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유럽 2015

김지호 발행인 | 입력 : 2015/12/03 [15:40]
올 한해 유럽의 뉴스 헤드라인들은 영국여왕의 최장기군주 등극, 경제회복 조짐으로 유로화 강세 등 밝은 소식들도 간간이 있지만, 대부분 긴축, 그렉시트, 지역주의, 신냉전, 난민, 테러 등 어두운 소식들로 점철됐다. 이러한 이슈들은 단기간에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난제 들이라는 점에서 유럽에 드리운 우환거리인 셈이다.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 올 한해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필자의 작년 12월 칼럼을 통해 언급했듯이 이미 지난해부터 잉태되어 온 문제들의 예고된 결과물이다. 그나마 다행히 그리스의 급진 좌파 시리자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그렉시트나 그로 인한 유로존의 붕괴라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직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치프라스 총리가 유로존 정상회의 합의안에 따라 통과시킨 증세와 연금개혁을 골자로 하는 개혁입법에 반발해 지난달엔 그리스 노동조합이 시리자 집권 이후 처음으로 총파업을 실시했다. 이에 더해 포르투갈도 긴축을 추진하는 우파가 집권 한달 만에 사회당과 공산당의 좌파연합에 의해 실각할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 유럽의 재정위기는 아직도 그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한층 거세진 지역주의 바람

 

올해는 재정위기의 여파로 극우돌풍과 지역주의가 유난히 맹위를 떨쳤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독립의 꿈이 좌절된 스코틀랜드 독립당(SNP)이 올해 치러진 총선에서 59석 중 56석을 싹쓸이하며 제3당으로 급부상했다. 반면 스코틀랜드 이외의 지역에서는 보수당이 휩쓸면서 과반을 훌쩍 넘는 331석을 확보해 단독 집권에 성공했다. 지역주의 돌풍에 의해 이념적 중간지대가 사라지면서 제3당으로서 57석을 가졌던 자민당은 8석의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총선에서의 압승에 힘을 받고 공약대로 2017년 까지 영국의 EU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를 시행하겠다고 천명한 캐머런 총리는 EU로부터 자율권을 확보하기 위한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주 내용은 크게 4가지로서, 영국이 유럽의 정치통합 구상에 불참, EU에서 오는 이민자 통제와 복지 제한, EU가 제정한 법을 각국이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소위 레드카드 시스템, 유로가 EU의 유일한 통화가 아닌 점을 분명히 하고 다른 통화에 대한 실질적인 불이익을 방지 등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실제적으로 유럽연합 구성의 기본정신이었던 역내 이동 및 거주의 자유, 경제 통합에 이은 정치통합으로 유럽 합중국 구상과 정면으로 배치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원회와 동구권 국가들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나 강경할 것으로 예상했던 독일은 의외로 문제 해결의지가 있다면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EU의 주축은 누가 뭐래도 가장 큰 경제력을 갖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영국이다. 따라서 만일 영국이 떨어져 나간다면 자국 이기주의와 구조적인 불균형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EU는 해체의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장 적극적인 유럽 통합론자인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로존에서 가장 덕을 본 국가는 독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일 통화로 환율 장벽이 없어진 덕에 역내 수출이 가장 많은 독일은 늘 흑자를 누려왔다. 반면 수입이 많지만 환율조정이 불가능한 주변국들은 적자가 쌓였다. 이는 정치 통합이 없이 이루어진 화폐통합의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이기도 하다.

 

신냉전해소를 위해 동분서주한 메르켈 총리

 

지형학적으로 러시아, 동구권과 인접해 있는 독일에게 EU와 나토의 블록은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토의 동진은 구 소련 권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러시아의 이해관계와 상충한다. 그 결과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로 시작된 서방의 대 러시아 제제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나라는 지난해 러시아와의 교역량이 800억 유로에 달했던 독일이다. 따라서 메르켈 총리는 EU의 균열을 막고 러시와도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이차 방정식을 풀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메르켈 총리의 중재 노력으로 지난 2월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 4개국 정상들이 민스크에서 우크라이나 휴전을 위한 평화협정을 어렵게 타결했으나 잘 이행되지는 않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5월에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크렘린 궁 인근의 2차 대전 무명용사들의 묘를 참배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IS 격퇴를 명분으로 내건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으로 미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메르켈의 노력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IS를 피해 유럽으로 물밀 듯 밀려드는 시리아 난민들과 지난달 파리에서 발생한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테러 공격으로 IS 격퇴에 대한 서방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러시아와의 제한적 공조로 기류가 변했다. 

 

큰 손 중국과는 밀월시대

   

올해 유럽은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로 앞 다투어 신흥 패권 중국과 밀월 관계 형성에 공을 들였다. 지난 10월 영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황금마차로 영접받으며 영국 여왕과 왕세자를 비롯한 주요 황실 가족들이 총 출동하여 환대하는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그 대가로 영국은 원전, 고속철등에 400억 파운드(약 70조원)의 투자 약속을 이끌어 냈다. 이에 질세라 메르켈 총리도 중국을 방문하여 에어버스 헬기 100대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그녀는 “독일에는 여왕이 없지만 다른 것은 모두 잘 준비가 되어 있으니 독일을 방문한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언중유골로 속내를 비쳤다. 뒤를 이어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기후변화협력 명분으로 중국을 방문했고 약 200억 유로의 핵폐기물 재처리 협력 협정을 맺었다. 네덜란드도 그 뒤를 따라 중국을 방문했다. 이들의 목적은 모두 한결같이 큰 손 중국의 투자 유치다.

 

깊어진 반난민 이슬람 혐오증

 

올해 유럽 사회를 달군 최대 이슈는 난민과 테러에 대한 비상이다. IS의 횡포가 극에 달하면서 시리아를 탈출하는 난민들이 유럽으로 물밀 듯 몰려왔다. UN의 집계에 의하면 올 한해 80만명 이상이 유입되었고 이중 65만명 정도가 시리아 난민이다. 무조건 난민 수용 방침을 천명해 ‘마마 메르켈’로 불리던 메르켈 총리도 결국 난민 통제로 선회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려오는 난민들로 인해 메르켈의 포용정책에 대한 자당인 기독민주당과 연정 파트너인 기독사회당의 반발로 리더십의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난민 들 중에 100명에 두명 꼴로 IS대원들이 위장 잠입한다는 정보기관의 경고가 엄포가 아니었음이 확인됐다. 지난달 2차 대전 이후 최악인 파리 연쇄테러의 범인들 중 2명이 그리스를 통해 10월에 입국한 시리아 난민으로 밝혀졌고 사망한 테러범 중에는 15세와 18세 소년이 있다는 사실에 유럽인들은 경악했다. 축구장에서 자폭한 테러범은 벨기에 거주한던 이슬람 점증하던 반난민 여론이 이슬람 혐오증으로까지 확대됐다. 지난 1월 17명이 희생된 샤를리 앱도 테러에도 관용을 언급하던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국가 비상상태를 선포하면서 IS와 테러리스트에 대한 무자비한 응징을 천명했다. 올해를 기점으로 유럽에서 인권과 온정주의라는 사회가치는 한참 후 순위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