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해결을 위한 독일의 선택은?

런던타임즈 | 입력 : 2012/08/07 [12:00]
최근 글로벌 시장의 관심은 독일에 집중되고 있다. 독일 정치권의 하계 휴가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남유럽 국가들의 위기 해결에 주역으로 나서주기를 바라는 주변국들의 요청이 커지고 있다. 특히 양적 완화와 같은 통화 정책을 통해 위기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 미국은 유럽에서도 독일 주도의 정책 공조가 이루어지기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일방적인 위기 해법에 대해 오히려 제동을 거는 입장이다. 유로존 국채 매입과 같은 중앙은행을 통한 위기 해법이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 운영에서 긴축 기조를 확립해 나갈 경우에 한해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독일도 유로존의 붕괴는 원치 않고 있다. 독일이 유로존에 의지해 높은 성장을 이루기도 했을 뿐 아니라, 많은 경제 시스템이 유로존 전체와 긴밀한 분업구조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 경제 체제는 어느 한 국가의 준비된 유로존 탈퇴가 아닌 유로존 시스템의 붕괴가 있을 경우 큰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독일식 해법은 ‘협의된 행동’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내부의견의 조율이 더 중요하다. 오는 9월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유럽안정화기구(ESM)에 대한 합헌 선언으로 받아들여질수 있게 되면 독일 정부도 지금까지의 유보적인 태도로 부터 한걸음 더 나아가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남유럽 위기국들의 갈증을 해소할 적극적인 ‘협의된 행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재 독일 정부는 유로존 회원국들의 공동의 행동을 위해 모두에게 규율을 강제할 수 있는 계기가 더 전면적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면서도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어려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유럽중앙은행과 남유럽 국가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는 독일이 위기 국가들에 대한 더 많은 구제 재원을 통해 유로존 위기를 진정시킬 것을 요구 받고 있다. 특히 미국은 독일의 입장이 유로존 위기의 해결 및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를 해결할 중요한 고리로 보고 독일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독일 정치계의 여름 휴가철인 지금도 미국 재무부 장관인 티모시 가이트너가 독일 재무부 장관인 볼프강 쇼이블레를 직접 휴가지까지 찾아가 남유럽 위기 해결을 위한 독일의 재정지원 확대를 촉구하였다. 남유럽 국가의 대표격인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총리도 역시 휴가중인 메르켈 총리와 7월 29일 전화 협상 및 공동성명 발표 등을 통해 유로존 지키기에 공동으로 협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반면 독일 연정 내 기민당(CDU)의 두 파트너인 기사당(CSU) 및 자민당(FDP)은, 남유럽 국가들의 긴축 정책이 우선이며 독일 법과 각종 유럽 조약에 엄격하게 따르게 될 경우 원칙상 더 이상의 자금 지원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메르켈이 남유럽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자 한다면 야당인 사민당(SPD) 및 녹색당(B?ndnis 90/Die Gr?nen)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는 연정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주변국들 가운데서도 프랑스가 긴축 완화와 성장 중심의 해법을 제시하며 독일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점점 더 커져만 가는 위기의 신호들 가운데에서 독일의 선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Ⅰ. 금융 위기와 독일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지난 7월 23일 독일에 대한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향후 6~12개월 이내에 Aaa 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을 높게 전망한 것이다. 신용 전망 하락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국채 수익률은 10년물 기준 1.17%에서 1.24%로 미미한 상승에 그쳤다. 아직 영국이나 미국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하는 것은 독일의 신용 등급 전망 하향이 결국은 유로존 국가들의 부채를 상당부분 독일이 떠안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이다. 독일이 유로존 위기에 대한 구원투수 역할을 수행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높아진 것이다.

