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위기일발

김지호 발행인 | 입력 : 2018/04/02 [16:55]
지난 달 영국 남서부솔즈베리에서 일어난 전직 러시아 정보총국(GRU)소속 이중스파이 스크리팔 부녀의 독극물 중독사건의 결과로영국과 러시아가 급격히 충돌구도로 치닫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 등 서방국가들이 영국의입장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서구와 러시아간에는 신냉전 기류마저 형성되고 있는 양상이다.

 

사용된 독극물이 옛소련에서 개발했던 화학무기인 노비촉이라는 치명적인 신경가스로 드러나자 테레사 메이 총리는 즉각23명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이라는 강경카드를 뽑아 들었다. 이에맞서 러시아는 동수의 영국 외교관 추방에 더해 모스크바 소재 영국문화원과 상테페테르부르크 소재 영국 총영사관 폐쇄로 한발 더 나갔다. 영국과 서방은 이 사건에 대한 러시아의 명확한 해명을 요구하면서 대러시아 경제제제를 경고하고 나섰지만, 러시아는 영국이 근거도 없이 자국에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반발하면서 맞대응을 천명했다.

19세기 중반 크림전쟁에서 영국 프랑스 투르크 연합군에 패했던 뼈아픈역사를 기억하는 러시아인들은 서방의 포위와 압박이 심화될수록 강력한 리더십에 열광하는 성향이 있다. 서방의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크림반도를 병합한 덕에 가해진 서방의 경제제제를 헤쳐오면서 내성을 쌓은 푸틴 대통령은 ‘이번에도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독극물 사건며칠 후 실시된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이 76%득표로 4선에성공한 것은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는 푸틴에 대한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식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영국의메이 총리도 신속하고 초강경으로 대응하는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총선패배와 당내반발로 위기에 몰렸던 리더십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따라서 양측의 강대강의 대결구도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치명적인 맹독성 화학무기 노비촉

 

노비촉(Novichok)은 구 소비에트 시절 군사용으로 개발된 생화학무기로서가장 강력한 독극물 중 하나인 신경작용제로서 러시아어로 ‘새로 나타난 자’라는 뜻이다. 노비촉은 다른 신경제제와 같이 신경이 근육에 전달하는신호를 차단해 신체기능을 무력화 시킨다. 대표적인 증상으로 동공수축,호흡곤란, 구토 등이 나타나면서 질식과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신체 접촉 시 30초에서 2분사이에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사망에 이르게 된다. 23년전 일본의 옴진교 테러에 쓰였던 사린(SARIN)가스나 김정남의 암살 때 쓰였던 VX보다 5~8배 강력한 독극물로서 VX처럼 무해한 두가지 중간체가 합쳐지면독극물이 만들어진다. 노비촉은 여러 변종을 만들 수 있는데 기본형태는A-230이다. 변종인 A-232가 러시아의군사용 등급으로 쓰인 Novichok-5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알렉산데르 야코벤코 주영 러시아 대사는 스크리팔 부녀가 중독 된 채로 발견 당시 상태에 대한 여러 증언들을 볼 때 그 노비촉은 A-234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즉 구 소련의 군사용 그레이드가아닌 영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노비촉을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영국, 스웨덴, 체코, 슬로바키아와미국이란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영국은 러시아의 수거한 샘플을 보내달라는 요구와 A-234가 맞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해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러시아국적인 율리아 스크리팔에 대한 영사접견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며 영국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용했던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독극믈 중독사건

 

