 촉매로서의 ‘본청(本淸)’이 그 숨은 차원에서 ‘황종적 협종이라는 드러난 차원을 얼마만큼 대체하고 새로이 포괄하는가 하는 그 차원변화에서 비로소 현실화 된다. 그러나 물론 현차원은 다 그 나름으로 창조하겠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중성의 모순어법이나 역설적 진리, 두 차원의 생성변화 역시 문제는 그 창조의 주체로서의 한 개인(各知•各各明의 그 各과 個)의 개별적 조건과 특수한 실존 속에서 그것이 그러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생명과 평화의 길’의 연찬에서 탐색되고 합의된 새 문명론의 여러 기념비들이나 ‘궁궁태극 원형운동’에서 파악되고 감지된 실물적인 진리 등이 그 주체들의 구체적 삶의 개별성(한) 안에서, 신체적 감각적 욕망의 삶 안에서(리비도), 예컨대 과학(고기토)과 종교(아우라)가 함께 생성하는가에 있다. 그리고 신체 안(한)에서 에코와 디지털이 이중적으로 교호결합한다. 천부경에서 ‘사람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다(人中天地一)’라고 했을 때 ‘사람 안(人中)’이란 구체적 삶을 구체적으로 살고 구체적으로 창조하는 구체적 신체적 행위(한) 자체인 것이다.

‘한’은 ‘낱(各•個)’이다. ‘한’은 ‘온(全)’이다. 그리고 ‘한’은 ‘중간(관계)’이다. 동시에 ‘한’은 ‘빈 칸’이요 ‘무궁’이요 ‘공’이며 ‘무’이며 ‘허’요 ‘자유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한’의 개념은 그것이 곧 ‘주체(칸•汗)’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은 ‘자기조직화’요 ‘내부공생(內部共生)’이며 ‘혼돈적 질서’다. 왜냐하면 ‘한’은 ‘개체성(한-낱•各)’을 잃지 않는 ‘분권적(한-중간•관계)’, ‘융합(한-온•全)’이기 때문이다. ‘개체성을 잃지않는 분권적 융합’이 곧 자기조직화, 창조적 진화의 기초요 내용이다. ‘한’은 또한 ‘무궁’이고 ‘공’이고 ‘허’이며 ‘우주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삼축도 이축도 ‘한’ 사람 안에서 ‘한’을 구체적으로 공부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참다운 ‘한’의 문명론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것은 운명이다. 동학의 ‘옮길 수 없음(不移)’은 ‘개인들이 제 나름대로 깨달아 앎(各知)’을 뜻한다.

이 문화원형의 기조연설을 마지막으로 나는 당분간 담론행위를 중지할 것이다. 아마 항구적일 것 같다.

내가 이제 시작해야 할 것은 두가지, ‘동화’를 쓰는 것과 ‘세계기행’이다. 나의 세계관을 동화를 통해 이제부터의 주체인 청소년과 젊은 주부들과 아동들의 신화적 상상력의 차원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리고 우리가 정규•비정규, 삼축•이축을 통해 탐색•연찬해왔고 또 하고 있는 모심, 살림, 생명학•우주생명학, 그리고 ‘궁궁태극’, ‘혼원지일기’를 기준으로 전세계의 모든 문명과 비밀의 자리들, 그 숨겨지고 드러난 생각과 삶과 창조의 자리에서 무엇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판단하고 예측하고 또 배우고 싶다. 나의 세계기행이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공부요 창조다. 그림과 시는 계속 쓸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발표는 보류된다. 그러기에 올 겨울, 내년 봄 이전까지 여러 권의 책, 시집과 산문집, 미학강의록의 출간을, 그리고 난초와 달마전시회가 내년 초에 있을 것이다.

동화와 세계기행을 통해 나는 다시 나고 싶다. 나를 이끌어 온 원형•기준•담론의 세계화를 통해 참다운 ‘한’이란 이름의 이 지구와 우주 속에서 ‘한’ 한국인으로 본래의 나로 다시 나고 싶다. 나의 이름도 ‘한’이고 나의 새로운 한글자호(自號)도 ‘한’이기 때문이다.