금융 위기의 와중에서 독일 금융권 내에서도 분열의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거대 은행 부실이 정부의 신용등급 하락의 계기로 작용하면서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영국보다 훨씬 재정 상태가 건전한 독일의 신용 등급 하락이나 독일 금융권의 분열 등은 모두 유로존 내에서 확장되어왔던 신용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유럽에서 확장되던 신용이란 유로화의 도입 이후 남유럽 국가들이 독일 등 저금리 국가들에서 신용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하여 부동산 투자 및 소비 확대 등으로 사용하던 현상을 지칭한다. 하지만 미국의 리먼 사태 이후 모든 금융 자산에서 신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다양한 문제가 불거지고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대립되는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독일과 남유럽 국가들의 입장이 갈리게 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독일과 남유럽의 이해 충돌

지금까지 독일은 유로화의 도입으로 인해 공동 통화 도입에 따른 혜택, 즉 생산 측면에서 분업의 확대와 소비 측면에서 내수시장의 확대의 가장 큰 수혜국이었다. 또 유로존 국가들의 위기 발생 이후에는 유로화의 절하로 인한 수출 확대를 누려왔고 동시에 안전한 독일 국채에 대한 선호 현상 덕분에 재정 부담의 감소라는 이중의 혜택(windfall gain)까지도 누려왔다. 그런데 이러한 예상치 못하던 혜택 가운데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온 것이다. 위기가 유로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독일이 뜻하지 않던 저환율의 혜택을 보게 된다면 최소한 독일은 재정 부담 증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디스가 독일 신용 등급 전망을 하향조정한 이유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단지 독일이 어느 한 혜택을 포기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유로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독일과 남유럽 국가들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남유럽 국가들의 유로화를 둘러싼 이해의 충돌은 지금의 유로존 위기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애초 독일과 남유럽 국가들 모두에게 유로화의 도입은 많은 혜택을 가져다 주었다. 대표적으로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 북유럽 국가들, 특히 독일 등 저금리 국가들로부터의 자금 유입에 의한 혜택을 누렸다. 독일의 경우는 남유럽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상대적으로 환율이 저평가되면서 지속적으로 높은 수출 경쟁력을 유지해 왔던 혜택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독일과 남유럽 국가들의 상황은 단순한 위기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대립에 가까운 상황이다. 독일은 남유럽 국가들이 방만한 경제 운영을 해왔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지원이 힘들다는 입장이고, 반면 남유럽 국가들은 유로존을 붕괴로 이끌지 않으려면 독일이 자금 지원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Ⅱ. 독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독일은 유로화를 혜택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부담으로 생각하는가. 일단 다수의 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조사에서 독일 국민들의 경우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유로화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가운데에서도 유럽 연합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후 6월 실시된 공영방송 ARD의 여론 조사에서도 유로 도입에 대해서는 실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49%,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47%의 비중을 차지하여 부정적인 입장이 긍정적인 입장을 미세하게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동일한 조사에서 그리스에 대한 지원이 올바른 결정이라는 비중은 23%, 그리스가 자발적으로 유로를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이 67%를 차지했다. 남유럽 국가의 지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인 것이다.

부정적인 여론 동향에 비해 현실적인 유로존 붕괴의 위험을 고려하는 독일 내 정당들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극단적으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acility)이나 유럽안정화기구(ESM, European Stability Mechanism) 등 유로존 붕괴를 막기 위한 모든 제도에 반대하고 있는 좌파당(Die Linke)을 제외하고는 유로화의 안정을 위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데 모든 주요 정당들이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다만 남유럽 국가들의 지원에 대해서는 다소 입장이 상이하다. 야당 가운데에서는 녹색당이 남유럽 국가의 성장과 청년 실업에 대한 지원까지 요구하는 가장 적극적인 지원 찬성 입장이고 사민당도 남유럽 국가에 대한 유로 구조 기금의 확대 등 적절한 수준의 재정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반면 연립 여당의 일원인 자민당은 남유럽 국가에 대한 지원에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또 다른 연립 여당 파트너인 기사당 내에서도 지원 반대론자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독일 정치 지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정당보다도 오히려 헌법재판소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독일의 모든 유로화 혹은 남유럽국가에 대한 지원의 범위가 결정된다. 이미 지금까지 독일 헌재는 한 차례 남유럽 지원과 관련하여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독일 헌재의 입장은 남유럽 국가 지원 등 중요한 재정 문제에서는 정부의 결정에 앞서 최소한 의회에서 각 정당 재정정책 담당 의원들의 협의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향후의 재정 지원의 핵심적인 기구가 될 유럽안정화기구(ESM)에 대한 이번 9월 12일 헌재의 판단이다. 독일 헌재가 ESM이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독일의 ESM에 대한 재정 투입이 불가능해지며 지금까지 논의되던 유로화 안정화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다수의 남유럽 국가들의 파산도 가능할 전망이다.

