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권토중래, 크림반도

김지호 | 입력 : 2014/04/03 [03:51]

크림반도가 60년만에 러시아 품으로 돌아갔다. 이를 두고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불법이라며 인정할 수 없다고 러시아에 대해연일 비난을 퍼붓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혀졌다. 이는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러시아가와신상담하며 꿈꿔온 권토중래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800년대 중반 러시아제국과 서구 열강 연합군이 격돌한 일명 크림전쟁의격전지였던 크림반도는 현 우크라이나의 동부지역과 함께 1783년 오스만 터키로부터 병합한 러시아의 땅이었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인 1954년에 서기장이었던 우크라이나 태생인후르시초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합병 300주년을 기념한다는우호의 표시로 크림반도와 동부지역 일부의 행정구역을 우크라이나에 귀속시켰다. 이후 1991년 소련의 붕괴되고 무정부상태에 빠지면서 소비에트 연방의 공화국들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가독립하면서 크림반도도 우크라이나에 편입되었다. 당시 러시아는 미국, 영국, 우크라이나와 체결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및 안보를 보존한다는 1994년부타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배치되었던 핵무기를 양도받는데 급급했다. 이후 몇 차례 크림반도에대한 협상이 있었으나 우크라이나와의 우호관계를 고려하여 크림반도의 특수성과 자치권을 보장하는 수준에서 타협을 이룬 상태로 유지되어왔다. 러시아의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EU에 기울어지지 않고 친러입장을 유지하면서 2012년에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와 맺은 관세동맹에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키려는것이었다. 반면 EU는 지난 몇 년간 옛 소비에트연방에서독립해 독립국가연합(CIS)의 창립멤버였던 우크라이나와의 경제연대를 위한 협력협정체결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서방의 압력에도 마이동풍 러시아

 

EU와의 협상은 상당히 진전되는 듯 했으나, 러시와의 관계악화에 대한 보상을 위해 우크라이나가 요구한 200억유로(약29조원)의 지원금에대해 EU가 회의적으로 반응하자,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대통령은 지난해 말 EU와의 협상을 중단하고 러시아와의 관세동맹 추진으로 급선회했다. 친 EU주의자들의 반정부시위가 확산되었고 강경진압으로 유혈사태가발생하면서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탄핵되어 러시아로 망명했고,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정적인 친 EU 성향인 율리아 티모센코 세력이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러자주민 60%가 러시아계인 크림반도가 반발했다. 지난 2월말 크림의회를 점거한 자경단의 요구로 크림 공화국 총리로 임명된 세르게이 악쇼노프는 러시아와의 합병을 속전속결로추진했다. 지난 3월 16일실시한 주민투표에서 82%의 투표율과 97%의 찬성으로 우크라이나로부터의독립과 러시아 연방편입을 동의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투표결과가 나온 17일 당일 크림공화국의 독립국가 지위를 승인했다. 이튿날인 18일에는 악쇼노프 총리가 모스크바로 날아가 푸틴 대통령과 합병조약에 서명했고,이어서 러시아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과 하원과 상원의 비준 절차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크림공화국의독립과 러시아와의 합병을 불법이라며 인정하지 않겠다며 강력하게 반발하며 대 러시아 제제를 경고한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의 으름장들에도 불구하고 합병절차는 마이동풍식으로 거의 다 마무리 되었다.  

 

21세기차르 푸틴?

 

푸틴 대통령은 조약체결에 직전 실시한 상하원 합동연설을 통해 크리미아는 러시아와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였다”고 전제하고, “이곳에서 세례를 받은 1000년 전 러시아 첫 국왕 키에프 대공 블라디미르의 정신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 이어지고 있다. 크리미아를 러시아 제국에 있게 한 용감한러시아 병사들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며 근거를 들었다. 또 “세바스토폴은 러시아 흑해함대의 탄생지이며 러시아군의 영광의 상징”이라며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그는 “지난 소련시절타타르인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겠다. 크림에서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타타르어를 공식언어로 하겠다”며 소수민족에 대한 유화책을 제시했다. “1954년 후르시쵸프 서기장이 크림지역을 우크라이나에 넘긴 개인적인 동기가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위한 것인지 1930년대의 탄압에 대한 속죄의 뜻인지는 몰라도, 이는헌법에 명백한 위반”이라고 재 귀속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그는“크림의 러시아 인들이 마치 감자자루처럼 던져졌다는 말을 들었지만 반박하기 어려웠다. 당시 러시아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느라고 자신조차 돌볼 수가 없었다,”며감성에 호소하기도 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와는 이웃으로서좋은 관계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한다”고 전제하고 “2000년대초반 이래 협상이 정체상태에 있는 육지와 해상 경계선 확정에 속도를 내라고 지시했다”며 크림반도의 귀속으로국경문제가 끝나지 않았음을 밝혔다. 그는 또 서방에 대해서는 “그들은국제법이 아니라 총의 규칙에 따르고 있다. 용수철을 세게 누르면 반동이 생긴다.”며 서방의 압력에 굴복할 생각이 없음을 천명했다. 그는 연설 도중의원들의 30번이나 기립박수를 받았고, 일부 의원들은 연설도중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서방 언론들은 그러한 광경을 두고 마치21세기 차르가 등극한 것 같다고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푸틴은 불리하게 돌아가던우크라이나의 정세를 크림합병이라는 반전으로 이끈 프로였고 서방과의 치킨게임에서 상대방의 허를 찌르고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푸틴 대통령이 빅토르 안에게 승리를 축하하며 치하했던 말처럼 그의 결단은 서방의 리더 누구보다도 강하고 신속했다.

 

크림은 동유럽 영역싸움의 전초전

 

크림의 주민투표 때까지만 해도 서방의 정치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러시아가 서방의 압력에 타협해 크림공화국을 당분간은독립국가 형태로 남겨 둘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크라이나사태로 발생한크림이라는 패는 러시아로서는 만패불청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임을 간과한 것이다. 러시아의 크림 병합은크림전쟁 때와 같은 구도로 우크라이나를 두고 벌어질 영역싸움의 전초전에 불과 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대통령이 비록 우크라이나의 분열을 원치 않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다고 밝혔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미국과 서방국들이 무기력함이 드러난 상황에서우크라이나의 EU가입이나 나토가입을 러시아가 용인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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