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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1.1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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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볼 때처럼, 다시는 못 볼 것처럼‥”
[화제의 인물 인터뷰] "지여처다"란 새로운 말을 만든 시인 송현
 
문일석 기자
 

▲송현 시인     ©정연우 기자

<도깨비학교 문고>라는 300만권 이상 팔린 초대형 밀리언셀러 작가이자, 국내 최초의 생활실천선인 무향선(無向禪)을 창시하기도 한, 송현 시인이 최근 <지여처다>란 신간을 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여처다>란 새로운 말을 만든 저자 송현 시인을 만나 최근 근황과 함께 발간 배경 등을 들어봤다.
 
                                                                                         대담 : 문일석 기자
 
▲문일석 기자 · 본지 발행인  

기자 : 선생님 신간 출간을 축하합니다.

송현 : 고맙습니다.

기자 : 근데 그 책에 왠 오자가 그리도 많습니까?

송현 : 제가 그 동안 수 십 권의 책을 냈는데, 이 책만큼 오자 많은 책은 처음 봅니다. 독자 한 사람이 오자를 일일이 찾아서 총 몇 개라고 알려주면서 이렇게 오자가 많은 책은 처음 본다고 하더군요.

기자 : 그 이유가 뭡니까?

송현 : 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출판 사상 오자가 가장 많은 책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기자 : 그 동안 책 출간이 뜸하였지요?

송현 : 예. 삼년 전에 “어머님 전 상서”를 출간한 이후로 처음입니다.

기자 : 책 제목이 “지여처다”인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송현 :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처음 볼 때처럼, 다시 못 볼 것 처럼이란 네 가지 개념을 한 데 합친 말입니다.

기자 : 우리 말 사전에 있는 말입니까?

송현 : 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내가 만든 말입니다.

기자 : 말을 개인이 함부로 만들어도 되는 겁니까?

송현 : 함부로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꼭 필요한 말은 누가 만들어도 만들어야지요.

기자 : 하긴 그래요. 그런데 지여처다란 말을 만든 이유가 뭡니까?

송현 : 나는 그 동안 새로운 낱말과 학술용어를 여러 개 만든 적이 있습니다. 가령, 재혼(再婚)이란 말 대신 “새혼”이란 낱말도 내가 만든 말입니다. 그런데 새혼이란 말은 언제부터인가 네이버 국어사전에 보통명사로 오를 정도로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땀과 눈물, 열정과 사랑의 기록"

기자 : 새혼 말고도 다른 말도 만든 게 여러 개 되지요?

송현 : 한글자형학 용어 400여개와 ss이론 용어 500여개 항명학 용어 400여개 등 무려 1300여개의 용어를 내가 만들었습니다.

기자 : 그렇게 많은 말을 만들었으니, 선생님은 새로운 말을 만드는데 도가 텼겠군요

송현 : 도까지는 몰라도 내가 새로운 학문이나 문화의 새 지평을 여는데 필요한 말은 만들어 쓸 수 있는 수준은 되지 싶어요.
기자 : 지여처다란 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송현 : 앞서 말했듯이 지여처다란 말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처음 볼 때처럼, 다시는 못 볼 것처럼”이란 네 가지 의미를 한데 담은 내 삶의 기본 정신과 철학을 함축한 말입니다. 내 입으로 이딴 소리 하기는 좀 뭣하지만, 일본 말에는 “이찌에이찌고”(一期一會)란 멋진 말이 있는데, 우리 말에는 이런 멋진 말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내가 만든 것입니다.

기자 : 이찌에 이찌고란 말은 다도(茶道)를 설명할 때 쓰는 일본 고유한 단어 아닙니까?

송현 : 그렇습니다. 이찌에 이찌고란 말은 일본 다도의 기본 정신의 하나로도 쓰이는데 “차 한 잔 마시는 것을 내 생애에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진지하고 치열하게”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자 : 그렇고 보니 일본 사람들은 차 한 잔을 마시는데도 온몸으로 거의 목숨을 걸고 마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송현 : 그렇습니다. 그들은 차 한찬을 마시는데도 홀짝 홀짝 마시지 않습니다. 이번에 내가 만들어 세상에 공개하는 “지여처다” 혹은 “지여처다정신”이란 말이 앞으로 “이찌에이찌고”란 일본말과 당당히 맞짱 뜰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나아가 그보다 더 멋진 말로 널리 쓰였으면 더 좋겠습니다.

기자 : 지여처다란 말의 용례를 좀 설명해 주시지요?

송현 : 지어처다정신,지어처다방식,지어처다주의,지어처다명상,지어처다원칙,지어처다인간,지어처다사랑,지어처다세계,지어처다역사,지어처다놀이,지어처다이론,지어처다뉴스,지어처다강좌,지어처다일기,지여처다본질,지여처다공부,지여처다교사,지여처다학교,지여처다카페,지여처다앨범,지여처다상담,지여처다센터,지여처다클럽,지여처다무용,지여처다음악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쓸 수 있습니다.