경제계의 입장도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다르다. 전반적으로 지금까지 금융계가 단기적인 위기 해결을 위한 정부의 자금 지원에 기대왔다면 제조업계는 전체 유로존의 안정된 미래에 더 큰 우려를 보이고 있다. 전체 제조업을 대표하는 기관인 BDI의 경우는 유로화의 안정을 위해 남유럽 국가들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업들 중에도 주된 시장이 독일내이고 이에 따라 이해가 대기업들 혹은 수출기업들과 다소 상이한 중소기업인들이 모여있는 “가족경영인협회(Die Familienunternehmer)”와 같은 단체의 경우 남유럽 국가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Ⅲ. 유로존의 유지가 독일에 중요한 이유

남유럽 국가들의 대규모 탈퇴 혹은 독일의 탈퇴를 통한 유로화의 재편에 대해 독일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가 있다. 독일은 어느나라 보다도 단일통화 유로의 혜택을 많이 본 나라이다. 유로가 해체되는 순간 그 혜택도 소멸될 뿐 아니라 유로경제권 전체의 성장 저하와 금융시장의 혼란에 따른 피해까지도 예상해야 한다.

경제 전반의 충격과 저금리 효과 약화

하나의 국가라도 유로존을 탈퇴하게 될 경우 유로존 위기가 유로존 전체의 시스템 위기로 인식되어 주식시장을 비롯한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주고 이것이 다시 글로벌 금융 시장의 충격으로 이어지게 되리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동시에 금융 시장의 충격은 다시 금융 위기에 민감한 여러 기업의 도산 등 실물 충격으로 전이되어 실물 경제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IMF 당시 경험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며 독일 또한 금융 시장의 혼란과 실물 경제로의 위기 파급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혼란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으로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위기의 감염 경로 외에 독일이 경험하게 될 손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독일은 유로화의 약세로 인한 가장 큰 수혜자였다. 독일은 지난 2년간 유로화의 약세로 인한 수출 증가 만으로도 약 500억 유로의 수출 확대가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독일 전체 GDP의 2%가 증가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독일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국채로 인한 저금리 효과로 큰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주변국가 국채들이 재정 위기로 투자의 위험성이 커지면서 독일 국채는 높은 수요로 인해 낮은 금리가 장기간 유지되었다. 지난 2년간 독일 정부가 낮은 국채 이자로 인해 얻은 수익 또한 450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결제시스템상의 위기

독일로서는 단기적으로도 앞서 설명했던 지금까지 얻은 수익이 없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면서도 매우 큰 걸림돌이 있다. 이른바 TARGET2 위기이다. 즉, 유로화 해체에 이르게 될 경우 독일이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받게 될 불이익이 예상보다 훨씬 크게 될 전망이다.

현재 유로존 결제 시스템상 독일이 유로존 국가들과 거래한 경상수지 흑자 가운데 상당 부분은 유로존의 붕괴 이후 독일이 되찾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TARGET2 시스템으로 불리는 유로화 사용 국가들간의 결제체제 때문이다.

유로존 국가들은 중앙은행간의 실시간 거래 청산 방식인 이 시스템을 통해 매일 유로존 내의 거래를 청산한다. TARGET2를 통한 유로화 사용국 중앙은행들간의 거래 청산 규모는 하루에 평균 35만 건 2.4조 유로 규모에 이른다. 약 4일간의 거래액이 이들 국가 전체의 GDP와 맞먹는 규모이다. 이 계좌를 통해서 각국의 중앙은행은 자국 은행들의 해외 은행들과의 상품 거래, 증권 거래, 부채 청산 등의 거래를 유럽중앙은행을 통해 매일 결산한다. 이 시스템이 확정될 때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아직 이 제도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독일이 장기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역내에서 지속적으로 거두고 이 경상수지 흑자가 각국의 중앙은행 계좌를 통해 유럽중앙은행(ECB)에 통합되면서 상계되는 효과로 인해 독일중앙은행에는 막대한 채권 계좌만 생성된다는 사실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 TARGET2 흑자 규모는 지난 1년간 3,749억 유로 즉 한 달에 약 47조 원 규모에 이른다.

