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고기 파문으로 발칵 뒤집힌 영국

김지호 | 입력 : 2013/02/25 [13:22]
영국인들은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유럽인들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말고기를 금기시해왔다. 그런 영국에서 테스코를 비롯한 유명 마트들에서 판매된 쇠고기버거에 말고기가 섞여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영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러한 사실은 아일랜드 식품안전청(FSAI)이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쇠고기버거를 수집해 실시한 DNA 검사 결과 말고기 29%가 포함된 것이 밝혀졌다. 또한 소량의 돼지고기 DNA도 발견됐다. 이 쇠고기버거는 아일랜드의 실버크레스트 푸드, 리페이 미트 영국의 데일팍 햄블톤에서 제조해서 영국의 대형마트인 테스코, 아이슬랜드, 리들, 알디에 납품한 것이다. 테스코에 버거를 납품한 실버크레스트 푸드는 문제의 버거를 전량 네덜란드와 스페인에서 수입한 원료로 만들었고, 말고기가 섞여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테스코는 재발방지 약속과 전량을 수거하고 환불을 해 주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주가가 빠져 가치가 3억 파운드(약 5000억원)나 증발했다. 영국음식감독센터는 테스코를 포함한 관련 유통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제기를 고려하고 있다고 벼르고 있다.

충격을 받은 영국인들

쇠고기버거가 알고 보니 말고기 혼합육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영국인들은 충격에 빠졌고, 또한 무슬림들은 금기시하는 돼지고기까지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식품안전당국에서는 말고기가 건강에 문제가 되는 것 까지는 아니라며 시민들을 진정시키려 하고 있지만 파장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캐머런 영국 수상은 “비록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는 대단히 충격적이고 심각한 이슈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태”라며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다. 말고기가 혐오스러운 음식이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는 당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환경보건 전문가들은 말고기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현재는 말고기의 출처와 쇠고기와 혼합된 경로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므로 다치거나 병든 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말은 특별한 지위

영국인들이 이번 사태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말에 대한 시각이 다른 유럽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말을 네발 달린 친구처럼 여기고 말고기를 먹는 것은 야만스러운 일로 보고 있다. 영국인들은 질 좋은 영국 쇠고기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영국인들이 쇠고기를 먹을 때 프랑스인들은 말고기를 먹는다’는 우월의식에 쇠고기를 고집하는 것이 영국스러움이라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 호주 및 아일랜드도 말고기를 혐오식품으로 취급한다. 이는 말과 함께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앵글로 색슨의 역사적인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전쟁터에서 주인과 함께 헌신적인 희생을 해온 말들을 영국인들은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처럼 대했다. 또한 자동차가 그 역할을 대신할 때 까지는 말은 주요한 교통수단이었다. 저명한 동물 심리학자는 “당신 같으면 아끼는 롤스 로이스를 먹어버리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말고기 거부감의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했다. 지금도 영국에서 말은 다른 가축동물들과는 달리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호위하는 기마병들과 수려한 말들이 끄는 마차 행렬은 위엄 있는 왕실 행차의 전통이다. 또 군중들의 소요를 막기 위해 출동하는 기마 경찰은 그 위세만으로도 분위기를 제압한다. 이러한 전통을 고수하는 영국인의 정서에서 말고기에 대한 거부감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선 문화, 사회적인 혐오라고 볼 수 있다. 더 텔레그라프의 헤리 월롭기자는 다양한 인종이 몰려 사는 국제화 도시인 런던에서 말고기를 구해보기 위해 식당이나 가게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낙타, 악어꼬리 등 갖가지 희귀한 식재료는 발견했지만 말고기는 한 군데서도 찾지 못했고, 지방에 창고를 둔 온라인 판매업체 한 곳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그만큼 영국에서는 실제로 말고기 수요가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반면,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이웃 국가에서는 말고기를 제공하는 식당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고기 파문, 어디까지 비화될까?

말고기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현재로선 예견하기 어렵다. 이 덕에 대형마트에 밀려 고전하던 전통적인 지역 푸줏간들의 인기는 오히려 되살아나고 있다. 영국의 리드지역의 정육시장에서 푸줏간을 20년 넘게 운영해 온 마이클씨는 “테스코에서 일어났던 일이 여기서 일어 났다면 아마도 가게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라며, “지역 푸줏간에서 고기를 사게 되면 손님은 그 고기를 다루는 사람이 누군지, 어떤 것을 받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지역신문이 인터뷰 기사로 보도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영국의 동네 중심가에는 빵집, 정육점 등이 예외 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은 대형 마트들이 들어서면서 그런 전문 가게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반면, 테스코는 연이어 뜻하지 않은 악재가 터지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테스코의 트윗팅이 고객들의 불붙는 감정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테스코의 고객관리 팀이 팔로워들에게 밤 11시에 “지금은 졸린 시간이라 이제 잠자러 간다 내일 아침 8시에 봐요”라는 트윗 글을 올렸는데 ‘잠자러 간다’는 표현을 ‘건초더미로 간다(hit the hay)’라는 속어를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익살스러운 표현이지만,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말이 자러 간다’는 속어를 사용한 것이 비아냥댄 것 아니냐며 팔로워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것이다. 테스코측은 이미 말고기 사태 전에 프로그래밍 된 것이라며 백배사죄했지만, 테스코측의 안일한 대처에 대해 비난여론이 고조됐다. 한편, 아일랜드의 식품업체들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 아일랜드의 축산가공업은 위기에 몰린 상황이다. 이미 버거를 공급한 아일랜드의 실버크레스트 푸드는 공장가동을 무기한 중단했다. 현실은 생산을 해도 더 이상 납품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실버크레스트 푸드가 지목한대로 유럽의 업체가 말고기 원료를 공급했다는 것이 사실로 판명되면 영국, 아일랜드, 유럽 사이에서 복잡한 다국간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말고기에 대한 시각차이가 국가간의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더욱이 고조되는 영국의 EU 탈퇴 여론으로 인한 영국과 유럽의 갈등이 증폭되는 시점에서 말고기 파문은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패이게 하고 있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