내 본디 이름은 ‘꽃뿌리한’이다. 꽃뿌리 영(英), 한 일(一), 金英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묵화 옆 화제 밑에 사용하는 내 한글 자호(自號) 또한 ‘한’이다. ‘한 허름한 사람(一散人)’이 그것이다. 산인이란 허름하고 허튼 사람, 벼슬도 권위도 명성도 관계없는 그렇고 그런, 사람(散人)이로되 한 허름한 사람, ‘一散人’이란 뜻이다. 나의 노년에 이 이상의 마음편한 지위 또는 실존도 없다. 허튼삶(散人)은 혼돈이요 궁궁이며 ‘한(一)’은 그 나름의 질서이니 새로운 팔괘, 새로운 태극이다.

바로 이 믿음으로 내년, 내후년까지의 당 법인의 포럼활동에 관하여 가능한 한, 내가 도울 수 있는 작은 일들은 계속 돕도록 할 것이다. 약속한다.  

단기4337(2004)년 양력 10월5일 일산 교하에서..


2.그리움 - 고구려 여인(윤명철 교수)

아름다운 하늘아래 아름다운 산과 들 강과 호수 초원과 삼림이 있다. 그리고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 아름다운 온갖 나무들과 풀, 꽃들이 있고, 사슴과 말, 곰과 호랑이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 아름다움 덩어리의 한자락에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빛의 사내와 물신의 따님이 지아비와 지어미로 만나 인연을 짓고, 그 아이가 나라를 세웠다. 고구려는 이름 그대로 높고 아름다운 나라이다.

사람들은 이 고구려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 단순한 역사로가 아니라, 단순한 나라로가 아니라 뭔가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로 대하고 있다.

어떤 이는 좁디 좁은 한반도라는 땅과 운명에 넌더릴치며 극복하는 대상으로. 실제로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에서 가장 너른 영토와 힘을 지닌 큰 나라였다. 또 어떤 이는 언제부터인가 위축된 근원의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모델로 삼기도 한다.

고구려는 자신들이 하늘의 자손이며 하늘의 의지를 실천한다는 천손의식이 매우 강했다. 그야말로 정체성에 충실한 역사를 운영해왔다. 나는 이 모든 까닭을 포함해서 그들의 무한한 자유의지와 미의식에 반해 꿈으로 희망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나 옛 고분 안에서 1,500여 년 전 만에 환생한 여인을 본 후로는 늘 그리움에 차 고구려의 언저리를 빙빙 돌고 있다.

촛불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공간에서 애교머리를 한 여인들이 땡땡이 무늬가 찍힌 옷을 입고 한손을 쳐들어 하늘자락을 날린다. 터져 나오려는 신명을 삭히며 웃음기를 띄운 채 춤을 춘다. 활달함과 자유로움, 멋과 풍류가 흐른다. 동글지만 비교적 갸름한 윤곽에 쌍커풀은 지지 않았지만, 크고 새까만 눈알이다. 코는 크지 않지만 오똑 솟았고, 연지를 바른 입술은 윤곽이 뚜렷하고, 귀가 복스럽게 생겼다. 늘씬한 키에 멋있고, 화려한 옷을 입었다.

고조선의 전통을 이어받아 양잠기술이 발달해서 고운 비단에 색색의 자수를 놓고,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꾸민 옷을 입었고, 삼베 양가죽 돼지가죽 곰가죽 표범가죽 옷도 즐겨 입었다. 담비가죽은 바다건너 오나라의 손권에게 보낸 적도 있다. 그녀의 주위에는 우리가 잃었던 생생한 기가 흐르고, 고아한 품위가 감싸고 있다. 물신의 피가 흐르는 탓이리라.

1500여년 만의 재회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린 나는 만주벌로, 평양으로 찾아가 몇 번을 더 만났고, 만나지 못한채 조각난 반도에 쳐박혀 있을 때는 책상 앞에 놓아둔 그림을 보면서 그리움에 사무쳐 있다.

그녀를 통해서 고구려는 역사로만이 아닌 삶으로 다가왔고, 관념 아닌 실재로 대해왔다. 현실을 넘어선 이상으로 다가왔다. 오늘도 언젠간 만주벌에서 자유롭게 그녀를 만나 살을 섞으리라는 念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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