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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0.18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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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의 관우를 이제는 치우천왕으로 바꿀 때!
동방의 진정한 군신은 배달국 14대 자오지환웅인 치우천왕
 
박정학 (사)한배달 회장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의 환승역인 동묘역 부근에 관우의 사당인 관왕묘(關王廟) 또는 무묘(武廟)라고도 하는 동묘가 있다. 공사 중이라 모셔져 있다는 장수들의 상을 보지는 못했지만 관우, 장비 등 중국 장수들을 모시고 제사를 올린다는 설명에서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내가 역사학자로서 치우학회 회장을 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무묘라면 당연히 붉은악마의 상징이며 승리의 신인 우리 치우천왕을 모셔야지 중국 촉나라 장수 관우와 장비라니?”라는 생각이 들어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관왕묘는 서울에 동묘와 남묘(사당동)가 있고, 안동, 성주, 남원, 강진, 전주, 하동 등 지방에도 남아 있다고 하니 더욱 그러했다. 
 
▲ 동묘는 가짜 군신인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다.     © 역사복원신문

 
  무묘(武廟)란 전쟁을 아주 잘 했거나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준 조상을 제사하는 곳이다. 우리의 조상 중에는 전쟁을 너무 잘해 중국인들조차 군신(軍神)으로 받들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출정 전에 그의 사당에 여러 번 제를 올렸고, 현재도 장승이나 치미로 마을과 가정을 액운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치우천왕이라는 분이 계시다. 치우천왕은 우리 배달국의 14대 자오지 환웅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뚝섬에 있던 그의 사당은 일제 때 파괴되어 아직도 복원되지 않고 있어, 우리는 진정한 군신인 치우천왕에게는 제사를 모시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 장수들에게는 여러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는 행동이다. 그리고 2002 월드컵 직후 이어녕 전 문광부 장관이 모 TV에 출연하여 "붉은악마가 치우천왕이라고 하는데 치우천왕이 누구냐?"고 묻는 아나운서에게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라며 우리 조상을 중국 신화 속의 인물로 만드는 무지한 답변을 하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반면,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1995년 북경 부근에 있는 하북성 탁록에 귀근원(歸根苑)을 건설하고 그 안에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을 만들어, 그 동안 여러 사서에 구려의 임금, 동이의 수령으로서 지나족의 시조인 헌원에게 대들어 반란을 일으켰던 흉포한 반란자로 기록하였고, 또 그렇게 알려져 있던 치우천왕을 이제는 중화민족의 공동조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는 대단한 아이러니다. 아니 심각한 문제다. 명나라의 강요로 관왕묘를 만들던 조선왕조 때도 아닌 지금 우리는 중국의 속국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조상을 내팽개치고 중국 장수들을 제사하고 있는 반면, 중국에서는 훌륭했던 우리 조상을 자기들 조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삼조당에 모셔져 있는 치우(왼쪽), 황제헌원(중앙), 염제신농(오른쪽)     © 역사복원신문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우리에게는 치우천왕을 우리조상으로 모시는 멋쟁이 선랑 붉은악마가 있다. 그들은 승리의 신인 치우천왕을 붉은악마의 상징으로 하여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 겨레의 역동적인 힘을 세계에 널리 알렸고, 우리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창조하는 쾌거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치우천왕은 이렇게 우리가 제대로 모실 때 매우 큰 영험을 발휘하시는 군신(軍神), 전쟁신(戰神), 무신(武神), 승리의 신(勝神)이므로 무묘에 모실 자격이 충분하다 하겠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무신으로 추앙하는 이런 만고의 영웅인 우리의 치우천왕을 버려두고 언제까지 중국인인 관우에 대해서만 제사를 지낼 것인가? 지금 우리는 중국의 속국이 아니다. 이제는 소중화라는 사대주의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치우천왕을 상징으로 하는 우리의 선랑 붉은악마들을 더 이상 외롭게 해서는 안 되고, 중국 신화 속에 나오는 인물을 모시는 중국사람 또는 중국 동북공정의 앞잡이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관왕묘는 치우천왕묘로 개명되어야 하며, 그곳에 있는 관우나 장비상은 당연히 치우천왕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치우천왕이 우리를 도울 것이다.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승리의 에너지를 우리는 2002년 월드컵에서 충분히 보았으며, 지금도 붉은악마의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민족의 역사를 관리하는 부서에서 교체하는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군신 치우천왕도 언제까지나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붉은악마를 중국인으로 만들지 말자!
 