유럽 결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일부 국가의 유로존 탈퇴와 맞물리는 경우 독일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부담액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결국 독일에게 남유럽 국가들의 이탈, 혹은 독일 자신의 마르크화 재도입과 같은 문제는 급격히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준비가 전제되어야만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Target2 제도와 같이 유럽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가상의 채권 채무 관계가 성립된 상황에서는 유로화를 둘러싼 급격한 구성원의 변화가 있기 전에 제도적 개혁을 통해 유럽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 채무의 보증을 위한 장치의 마련이 요구된다.

Ⅳ. 독일의 정책 결정 방식의 특성과 유로의 미래

현재 유럽국가들만이 아니라 미국 등 주변국들도 독일이 유로화의 위기를 해결할 이른바 ‘해결사’로 행동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게 될 가능성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독일의 방식은 위험회피적이며 동시에 매우 점진적이다. 해법을 발견할 때에도 과거에 경험했던 다수의 경우의 수를 모두 점검해보고 실행에 옮기려 한다. 장점은 시행 착오가 적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시급한 해결 방안이 필요할 경우에도 느린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위험한 줄타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점진적 해법 모색으로 정치적·법적 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시장이 급변할 경우 유로존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독일의 그리스에 대한 부채 축소

독일은 매우 위험회피적이다. 그 결과로 위험 징후를 보이는 국가에 위험 요인들을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축소해 나갔다. 독일의 남유럽 국가들에 대한 부채 감축 추이를 통해서 독일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독일은 지난 1년 동안 그리스에 대한 익스포저(exposure : 대출 및 투자, 파생상품에 대한 주요 은행들 간의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고려한 대차대조표 상의 잔고)를 73.4%나 줄이면서 거의 그리스 관련 위험을 떨쳐내는데 성공했다. 독일은 다른 GIIPS 국가들보다 그리스에서 훨씬 더 큰 규모의 잠재손실을 줄이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한 대비를 큰 틀에서 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같은 기간 동안 다른 유럽국가들인 프랑스와 영국의 그리스에 대한 익스포저는 각각 29.9%, 42.0% 줄어든 데 그쳐 이들 국가들보다 독일이 더 극적으로 그리스에 대한 익스포저를 줄여나간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독일은행들은 그리스에 대한 익스포저를 2010년 4분기 이후 88.9%나 급격히 줄였다. 독일이 그리스의 유로화 탈퇴를 기정사실화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진행시켜 왔다는 의심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정황인 것이다.

그 결과 2005년 대비 독일의 남유럽 국가들에 대한 익스포저 변화를 보면 스페인, 아일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다른 국가들이 평균 9.3% 줄어든 데에 비해 그리스의 경우는 83.8%가 줄어들었다.

남유럽 국가들의 입장에서도 유로화를 고집하는 것이 문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유로존에 계속 남아있을 경우 경제 전반의 활력을 되찾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현재 많은 기관들에서는 유로존의 붕괴가 발생할 경우 그리스의 경우는 드라크마 화폐를 도입하여 1:1에서 시작하더라도 단기적으로 유로화 대비 약 1/4 수준으로까지 화폐의 평가 절하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약 4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60% 수준으로 자국 화폐의 가치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독일이 지금처럼 강경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경우 모든 남유럽 국가 경제가 스스로 임금 억제와 생산성 개선 등을 통해 실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까지는 너무도 긴 시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독일식 해법 “협의된 행동”

독일식 해법의 모습은 “협의된 행동(Konzertierte Aktion)”에 따른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방식은 모두가 협의를 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치된 행동에 돌입하는 것이다. 이는 독일 외에도 덴마크 등 여타 국가들에서도 노사정 대타협과 같은 경우에 사용한 방안으로도 유명하다. 독일에서 정치적으로 협의된 행동은 1967년 ‘안정화와 성장 법안’이 통과되며 기반이 마련되었다. 정부, 노조, 기업가와 함께 독일의 경제단체들, 그리고 분데스방크가 모여 “협의된 행동”이라는 단결된 정책을 추진하였고 이를 통해 경제 위기 극복에 기여할 수 있었다.

