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의 길로 가는 유럽, 멀어지는 영국

김지호 | 입력 : 2013/01/25 [13:30]
2013년 12월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은 경제적 통합을 가속화하기 위해 해외 은행들에 대한 단일 감독기구를 유럽중앙은행(ECB) 산하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더 이상의 재정위기 방지를 위해 유로존의 대형은행들은 이르면 2014년 상반기 중에 단일감독 체제 아래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는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통합으로 가기 위한 은행연합의 전 단계로서 중요한 진전이다. 미셸 바르니에 EU 서비스 담당 집행위원은 유로존 내 은행 6000여 개 가운데 200여 개, 국가별로는 최소 3개 이상의 은행들이 감독 대상에 해당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ECB는 유로존 은행들의 최고 감독기관 역할을 한다. △ECB는 각국의 감독기관과 긴밀히 협력한다. △자산 규모가 300억 유로(약42조465억 원)이상, 또는 국가 GDP의 20% 이상인 은행과 유로존의 구제기금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은 자국의 금융당국이 아닌 ECB 신하에 설치될 은행감독기구의 감독을 받는다. △영국, 덴마크와 같은 비유로존 국가는 긴밀한 협력관계에 참여할 수 있다.

은행연합의 전 단계 단일 은행감독기구

ECB와 회원국에서 파견되는 전문가 200여 명이 참여하여 구성될 은행감독기구는 감독대상 은행들에 대한 조사권, 영업 취소권, 제재권 등 강력한 감독권한을 갖게 된다. 이러한 단일 감독기구가 설치되면 유로화안정기구(ESM)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은행에 회원국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구제금융을 지원할 수 있게 되어 각국 은행의 위기가 해당 국가의 부도 위기로까지 번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ESM의 각국 은행에 대한 자금 지원 시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 더욱이 은행간의 상호 보증 등 법적인 문제도 선결해야 할 상황이라 ESM으로부터 각국 은행으로의 직접적인 자금 지원은 현실적으로 2014년 후반이 되어야 가능할 전망이다. 또한 은행연합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과 프랑스 등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지원하자고 요구하고 있지만 독일은 ECB의 감독 기능 정착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갈등의 요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은행연합에 대한 영국의 반대 입장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유럽의 재정통합이 불편한 영국 

비유로존 국가로서 금융 산업이 주축인 영국은 재정통합이 자국의 통화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유지해 왔다. 캐머런 영국 수상은 “통합이 강화될수록 자주권 문제와 연관된다. 영국은 적어도, 내가 수상으로 있는 한, 은행연합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영국에 더 나은 결정권과 조건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이 손님 입맛대로 주문하는 메뉴가 아니다”며 “귀환? 한번 가입하면 영원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캐머런 수상은 “우리 영국은 유로존의 은행연합 결성을 방해한 적 없다. 우리에게는 EU와의 관계를 변화를 모색할 기회가 왔다. 영국인들이 좀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변화”, “유로존이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 역시 변화를 요구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또, “주권을 도로 찾아 갈 수 없다는 구절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영국인들의 EU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차라리 EU를 탈퇴하자는 여론이 지난 달 조사에서 소극적 찬성까지 합하면 약 56%까지 높아졌다. 대표적인 유럽통합 회의론자인 보리스 죤슨 런던 시장은 “유로존 국가들이 세금과 지출에 주권을 포기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 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영국의 EU 탈퇴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탈퇴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는 시간문제”라고 까지 보도한 바 있다.

경제난에 고조되는 반 EU정서

올해 영국의 경제 전망은 어둡다. 북해 유전의 생산량이 3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고, 유럽의 금융위기가 장기화 되면서 2012년에는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더블딥에 빠졌다. 지난해 12월에는 S&P가 영국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트리플딥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경고가 나오기도 했다. 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영국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이 고조되면서 영국의 반 EU 정서는 증폭되고 있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산업 분야에 대한 각종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고, 당장 매년 지불하는 EU 분담금 80억파운드(약 14조원)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없어 EU로의 수출이 절반을 차지하는 영국으로서는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EU로서도 GDP 규모가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번째로 큰 영국의 탈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따라서 단기간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유럽이 통합의 길로 들어 설수록 영국은 대륙에서 점점 더 멀어지려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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