▲ 치우천왕은 축구대표팀 서포턴스 붉은 악마와 투구의 문양에 살아있다.     ©역사복원신문

 

(편집자 주)
관우는 뛰어난 장수임에는 틀림없으나, 한마디로 군신(軍神)의 자격은 없는 장수이다. 소설 <삼국연의>에서는 관우의 무공이 다음과 같이 과장되어 있다.
* 술이 채 식기도 전에 화웅의 목을 베어 가지고 돌아온다.
* 관도대전에서 안량과 문추의 목을 단 칼에 벤다.
* 주군 유비를 찾아가기 위해 오관(五關)의 장수의 목을 차례로 벤다.
* 적벽대전에서 군율을 어기면서도 과거에 신세를 진 조조의 목숨을 살려준다.
* 뼈에 박힌 독화살을 빼내는 수술에도 표정 하나 안 변했다. 등이다.  

그러나 위 소설 (삼국연의>의 내용과 다른 <정사 삼국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화웅은 손견에게 죽임을 당한다.
* 안량은 관우에게 찔려 죽은 것이 맞으나, 문추는 조조군의 화살을 맞아 죽는다.
* 관우는 조조에게서 몰래 도망친 것으로 오관참장은 완전한 허구다.
* 조조는 적벽에서 전투하려다 전염병이 심하게 돌자 회군해 버렸다.
* 관우의 독화살 제거 수술은 정사에 없는 허구의 내용이다. 

위에서 보듯 정사 <삼국지>에는 관우의 무공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삼국연의>에서는 관우를 의리가 있고 은혜를 알며 엄청난 무공을 세운 장수로 묘사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관우는 군신으로 추앙될 정도의 장수가 아니다. 그 이유는 관우는 전투에서 2번이나 진 적이 있는 장수이기 때문이다.
첫째가 조조군과의 전투에서 사로잡혀 투항한다. 조조는 관우를 죽이지 않고 그의 무공을 높이 사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회유한다.
둘째 관우는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여몽이란 장수에게 사로잡혀 목이 잘려 조조에게 보내진 패장이다.  

전쟁에서 패해 그것도 2번이나 사로잡혀 결국 목이 잘린 장수를 군신으로 모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관우는 철저히 명나라에 의해 <삼국연의>로 과장된 장수일 뿐이다. 명나라는 <삼국연의>라는 엉터리 역사소설을 지어 놓고 군신 같지도 않은 관우를 군신으로 모시도록 강요한 것이다. 그 이유는 관우의 목을 친 오나라 사령관 여몽과 부사령관 손호가 얼마 후에 갑작스럽게 죽고, 관우의 목을 본 조조까지 이듬해 66세의 나이로 죽자, 사람들은 관우의 원혼이 저주했기 때문으로 생각하여 사당을 세워 관우의 영혼을 달랬던 것이다. 황제도 왕도 아니었던 관우를 제(帝)로 받들어 제사를 받드는 것은 백성들의 동정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 낙양 관제묘에 있는 관우상은 황제의 면류관을 쓰고 있다.     © 역사복원신문


관우의 죽음에 대해 정사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관우는 강직한 성격과 강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로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관우는 자존심이 대단히 강했던 인물이다. 손권이 자신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결혼시키자고 제의했을 때 관우는 크게 노하여 손권의 사자를 꾸짖고 창피를 주어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 한다. 원래 강직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남을 무시하는 단점이 있다. 강릉에 있었던 촉한의 태수인 미방과 부사인 등은 관우에게 무시를 당해 항시 불만을 품고 있었기에 군수물자의 조달에 비협조적이었다. 이에 대해 관우는 “개선해 치죄하겠노라”하고 일단 전선으로 떠나간다. 결국 그들은 오나라가 강릉을 공략하자 촉한을 배반하게 된다.  

