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조작 파문에 휩싸인 리보, 흔들리나?

김지호 | 입력 : 2012/08/03 [00:26]
세계금융의 중심지 런던에는 1984년에 태어나 국제 금융시장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런던 우량은행간 금리인 리보(LIBOR)가 있다. 350조 달러에 달하는 전세계 금융거래의 금리가 리보를 기준으로 신용도에 따른 가산금리를 더해 정해진다. 이러한 리보의 위상이 최근에 드러난 수치조작 파문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  바클레이즈 은행 (Barclays Bank)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런던 은행간 제시 금리(London Inter-Bank Offered Rate)의 약자인 리보(LIBO)는 런던에서 거래하는 대형은행들이 서로 단기자금을 차입할 때 약정한 금리의 평균 수치다. 리보 산정에 참여하는 18개 세계 글로벌 은행들이 거래 약정금리를 영국은행협회(BAA)에 매일 보고하고, 영국은행협회는 상위 25%와 하위 25%를 제외한 나머지의 평균치를 매일 아침 런던시간 11시 30분에 발표한다.

영국은행협회(BBA)는 국제적인 은행들에 대해 리보 조작 혐의에 대해 조사해 왔다. 지난 6월말 자산규모 영국 2위 은행인 바클레이즈(Barclays)가 혐의를 인정하고 미국과 영국 금융규제당국에 벌금 4억5천만 달러(약5천2백억 원)를 합의 하면서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바클레이즈는 자사가 거래한 차입 금리를 실제보다 낮춰 보고함으로써, 평균금리인 리보가 낮게 산정되도록 조작한 것이다. 금융서비스당국인 FSA는 2005년부터 2009년 사이에 바클레이즈의 조작시도가 파생상품 트레이더들에 의해 257건이 이루어졌고, 다른 은행들과의 공모도 있었다고 밝혔다. 바클레이즈의 고위층이 개입한 전격적인 수치조작은 2008년 10월 말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바클레이즈의 금리조작보고 어떻게 진행됐나?  

2008년의 금융시장은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은행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 자금대여를 꺼리면서 유동성이 극도로 악화되는 대 혼란 상황이었다. 영국정부는 10월 13일 자금경색으로 파산상태로 내몰렸던 Royal Bank of Scotland (RBS), Lloyds TSB, HBOS와 같은 3대 대형은행에 수십억 파운드의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바클레이즈도 우려의 대상으로 지목했다. 10월에 바클레이즈가 보고하는 차입금리가 리보에 참여하는 은행들 중에서 상위 1~2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상한 점은 바클레이즈보다 재무상황이 훨씬 안 좋은 은행들이 보고하는 금리보다도 더 높다는 사실이었다. 10월 21일과 22일에 영국중앙은행의 폴 터커 부총재는 고든 브라운 총리의 수석 자문역 제레미 헤이우드와, 영국 정부의 자금투입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리처럼 신속히 하락하지 않는, 리보에 대한 우려에 대해 협의했다. 이때 헤이우드 수석은 바클레이즈의 차입금리가 너무 높은 이유에 대해 질문하면서 “시장에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10월29일 폴 터커 부총재는 당시 바클레이즈의 투자은행 부서 책임자였던 봅 다이아몬드 현 최고경영자(CEO)에게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정부 고위층 인사가 바클레이즈의 차입금리가 리보 산정은행 중에서 왜 항상 높은지 알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다이아몬드가 작성한 통화 녹취록에 의하면, 그는 또 “요즘에 보여준 것처럼 항상 높은 경우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이 한마디가 바클레이즈의 금리 조작보고를 촉발시킨 뇌관으로 작용한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통화내용을 당시 바클레이즈 캐피털의 공동대표였던 제리 델 미시에르 현 최고운영자(COO)에게 전했다. 미시에르는 터커 부총재가 정부 고위층의 리보 인하 지시를 전한 것으로 이해하고, 리보를 낮춰 보고하도록 실무자에게 즉각 지시했다. 통화 다음날인 10월 30일 실무자는 3개월 만기 금리를 전날 4%에서 3.4%로 대폭 낮춰 영국은행협회에 보고했다. 하지만 터커 부총재는 의회 청문회에서 그의 통화내용에 대해 “그릇된 인상을 주었다”고 시인하면서도 금리조작을 부추긴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국제적인 스캔들로 비화하는 조작파문

마르쿠스 아기우스 회장, 다이아몬드 최고 경영자 미시에르 최고 운영자 등 바클레이즈의 최고 경영진들이 책임을 지고 줄줄이 사퇴했으나, 파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미국과 유럽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시티그룹, JP 모건,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과 독일의 도이체 방크, 스위스의 UBS 등 15개 이상의 글로벌 은행들이 금리 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에 더해, 영국 금융당국뿐 아니라 미국의 연준(FRB)도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리보 조작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2008년 5월 바셀에서 열린 중앙은행 수뇌회담에서 당시 연준 의장이던 미국의 가트너 재무장관은 영국 중앙은행의 머빈 총재에게 리보의 허위보고 방지를 위한 대책을 주문하자 머빈 총재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지만 “잘못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고 대답한 사실이 밝혀졌다. 가트너 장관은 회담을 마친 후 6월 1일자 메일로 리보의 신뢰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일련의 방안들을 제시했고 머빈 총재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회신한 바 있다. 이처럼 양국의 금융당국들이 리보 조작의혹에 왜 미온적인 태도로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조사도 진행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금값과 유가에도 지속적인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마저 대두되면서, 리보 조작으로 시작된 파문은 국제적인 정치, 경제 스캔들로 비화하고 있다.

리보의 지위에 대한 공방전

현재 영국은 의회의 재무위원회를 중심으로 청문회를 열고 있고 중대비리조사청(SFO)도 정식 사건으로 채택하여 조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처럼 정치권이 주도하는 조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바클레이즈의 경우를 보면,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 대형은행들의 리보의 하향 조작을 방조, 혹은 더 나아가 유도한 것 아니냐?’는 의문에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금리조작으로 바클레이즈는 유동성 위기를 무사히 탈출했고 금융당국도 추가자금투입 없이 금리를 낮추는데 성공했다. 노동당의 죤 만 의원은 청문회 의장인 보수당의 타이어 의원을 겨냥해 “그는 이미 눈가림을 위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비난했다. 사실 영국 정부는 내심 이 문제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조기에 수습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서의 런던을 지탱해 온 리보의 위상 추락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상원의 은행위원회와 하원의 금융서비스위원회가 청문회를 개최하여 연준이 리보 조작을 인지했는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또한 바클레이즈의 다이아몬드 전 최고경영자도 청문회에 출석시키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혐의가 드러나면 관련자에 대한 형사처벌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리보의 문제점을 파헤치는데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도 리보 조작에 대해 연일 비판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독일 금융감독위원회는 리보 조작과 관련해 독일 최대 상업은행인 도이체방크에 대해 특별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의 속셈은 이 기회에 리보의 지위를 격하시켜 자국의 기준금리를 새로운 국제금융의 표준으로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마치 금융의 철옹성 런던을 두고 연합군들이 공성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의 채권금리나 독일이 바라는 것처럼 유로화의 리보인 유리보가 리보를 대체하기에는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오히려 리보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신뢰를 회복한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리보의 위상은 한층 더 강화될 수도 있다고 보인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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