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연합 논평-해경과 검찰의 납득하기 힘든 서해 기름오염 사고 수사결과 발표

환경운동연합 | 입력 : 2007/12/23 [11:57]

지난 20일, 태안 해양경찰서(서장 최상환)는 서해 기름오염사고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배포자료 없이 구두로만 진행된 발표를 통해 해경은 “예인선과 크레인선장이 새벽 파도가 높이 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선박을 운항했고, 관제실 호출에 1시간 이상 응답하지 않는 등 안전조치의무를 소홀히 했으며, 유조선 선장은 사전에 충돌위험을 알고도 적절한 대피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가 있다며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는 것이었다.

21일엔 대전지검 서산지청의 수사지시 결과가 나왔다. 특별히 보강되거나 추가된 내용 없이, 두 명의 선장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유조선 선장에 대해서는 보강수사를, 예인선 선장 1인에 대해서는 불구속 입건을 태안 해경에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해경의 2주에 걸친 조사결과와 검찰의 기소 내용은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된 기사들보다 진척된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 조사결과를 내놓는데 2주의 시간을 쓴 것과 자료도 배포하지 않고 구두로 서둘러 마무리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환경연합은 이번 수사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한다.

1. 7일 오전 서해 중부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선박운항을 결정한 책임자가 밝혀지지 않았다.

예인선과 부선의 여러 선장들을 동원하는 예인선단 운항이 예인선 소유 회사(삼성중공업)의 지시 없이 선장들만의 판단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사고 발생 당사자인 삼성중공업의 책임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고 ‘무리한 선박운항’의 책임을 선장들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2. 크레인 예인선단이 해경의 경고 무선을 받지 않은 이유도 확인되지 않았다.

피의자들이 주요 사고 원인에 대해 수사에 대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들이 경고 무선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함구하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사건 초기 이들이 경고 무선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던 점을 감안하면 수사 과정에서 명확한 사실관계가 규명되었어야 한다. 그럼에도 삼성에 대해 진지한 조사나 해경이 피의자들의 진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없다.

3. 강철 와이어가 왜 갑자기 끊어졌으며, 사고 당시 삼성의 예인선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불분명하다.

돌발적인 상황에서는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이 전개될 수 있다. 하지만 사고 당사자들이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또 강철 와이어가 유조선과의 충돌을 앞두고 갑자기 끊어졌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예인선이 출항하기 전에 설비에 대한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밝혀야 한다.

4. 유조선이 불법 위치에 정박한 이유에 대한 수사결과가 없다.

외국인 선장이 임의로 정박 위치를 정할 수 없고, 화주인 현대오일뱅크의 지시와 대산해양수산청의 승인이 있었을 것이다. 이미 2004년부터 어민들은 사고지역에서 대형 선박들의 정박에 대해 위험을 경고하고 어장파괴에 대해서도 많은 민원을 제출해 왔다. 특히 지난 1월 대산항 개항 후 원유선과 태안화력 화물선들의 출입이 늘어나면서 어민들은 태안해경에 불법정박에 대한 단속을 요청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허베이 스프리트호가 불법 위치에 정박하게 된 이유와 관련해 현대오일뱅크 측을 수사하지 않은 이유는 의문이다.

5. 대산해양수산청 등 관계당국이 내렸던 조치의 적절성에 대해서도 조사가 없었다.

풍랑주의보속에서 3천 톤에 이르는 거대한 해상 크레인을 운항하도록 허가했다면 허가권자인 대산해양수산청도 책임을 벗어나기 힘들다. 사고 2시간 전부터 해상 크레인이 정해진 운항경로를 이탈했는데도 당국에 의해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는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유조선의 불법 정박을 묵인한 것도 가벼운 실수로 볼 수 없다.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관계당국들이 적절성하게 대응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되어야 한다.

6. 태안 해경이 유조선들의 불법적 정박을 장기간 용인해 온 것도 검토됐어야 한다.

주민들에 의해 사고 위험이 지속적으로 경고됐음에도 이를 무시해 온 책임 역시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해경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기 어려웠겠지만, 그렇다면 검찰이라도 해경의 상습적인 직무유기를 눈감아 줘서는 안됐다.

우리는 12년 전 여수 앞바다 씨프린스호 사고 후 선장 한명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 수사결과 역시 국민의 관심이 기름오염 제거에 집중되어 있는 틈을 타 해당 기업이나 당국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게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번 해경의 수사결과 발표는 국민들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부실한 수사는 국민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또 다른 분란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이제라도 해경과 검찰은 보다 엄정한 재수사를 실시해야 한다. 지금껏 복구활동에 전념해 온 환경운동연합은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앞으로든 사고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노력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할 계획이다.

2007년 12월 23일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윤준하, 조한혜정, 최재천 사무총장 안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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