기자: 이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습니까?
"걸작 의식에 사로잡힌 문학 청년 시절과 스승들"

송현 : 이 책에는 내 삶의 궤적을 적은 글들이 담겨 있습니다. 1부 “어머니는 위대한 스승”에는 우리 어머니와 나의 아이들 이야기가 있고, 2부 공개구혼장에는 나의 첫 결혼과 두 번째 결혼에 얽힌 이야기가 있고, 3부 만남에는 내가 만난 소중한 인연들에게 대한 이야기가 있고, 4부 나의 첫 번째 유서에는 젊은 날 치열하게 살아온 이야기가 있고, 5부 참치 오빠 이야기에는 내 이웃의 이야기가 있고, 6부 나와 청와대와 싸움에는 한글글자판 통일을 위해서 박정희 정군 때부터 지금까지 투쟁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여처다 정신으로 살아온 내 삶의 기록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삶의 땀과 눈물, 열정과 사랑의 기록입니다.

기자 : 새로 쓴 원고들입니까?

송현 : 새로 쓴 것들도 있고, 그 동안 잡지 등에 발표한 글들도 있습니다.
기자: 선생님은 문학청년 시절에 주로 어떤 생각을 하였습니까?

송현 : 문학청년 시절에 나는 내 깜량도 잘 모르고 걸작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기자 : 걸작의식이라니요?

송현 : 나는 한국문학 나아가 세계문학사에 남는 걸작을 쓰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뜻입니다. 가령 20대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이즈”에 도전하려고 “소리. 소리. 소리”란 실험장편 소설(2200매)을 썼습니다.

기자 : 그때가 몇 살 때입니까?

송현 : 부산에서 중학교 국어 선생을 할 때이니 스물 대 여섯 때이지 싶습니다.

기자 : 20대 때 2천매가 넘은 장편소설을 쓸 수 있었던 계기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송현 : 그때 한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녀에게 점수 딸 욕심으로 밤마다 원고를 써, 다음 날보여주면, 그녀는 “저는 이 작품을 평가할 안목은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열정이나 독서량, 올바른 삶의 자세 등으로 미루어 반드시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간밤의 피로는 싹 가셨습니다. 그 재미로 매일 소설을 썼던 것입니다.

기자 : 그 원고를 언제 출간 하였습니까?

송현 : 이름없는 문예지에 연재를 했지만 빛을 못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참 억울한 일입니다.

기자 : 선생님, 부산에서 언제 상경하였습니까?

송현 : 1974년에 서울 서라벌고등학교로 직장을 옮겼고 그 이듬해 “시문학”으로 데뷔했습니다.

기자 : 젊은 날에 정신적 스승은 누구였습니까?

송현 : 함 석헌 선생입니다. 처음에는 책을 통해서 선생님을 알았습니다.그 뒤 부산 송도복음 병원에서 하던 장기려 박사님 성경 모임에서 한달에 한 번 씩 함 선생님이 오셔서 성경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함선생님의 성경모임에 나가서 서울 와서는 명동 카톨릭여학생관에서 하던 성경모임에 나가면서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기자 : 함 선생님 말고 다른 스승은 없습니까?

송현 : 함 석헌 선생 때문에 “우찌무라” 선생도 만났습니다. 우찌무라 선생은 함 선생님의 스승인데, 책을 통해서 만났습니다. 그럴 무렵에 한글기계화의 아버지라도 할 수 있는 공병우 박사도 만났습니다.

기자 : 공 박사 말이 나오니, 제가 주간종교 기자 자격으로 선생님을 취재하러 가서 처음 만난 것은 선생님께서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에 공병우타자기 주식회사 대표이사를 할 때였지요?.

송현 : 그래요. 그러고 보니 벌써 삼십년 전의 일이군요. 그 뒤에 영적 스승 라즈니쉬를 만났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내가 조금씩 자랐고 마침내 내 속에 있던 걸작의식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달았습니다. 가령, 붓다, 예수, 라즈니쉬는 시 한 편 쓰지 않았지만 이분들의 삶이 곧 위대한 시이며, 대하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자 : 그러면 문학보다 삶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의미입니까?

송현 :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 한줄 쓰지 않은 이분들보다 위대한 시인은 없다는 사실을 안 것이지요. 그래서 비로소 내 문학보다 내 삶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벼락맞은듯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멋진 작품보다 멋진 삶이 더 소중하다"
 
기자 : 그러면 선생님은 멋진 작품을 쓰는 것보다 멋진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겁니까?

