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돌풍이 휩쓴 영국 총선

김지호 발행인 | 입력 : 2015/06/04 [11:29]

지난달 영국 총선에서누구도 과반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보수당이 완승했다. 이로서 캐머런 총리는 18년 만에 처음으로 보수당 단독 정부를 구성했다. 스코틀랜드 독립당(SNP)은 제3당으로 급부상하며 기염을 토했다. 반면 참패의 충격에 노동당과 자민당은 심각한 노선갈등을 빚고 있다.

 

과반을 훌쩍 넘는 331석을 확보한 보수당의 승리는 영국 국민들이노동당의 무리한 복지확대보다는 보수당의 경제 살리기를 선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 5년간 긴축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고 경제 활성화에 주력해왔다. 그결과 2009년 GDP 대비 11.3%에 달했던 재정적자는 지난 해 말 5.3%까지 떨어졌다. 작년도 경제 성장률은 유로존이 0.9%로 부진을 면치 못한 반면, 영국은 G7중 최고인 2.8%를기록했다. 캐머런 총리는 선거 캠패인을 통해 지난 노동당 정부의 방만한 재정지출로 악화된 경제를 보수당이회복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860억 파운드인재정적자를 보수당이 재집권하면 3년 후에 70억 파운드 흑자로돌려놓을 수 있다고 설득했고, 이러한 전략은 경기불황에 지친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반면, 정통 좌파 정치인인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는 부자증세와서민감세를 부르짖으며 최저임금 인상, 2년간 에너지 요금동결, 대학등록금감면, 건강보험예산 증액 등 선심성 정책을 남발했다. 이에소요되는 예산은 최고세율 구간에 대한 소득세를 현행 45%에서 50%로인상해 충당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영국병과 IMF를 겪은 많은 영국 국민들은 이러한 무리한 복지확대가 재정파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90년대 제3의 길을 내세우며 노동당 정부를 이끌었던 토니 블레어전 총리는 “불평등만 강조하며 성공을 바라는 중산층을 포용하는데 실패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대로는 향후10년간 노동당의 집권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면서, 사임한 밀리밴드의 뒤를 이을당권을 놓고 노선투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족주의와 지역주의가 휩쓴 총선

 

이번 총선에서 무엇보다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유례없이 강해진 민족주의와 지역주의의 표출이다. 지난 해 주민투표 결과 독립이 무산된 스코틀랜드에서는 민족주의 열풍이 휩쓸었다. 과거 노동당의 텃밭이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기존 6석에 불과했던 SNP(스코틀랜드 독립당)가 59석중 56석을 싹쓸이하며 제3당으로 급부상했다. 심지어는 20세의 여대생이 중진 노동당후보를 꺾고 348년만의 최연소 하원의원이 되면서, 스코틀랜드는 ‘SNP 상징색인 노랑막대기만 꽂아도 당선’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으로전역이 노랗게 물들었다. 지난해 주민투표 실패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 새먼드 전 당수의 뒤를 이은 약관 44세의 니콜라 스터전 SNP당수 겸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거물정치인으로 등극했다. 한편 SNP가 총 득표율 4.7%로 56석을 얻은 반면,UKIP(영국 독립당)는 보수당과 노동당에 이은 3위인총 투표수의 12.8%라는 득표를 하고도 단 1석밖에 건지지못했다. 하원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제가 없는 소선구제의 최대 피해자가 된 셈이다. 나이젤 파라지 UKIP당수 자신도 보수당 후보에 패해 낙선하고 의석확보가기대에 못 미치자 파라지 당수는 사임을 표했으나 당의 전국집행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부결시키자 당수직에 복귀했다.파리지 당수는 “현재의 선거제도는 파산했다”며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정 파트너들의 엇갈린 명암

 

한편 보수당은 노동당이 다수당이 되면 SNP와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이라는경고하면서 잉글랜드인들의 민족감정을 자극해 표심을 결집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보수당과 연정 파트너였던자민당은 57석을 가졌던 제3당에서 겨우 8석의 소수당으로 추락해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지역주의 돌풍에의해 이념적 중간지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17세기 이후 왕당파와 팽팽히 맞서왔던 휘그당이 전신인 자민당은 1900년 노동당이 창건하면서 제3당으로 쇠락의 길을 걸어 왔지만이번처럼 존폐의 위기까지 몰린 적은 없었다. 선거기간 동안 진행된 여론 조사에서도 줄곧 UKIP에도 뒤지는 8% 대의 지지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나마 선전을 한 지역구들이 있어 8석을 얻기는 했지만 400년 역사의 정당으로서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적이다. 한때 윈스톤처칠에 까지 비유되며 촉망 받는 정치인이었던 닉 클레그 당수는 의원직은 유지하게 됐지만 정치생명마저 위태로운 처지가 되었다. 그가 2010년 보수당과의 연정 당시 기존의 대학 등록금 동결 공약을뒤집고 등록금 인상법안을 통과시켜 젊은이들의 원성을 샀던 일은 이번 선거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어쩌면 연정이라는 달콤한 현실에 안주해 자신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해온 자유주의라는 정체성을 어필하지 못한결과일 수도 있다. 이념과 지역주의가 충돌하는 이 시점에서 왜 중도적 자유주의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명쾌한 설명을 못하고, 누구도 과반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에 또 다른 연정을 꿈꾼 대가이기도 하다.       

 

밝아진 경제 전망, 불확실해진 미래

 

기업에 우호적인 보수당의 집권으로 영국의 경제전망은 한층 밝아졌다. 영국정부는 공약대로 향후 3년간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면서 성장우선 정책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차기 정권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투자자들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를 반영하듯 영국 파운드 가치는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브렉시트라는 복병이 남아 있다. 캐머런 총리가 고조되고 있는 반이민,반EU 정서를 의식해 EU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를 2017년까지 실시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의 목표는EU 잔류를 설득하기 위해 주민투표 이전에 무분별한 이민을 제한할 수 있도록 EU의 ‘역내 이동의 자유’ 원칙을협상을 통해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EU는 영국과협상을 할 용의는 있으나 상품, 서비스, 자본 및 인력의역내 이동의 자유만은 개정이 불가능한 기본정신이며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캐머런 총리는 집권 2기 내각을 구성하면서 지체 없이 협상팀을꾸렸다.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을 서열 2위의 수석 장관으로임명하면서 EU협약 개정 협상 책임을 맡겼다. 또 지난해 7월 교육부 장관에서 물러났던 대 EU 강경파인 마이클 고브를 법무장관에재기용하고 EU의 인권법 대신 영국 인권법을 적용하는 임무를 맡기면서,EU와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만일 영국이 EU에서탈퇴하면 EU 잔류를 원하는 스코틀랜드도 독립해 작은 영국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세계 각국의 경고가 잇따르고있지만 영국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투표가 1년 앞당겨 질 가능성마저 언급하면서 벼랑 끝 전술을펼칠 기세다. 지난 스코틀랜드 국민투표에서 보여주었던 캐머런 총리의 승부사적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되고있는 모습이다. 영국과 EU의 기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것이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