유로화의 위기와 관련하여 “협의된 행동”이 중요한 이유는 위기 상황일수록 내부 의견의 조율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유로화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긴축을 위한 노력, 성장을 위한 노력, 당사자간의 갈등을 조정해나가기 위한 노력들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 각 이해당사자를 대표하는 협의체에서 대표들의 합의가 더욱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때문에 독일로서는 각국의 이해가 어느 정도 한 방향으로 모아지기 위한 계기를 “협의된 행동”이라는 방식으로 이끌어가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는 유럽 국가들이 모두 일치된 행동을 하기 위한 아무런 계기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유로화의 위기가 지속, 확대될 가능성이 더 큰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위기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협의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일부 남유럽 국가가 유로존을 이탈하거나 대규모 재정 감축을 통한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체적인 협의의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독일 정부에서 이에 상응한 대응책을 내 놓을 가능성도 커진다.

독일은 다른 어떤 유럽 국가보다 유로화 도입으로 많은 혜택을 보았다. 그 결과 독일은 유로존의 해체로 잃을 것도 많은 상황인 것이다. 독일은 유로의 해체를 기본적으로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유로존의 유지를 위해 궁극적으로 구제 재원을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지난 1월부터 독일 학계에서는 유로화 위기에 대한 가능한 대안으로 각국 GDP의 60%를 넘어서는 부채에 대한 유로존 전체의 공동 관리를 제안하는 등 독일 헌법, 독일 국민에 대한 이해, 독일 정치권의 합의가 가능한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경제자문위원회의 5인의 석학이 제시한 부채상환 펀드의 조성과 같은 안은 법적인 검토를 거치며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각국의 재정 감축에 대한 유인책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과도한 시장금리 상승을 막기 위한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여기에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ESM의 존재근거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면 위기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의 가시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제안들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각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현재 주장에서 한발씩 양보하여 유로존 전체의 부담을 줄여나가기 위한 협의에 동참해야 한다. 남유럽 국가들의 고통스러운 재정 긴축이 전제되어야 자신들의 세금을 통해 재정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독일 국민들에 대한 설득이 가능해 진다는 점에서 매우 정치적으로 어려운 협력이 될 것이다. 다만 유로존 전체가 지금까지 향유한 혜택을 고려할 때, 독일은 유로존의 붕괴 위협이 커져 남유럽 국가들의 긴축 의지와 독일 국민들의 지원에 대한 합의가 가능해지는 순간에 협상에 나서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러한 독일의 점진적 해결 방식은 자칫 시기를 놓치게 될 경우 유로존 붕괴의 위협도 점점 커지게 된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각국이 재정 긴축에 돌입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투기세력의 공격이 더욱 거세질 수도 있는 것이다.

큰 폭의 양보는 가능한가

최종적으로 독일이 유로화 해결을 위해 나서게 된다면 미국과 남유럽 국가들에서 원하는 큰 폭의 양보는 가능한가. 독일이 제시하는 합의의 전망은 앞서 지적한 독일 헌재의 판결 등을 고려하여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독일 기본법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영구적인 지원이 아닌 한시적인 지원, 무제한의 지원이 아닌 한도를 정한 지원이라는 틀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남유럽 위기국들의 갈증을 해소하고 한시적으로는 해결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지만 금융 위기를 해결하는 전폭적인 지원책이 나오기는 어렵다.

다음 단계로는 어렵고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EU 국가들의 재정통합이 해결책이 될 것이다. EU가 독자적인 재정을 확보하는 방안으로는 궁극적으로 유럽 연합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상품에 대한 국경세, 혹은 유럽 역내 모든 금융 거래에 대한 토빈세 등이 도입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유럽연합이 회원국들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다양한 새로운 세원 확보를 통해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독자적인 재정 확보에 성공할 때까지 독일은 한시적인 위기의 소방수로서 중간 해결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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