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내리는 눈

귀신도 뺨치는 영국의 제갈공명 일기예보
런던타임즈 | 입력 : 2008/04/07 [09:39]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의 ‘삼남에 내리는 눈’ 중에서 [즐거운 편지]

 
▲새계 최고의 전경을 자랑하는 템즈강이 내려다 보이는 리치몬드  언덕   ©런던타임즈
▲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연상시키는 리치몬드 공원의 산책로    ©런던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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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유명한  리치몬드 공원내 이사벨라 가든      ©런던타임즈
▲  눈 속에 핀 들장미  ©런던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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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으로 유명한 리치몬드 공원의 사슴들도  눈 맞이를 나왔다.     ©런던타임즈
▲ 사슴무리와 산책객들    ©런던타임즈
▲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논서치 파크의 소나무   ©런던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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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날씨는 변화무쌍으로 악명이 높다. 햇볕이 쨍쨍하다가도 느닷없이 소낙비가 한바탕 휘젓고 지나가기 일쑤다.

처음 영국에 도착한 후 사람들의 혼을 빼놓기 충분한 영국의 날씨변화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웬만한 비에는 그냥 맞고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덕분에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이’ 잡는 살충제 광고가 텔레비전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한바탕이 아닌 하루에 서너 차례 날씨가 변한다면 가장 곤혹스러운 곳이 다름아닌 일기예보 담당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일기예보는 그 정확도를 자랑한다. 엉터리 일기예보로 구설수에 오르는 한국에 비하면 영국 일기예보는 신통 방통의 수준을 넘어선다.

국지적 일기 변화까지 정확히 예측할 정도인 이들의 기상관측 방법은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듯도 싶다.

어젯밤 늦은 시각, 염화 칼슘을 도로 위에 뿌리는 것을 보며 무슨 일인가 했다. 꽃샘추위가 여느 때보다 길었지만 요즘은 봄 꽃들이 만발한 바야흐로 봄 날씨 그대로인데 잘못 본 것 아닌가 눈을 의심했다.

일요일 늦잠을 자곤 하던 아이들이 새벽같이 일어나 북새통을 이룬다. 눈이 왔단다. 한 겨울에도 보기 힘든 런던의 눈이 4월에 그것도 차를 덮을 정도로 쌓여있고 아침이 되어서도 내리고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공원으로 유명한 리치몬드 공원에는 교통경찰이 나설 정도로 눈 맞이를 하러 나온 일요 방문객들로 주차할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포근한 뉴스 하나 없이 한겨울을 보냈던 시민들이 봄날 만개한 꽃들 위로 내리는 눈에 이국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어릴 적 첫눈이 오면 장독대에 쌓인 눈을 한 움큼 짚어 늦둥이 아들에게 먹여주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영국의 눈은 아직 깨끗하다. 먹을만하다. <런던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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