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의 볼모, 지브롤터

김지호 발행인 | 입력 : 2017/06/01 [16:31]
지난 달 본격적인 브렉시트 협상을 시작한 EU와 영국이 서로 하드 브렉시트 불사를 외치며 치열한 설전과 함께 기싸움을 하고 있다. 이 여파로 유럽과 인접한 지브롤터를 비롯한 영국의 해외영토가 영유권 분쟁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볼모의 처지가 되고 있다. EU와 영국 시민들의 이동과 거주에 대해 양측이 서로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해 국경통제가 강화된다면, 이곳이 직접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되기 때문이다.

 

지브롤터는 1713년 스페인의 왕위계승전쟁의 결과로 영국령이 된 이래 300년 동안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 했던 스페인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차대전 이후에도 여러 차례 시도가 있었으나 2002년 지브롤터 주민투표 결과 약 3만명의 주민 중 99%의 반대로 무산됐다. 2013년과 2015년에는 스페인 선박의 지브롤터 앞바다 진입을 두고 양국이 갈등을 겪은 바 있다.

 

되살아나는 영유권 분쟁

 

최근 재점화된 영유권 분쟁은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브렉시트 협상 가이드라인이 불씨가 되었다. 가이드라인의 24절에 “EU와 영국이 체결하는 자유무역협정은 스페인과 영국의 합의 없이는 지브롤터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스페인에 실질적인 거부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국은 부당한 조항이라고 반발한 반면, 스페인은 이 24절을 근거로 지브롤터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이에 고무된 스페인은 지난 4월 29일 가이드라인 승인을 위한 유럽정상들의 미팅이 있던 날 아침에 초계함이 지브롤터 앞바다를 침범했다가 영국해군의 경고를 받고 물러갔다. 이는 3월 29일 브렉시트 협상 개시 직후인 4월 한 달에만 세 번째 침범이었다. 영국 정부는 자국령인 지브롤터 영해 침범에 대해 스페인 정부에 공식적인 외교적 항의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지브롤터 앞바다는 자국의 바다로서 영국의 영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713년 위트레흐트 평화 조약에는 지브롤터 바위산 넘어서의 영국의 통치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스페인의 주장이다. 그러나 영국은 국제법에 따라 지브롤터 앞바다 12 마일을 영해로 선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이클 하워드 전 보수당 대표 등은 영국 총리는 포클랜드를 지켰던 대처 전 총리처럼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알폰소 다스티스 스페인 외무장관은 “영국에 있는 누군가가 침착을 잃었다. 그런 공격적인 언급을 할 이유가 없다. 진정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 발언 몇 시간 후 첫 번째 영해 침범이 이루어진 걸 보면 다분히 의도적인 도발인 것으로 보인다.

 

영욕의 역사를 굽어보는 헤라클레스의 언덕

 

지브롤터는 스페인에게는 뼈아픈 역사가 새겨진 빼앗긴 땅이다. 아프리카를 마주보면서 스페인 남단에 붙어 있는 여의도 면적의 약 80% 정도인 조그만 반도로서 지중해와 대서양을 있는 관문에 위치하고 있어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이곳을 고대 그리스인들은 헤라클레스가 산을 부수어 길을 내 물길을 이었다고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부르며 지구의 끝으로 알고 이 해협을 벗어나면 지구 바깥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바깥인 북아프리카에는 아라비아에서 진출한 이슬람인 무어족이 있었다. 이들의 지도자인 타리크가 711년 이곳에 상륙하여 스페인에 있던 서고트 왕국을 북쪽 고산지대로 밀어내고 이베리아반도의 70%이상을 차지했다. 지브롤터라는 이름은 이슬람 말로 타리크의 언덕이라는 뜻인 자발 타리크에서 유래되었다. 이후 이슬람족 최후의 거점이었던 그라나다가 1492년 에스파니아 왕국 군대에 함락되면서 780년간의 이슬람 지배는 종지부를 찍는다. 이후 에스파니아가 해양 패권의 염원을 담아 애지중지했던 지브롤터는 1713년 체결한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에서 체결한 평화 조약에 따라 영국의 영토가 된다. 후사가 없었던 카를로스 2세의 왕위 계승을 놓고 1701년부터 1713년까지 벌어진 전쟁의 승리에 따른 전리품이었다. 1704년 8월 다뉴브강 상류에 위치한 블렌하임 전투에서 후일 말보로우 공작 칭호를 받는 영국의 죤 처칠 사령관이 이끈 영국-네덜란드-오스트리아 연합군이 프랑스-바이에른 동맹군을 괴멸시키고 대승을 거두면서 승리를 결정지었다. 이 결과 루이 14세의 프랑스는 쇠퇴하기 시작한 반면, 무적함대 격파 이후 잊혀져 가던 앤여왕의 영국은 해상강국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면서 제해권을 바탕으로 대영제국을 건설했다. 참고로 윈스톤 스펜서 처칠 전 수상은 1대 말보로 공작인 죤 처칠의 둘째딸로 이어진 후손이다. 따라서 지브롤터는 서로에게 결코 양보하기 어려운 곳인 셈이다.

 

브렉시트로 해외영토 갈등 확산

 

국경의 의미가 유명무실해진 EU의 틀 안에서는 그런대로 묻혀졌던 상반된 이해관계가 브렉시트를 계기로 다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그 동안은 유럽의 소수민족들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경계해 온 EU회원국들이 이제는 떠나는 영국보다는 EU회원국인 자신의 편을 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깔려있다고 보인다. 또한 같은 이유로 한동안은 잠잠했던 아르헨티나도 포클랜드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다시 펼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무역협상을 위해 브뤼셀을 방문했던 수산나 말코라 아르헨티나 외무장관은 “영국의 EU탈퇴를 계기로 그 동안 영국과 단단히 결속되어 있던 EU의 입장에 변화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영국으로서는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간의 자유로운 통행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입장이다. 1998년 극적으로 평화협정을 타개해 친 영국파와 친 아일랜드파의 유혈 대립을 종식시킨 이래 국경 통제가 사라졌는데 이제 와서 다시 국경을 통제하면 새로운 갈등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불사의 영토수호 의지

 

브렉시트라는 외로운 길을 택한 영국은 주변국들의 엄포와 위협을 헤쳐나가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는 영국이 자국의 이익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비장한 강경발언들이 예사롭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참고로 영국의 군사력은 세계 5위로서 항공모함 1척과 12대의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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