손권이 사돈이 되자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손권을 격노케 한 것은 외교의 실수이고, 자기 부하에게 불만이나 공포심을 가지게 한 것은 내정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관우는 자신의 죽음을 자기 자신이 부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제갈공명이 관우를 형주에 남겨 놓고 성도로 돌아올 때 관우에게 앞으로 취할 기본 전략을 지시하였다. “동쪽으로 손권과 화친하고, 북쪽으로 조조를 막아야 한다.”이런 제갈량의 지시를 지켰다면 관우는 오나라 여몽에게 잡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관우의 성격적인 결함과 상사의 지시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렇듯 성격적인 결함에다 상사의 지시도 무시하면서 전투에서 패해 사로잡혀 목이 잘린 장수인 관우를 군신(軍神)으로 떠받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삼국지연의>는 이러한 관우의 치부를 감추고 그를 마치 천하무적인 전쟁의 영웅인 것처럼 묘사해 버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관우를 아주 대단하고 위대한 인물로 알고 있다. 

▲ 어린이들의 정신을 파괴하고 있는 만화 삼국지의 내용은 소설 <삼국연의>와 같고 정사 <삼국지>와는 상당부분 다르다.  중국에서는 <삼국연의>와 <삼국지>를 구분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이 모두 <삼국지>이다.
여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관우가 실제로는 미인을 무척 탐했다고 한다. 소설 <삼국연의>에 보면, 조조는 관우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인 10명을 관우에게 보낸다. 그러나 관우는 이 미인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오직 인질로 잡힌 유비의 두 부인을 섬기는데 전념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 촉서와 위서>의 기록에 따르면, 조조와 유비가 여포를 토벌하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하비성으로 갈 때, 관우는 상대 장수의 부인인 두(杜)씨가 천하절색이란 소문을 듣고는 “자신이 성을 함락시키면 그 여자를 달라”고 조조에게 간청했다고 한다. 조조는 흔쾌히 관우의 청을 응낙했으나, 성의 함락 후 실제로 경국지색인 두씨를 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관우와의 약속을 깨고 자신의 첩으로 삼아 버린다. 여기에 앙심을 품은 관우는 이후 조조를 죽이려고 하는 등 조조와 심한 갈등을 겪는다. 관우가 여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송대와 원대의 구비문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관우를 군신으로 모신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훼괴한 일이다. 명나라는 <삼국연의>라는 소설 속에서 관우의 무공을 부풀려 놓고는 관우를 군신으로 떠받든다. 뿐만 아니라 관우의 사당을 조선의 한양에도 세우게 하고는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국왕을 비롯한 대신들과 백성들에게도 참배를 강요하는 등 명나라는 일관성 있고 집요하게 역사왜곡을 한다.  

관우가 후대에 성인(聖人)으로까지 추앙받게 된 이유는 명나라의 정치적 필요와 민간의 심리적 기대감 때문으로, 요, 금, 원 등 이민족에게 짓밟혔던 한족(漢族)의 자긍심 세우기의 일환으로 영웅 만들기 창작소설일 뿐이다. 중국인들이 동이의 대륙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과대포장한 허구의 역사소설 <삼국연의>가 한국인의 교양필독서로 읽히고 있는 이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하겠다. 
 
 



원본 기사 보기:역사복원신문

 

기사입력: 2012/02/22 [14:52]  최종편집: ⓒ 런던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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