전 러시아 스파이 스크리팔 부녀의 노비촉 중독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러시아정보총국(GRU)소속 대령이었던 세르게이 스크리팔(66세)은 영국에서 근무 시 영국정보기관 MI6에 포섭돼 러시아 정보요원명단을 넘기는 등 이중 스파이 노릇을 했다. 이후 이러한 행위가 발각되어 2006년에 모스크바에서 13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중, 미국과의 스파이 교환 프로그램으로 2010년에 풀려난 후 영국에귀화해 가족과 함께 솔즈베리에 정착했다. 이후 그의 가정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아내 루드밀라는 2012년에 암으로 죽어 솔즈베리 묘지에 묻혔고, 아들 알렉산데르도작년 7월에 휴가차 애인과 함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다가 급작스런 간기능 장애로 사망해 어머니옆에 묻혔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딸 율리아(33세)는 러시아 국적으로 2014년에 모스크바로 갔고,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의 안내센타에서 일하기도 했고. 현재는펩시코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스카이프 영상통화를 이용해 홀로 된 아버지와 자주 연락해왔다. 그녀는 오빠의 생일 이틀 후인 지난 3월 3일에 모스크바에서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고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인 로스 카시디가 그녀를 솔즈버리 집에 데려다줬다. 다음날인 3월 4일스크리팔 부녀는 오전 9시 15분경 이동하던 그의 차량이 CCTV에 찍혔고 묘지에 들러 꽃다발을 놓고 간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행적이 보이지 않다가 오후 1시 40분에 펍에서 음료를 마신후 이태리 식당으로 이동 2시 20분부터 3시 35분까지 머물다가 나간 장면이 포착됐다. 이후 4시 15분경 응급센타에식당에서 멀지 않은 벤치에 이들이 쓰러져 있다는 목격자들의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해 이들을보살피다가 스크리팔씨 집에도 들러 보았던 경관도 중독되어 쓰러졌으나 회복되었다. 노비촉이 누구에 의해어떻게 이들을 중독시켰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테리다. 누군가가 모스크바에서 출발전 율리아의 짐가방에 화장품이나선물을 가장하여 넣어 놓았거나 영국 현지에서 스크리팔씨의 BMW차량 손잡이 또는 환풍구에 묻혀 놓았을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지만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격화하는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은 러시아가 다량의 노비촉을 비축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면서, 독극물 공격이 러시아의 소행이며 반대파 제거를 바라는 푸틴 대통령이 배후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검은 돈 차단을 위해 자금세탁방지법 개정안 발의 등 강력한 추가제재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했다. 미국, 프랑스, 독일등은 영국의 입장에 대한 강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노비톡과 같이금지된 화학무기들은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감시아래 전량 폐기했으며, 러시아가 스크리팔에 대해 독극물 공격을 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넌센스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로서는 흘러간 인물인 스크리팔에 대해 공격할 가치가 없고, 더구나월드컵을 몇 달 앞두고 그런 무모한 일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블라디미르 치조프 유럽연합(EU)주재 러시아 대사는 스크리팔 부녀를중독시킨 노비촉의 출처는 영국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솔즈베리에서 불과12Km 떨어진 포톤 다운(Porton Down)에 소재한 영국최대의 군사화학무기 연구소가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며 이곳에서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샘플을 받지 못해 증거는 없지만, 구소비에트의 무기 등급인 A-232(Novichok-5)에 중독되었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볼 때 실험실에서 소량 생산된 등급일 가능성이 높다는주장이다.

 

화학무기연구소의 투자명분이 된 독극물 중독사건

 

정보기관들이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상대국과 벌이는 음모와 공작들로 인해 애꿎은 희생양들이 미스테리한 피해를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진실을 확인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 배경과 동기를 살펴봄으로써 설득력 있고 근접한 사실을 유추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독극물 공격이 일어나고 10일 후,개빈 윌리엄슨 영국 국방장관은 화학무기 연구소에 대한 전격적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그는“예산을 쥐어짜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일어난화학무기공격 등에 대비하기 위해 포톤 다운에 4,800만 파운드(약 720억원)를 투자하여 최첨단 분석 및 방어 능력을 계속 유지해 나갈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선제적 예방적 조치로서영국이나 해외에서의 공격에 즉각적으로 대처와 배치를 할 수 있도록 수천 명의 영국 군인들에게 탄저균 백신을 접종할 계획임을 밝혔다. 혹시, 지구 어디선가에서 당장이라도 터질지 모를 화학전을 예견이라도한 것일까? 노비촉 중독 사건 열흘 후 의문의 살해를 당한 러시아 출신 망명객 니콜라이 그루쉬코프(69)도 또 다른 희생양이었을까?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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