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황금돌-새 런던시장 보리스 죤슨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런던시민들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입력 : 2008/05/09 [15:01]

▲ 새 런던 시장 보리스 죤슨- 헝클어진 금발이 트레이드마크이다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보리스 죤슨(boris johnson)은 지난 5월1일에 치러진 런던시장(mayor of london) 선거에서 약 116만8천 표를 얻어 주 경쟁자였던 전시장 켄 리빙스톤( ken livingstone)을 약 14만표 차이로 누르고 런던시장에 당선되었다.

이는 시장이 노동당 출신에서 보수당 출신으로 교체되었다는 단순한 사실 이상의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영국의 심장 도시인 런던시장의 위상은 영국의 수상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라고 해도 과히 틀림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싯점에서 지난 8년간 런던호를 큰 대과 없이 이끌어 왔던 선장을 전격적으로 갈아치운 런던시민들의 결정은 참으로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런던시민들이 선택한 그는 영국인의 정통 혈통이 아니다. 그는 터키(turkey) 출신 이민자의 후손이고 프랑스와 독일의 피가 섞인 도가니(melting pot)탕(?) 이다. 그리고 그의 면면은 괴짜로 평가되던 전 시장 리빙스턴의 그것을 능가하는 가히 괴짜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과 보수의 가치를 견지하는 보수당이 그러한 그를 후보로 택한 것도 파격이지만 그를 대표로 받아들인 시민들의 선택도 놀라운 것이다.

우선 그의 특이한 내력을 살펴보자.  그의 증조부 알리 케말(ali kemal)은 터키의 오트만제국(ottoman empire)의 내무부장관을 지냈었고 할아버지인 오스만 알리 (osman ali) 가 1920년대에 영국에 정착하면서 이름을 윌프레드 죤슨 (wilfred johnson) 으로 창씨 개명했다.

그가 사용하는 현재의 성인 죤슨(johnson)은 그 때 개명한 성이고 아직도 그의 집안에서는 그를 알(al)이라고 한다. 그의 정확한 이름은 alexander boris de pfeffel johnson 이다.

그는 1964년에 미국의 뉴욕(new york)에서 태어났고 최근까지 그는 미국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1970년대엔 유럽공동체(european commision)에 근무하게 된 그의 아버지를 따라 벨기에의 브러셀(brussels)로 이주했고 그 곳에서 나중에 부인이 되는 마리나 휠러( marina wheeler)와 만나고 1973년 부모의 이혼으로 영국의 기숙학교( boarding school)로 보내진다. 그는 영국의 최상류 학교인 이톤스쿨(eton school)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옥스포드(oxford)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분명히 이곳 영국 현지인들에게는 굴러 온 돌이다. 그러나 너무도 빛나는 돌이기에 그를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인 것 같다.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헝클어진 금발의 외모와 함께 최고 하이클라스들의 인증서인 아카데믹 백그라운드(academic background)에서는 이방인으로서의 모습을 발견 할 수가 없다.     

그의 변화무쌍한 인생역전과 시선을 끌어 왔던 유머를 겸비한 탁월한 언변과 심하지 않은 말썽(trouble)들은 그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모범생의 지루한 모습이 아닌 괴짜 천재의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 죤슨시장과 카메룬 수상 - 옥스포드 출신 정치 마피아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대학시절 그는 폭음과 말썽으로 악명(?) 높은 버링톤 클럽(bullingdon club)의 일원이 되고 그 곳에서 현 보수당의 당수인 데이비드 카메룬 (david cameron)을 만나 교제한다. 그리고 23살이 되던 해에 첫번째 부인인 알제라 (allegra mostyn-owen)와 거창하게 결혼하지만 3년도 못가서 이혼하고 후에 현재의 부인인 어릴 적에 벨기에에서 만났던 마리나 휠러( marina wheeler)와 재혼한다.

졸업 후엔 벨기에 특파기자가 되어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을 쌓지만 조작된 인용 기사로 인해 더 타임즈(the times)에서 해고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재능을 감지한 데일리 텔레그라프(daily telegraph)에 발탁되면서 가볍게 넘어간다. 

사기죄로 처벌받은 옥스포드 동창생과 관련하여 익명으로 텔레그라프에 보내진 테이프사건으로 그는 또다시 위기를 맞지만 그를 발탁했던 편집자 막스 헤스팅스 경(sir max hastings)의 선처에 의해 브러셀 특파원이라는 질책반 외유반 발령으로 모면한 후 승진하면서 부편집자 겸 정치 칼럼니스트 장이 된다. 그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은 bbc의 프로그램인 ‘have i got news for you”에 출연하여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고 승승장구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그는 신문 칼럼, 디너연설, tv 도큐멘트리, 소설 등을 통해 수많은 어록을 쏟아내었고 그의 신문사설 모음집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야심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정치로 뻗게 되고 1997년 총선에 출마해서 고배를 마시지만 4년 후인 2001년에 보수당 당권에 도전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이클 헤설타인(michael heseltine) 의 지역구였던 옥스포드의 헨리 (henley)을 이어받아 국회에 입성하였고 7년 만에 정상고지의 한 계단아래인 런던시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헤설타인과 죤슨의 공통점은 머리가 휘날리는 바람머리라는 것과 차이점은 은발과 금발이라는 것이다. 은발의 헤설타인은 은메달의 다크호스로 퇴장했지만 금발의 죤슨은 과연 금에달을 목에 걸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는 영국인 들이 이방인 출신에게 허용하는 위치와 그의 능력과 운이 어디까지인지를 함께 넣어서 풀어야 할 삼각함수인 것이다.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격렬한 야망의 부산물로서 생산된 트러블들은 그의 질주의 브레이크는 되었으나 결코 장애물이 되지는 못해왔다.   

그가 속한 스펙테이터(spectator)의 사설에서 이라크 인질로 살해된 켄 비글리( ken bigley) 와 관련해 리버풀시민들을 비난한 일로 동료들의 질책과 함께 왕따도 당했고 저널리스트 페트로넬라 휘아트 (petronella wyatt) 와의 불륜에 대한 거짓진술의 의혹으로 보수당수이던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에 의해 경질 당하기도 했으나 괴짜 깡통 리빙스턴을 찌그러트리는 괴짜 돌의 역할로서 화려하게 부활 한 것이다.

예견된 일이지만 그는 벌써 전임자인 리빙스톤의 인사들인 lda (런던 개발처 london development agency)의 회장인 메리 릴리(mary reilly) 와 ceo인 마니 루이스(manny lewis)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새로운 판을 짜면서 새로운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2012년 올림픽이 천재에게 남겨진 가장 어려운 시험지가 될 것이다. 막중대사를 앞두고 기대는 되지만 검증 되지 않은 이방인 인사를 런던의 수장으로 임명한 시민들의 모험심은 그들이 과연 cosmopolitan(국제적인) 도시인 런던의 시민임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