▲송현 시인     ©정연우 기자

송현 : 그렇습니다. 내 삶이 곧 시가 되고, 내 삶이 드라마가 되게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처음 볼 때처럼 다시 못 볼 것처럼 치열하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대학도서관에 있던 문예대사전에 “앞으로 내 이름이 이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면서 내 손으로 내 이름을 볼펜으로 올린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여러 가지 분야를 공부하면서 미친듯이 지여처다 정신으로 살아왔습니다. 낮에는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밤에는 시와 동시를 쓰고 소설과 동화를 썼습니다. 한글타자기 발명가 공병우 박사의 신임을 얻어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에 공병우타자기(주) 대표이사가 되었고, 박 정희 독재 정권 때 남들은 민주화 투쟁을 할 때 나는 한글 기계화 글자판 통일을 위해서 투쟁했습니다.

기자 : 선생님이 치열하게 살아온 것은 그 동안 여러 지면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소개된 것을 저도 알고 있었는데 서라벌고교 교사 시절에 출.퇴근 길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듣지 않으려고 버스만 타면 창밖의 간판과 도로표지판 글자를 10년 동안 쳐다보며 연구하였다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송현 : 사실이고 말고요. 제가 10년 동안 버스 타고 다니면서 창밖의 간판 글자꼴 연구한 것을 집대성하여 “한글자형학”이란 책을 출판 했지요. 이 책이 새로운 학문을 창시한 것입니다.

기자 : 선생님은 여러 분야에 활동 하였는데 방송 활동도 좀 하였지요?

송현 : 예,제법 했습니다. kbs라디오에 “송현인생칼럼”을 진행하고, kbs tv에 비즈니스맨 시대, c/a텔레비전에 “영재교실” mc를 할 정도로 방송도 할 만큼 했습니다.

기자 : 강의는요?

송현 : 서울예술신학교 문창과 교수를 하고, 경기대학교 사회교육원에 결혼정보관리사 과정을 내가 개설하여 주임교수가 되어 강의도 여러 해 했습니다.

기자 : 새로운 사랑과 성을 연구하여 ss이론을 신문에 연재하여 팬은 얼마나 확보하였습니까?

송현 : 스포츠 투데이에 “여성중심의 사랑”을 연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십만 여명의 팬이 생겼습니다.

기자 : 그 뒤에 공개구혼하여 세상을 떠들썩 하게 하였지요?

송현 : 예. 월간잡지 “샘이 깊은 물”에 공개구혼하여 650여명의 편지를 받고 수원정자동에서 미장원하던 최모씨와 새혼하는 것을 kbs tv에서 5부작으로 방송을 하여 한 동안 화제를 뿌렸습니다.

기자: 그 동안 책은 한 100권 썼습니까?

송현 : 약 70여권 되지 싶어요. 좌충우돌과 동분서주하면서 미친듯이 살아오는 동안 실수도 많이 했고 그 바람에 흠도 많은 상처투성이의 삶을 내딴에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처음 만날 때처럼 다시 못 볼 것처럼 사는 지여처다삶
기자 : 그러는 동안 번민이나 방황을 한 적은 없습니까?

송현 : 그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정신세계의 사막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정신세계의 유목민이 되어야 했습니다. 강렬한 연대의식과 개인의 자질과 덕성 향상과 인간에 대한 높은 이상과 숭고한 정신을 지녀야 당당하게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기자 : 유목민은 어떤 씨앗도 뿌리지 않고 한 뼘의 땅도 경작하지 않아야 하고 가축과 천막 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지요?

송현 : 그렇습니다. 일생동안 굶주림과 갈증과 싸워야 하고, 굶주림을 가라앉히기 위해 허리를 졸라매고 위장과 등골이 맞붙을 만큼 속이 비었을 때는 배와 띠 사이에 돌을 끼워서 저항력과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에 무상의 쾌감을 느끼며 굶주림과 목마름을 위안해야 합니다.

기자 : 유목민은 종려나무 열매, 낙타의 젖, 사막의 들쥐를 잡아먹으면서도 천박한 수렵은 유목민의 존엄을 헤치는 일이라 하지 않는다면서요?

송현 : 그래요. 낙타꾼이 양을 소유하는 것은 한 단계 신분이 추락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면 기동성을 잃고 자유를 빼앗겨 고귀함을 잃기 때문이지요.

기자 : 앞으로 어떤 가치에도 집착하지 않고, 어느 곳도 지향하지 않는 정신세계의 유목민으로 살고자 한다는 말씀인가요?

송현 : 예. 앞으로 나는 전적으로 내 자신의 빛과 지성에 의지해서 살아 갈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건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오직 내가 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가졌건 그것은 내 관심 밖의 일이지요. 나는 다만 내가 가진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많을 것을 가지지 않아도 지복으로 흘러 넘쳐야 하는데 나는 너무 많을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자 : 선생님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거지요?

송현 : 예. 그래서 앞으로 처음 만날 때처럼 다시 못 볼 것처럼 온몸으로 치열하게 살 것입니다. 결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안전한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내가 만든 좁고 위험한 지여처다의 길을 게릴라처럼 혼자서 갈 것입니다.

기자 : 선생님의 삶에는 매 순간 순간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요?

송현 : 사실, 위험하지 않은 것은 삶이 아닙니다! 죽은 것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다 위험합니다. 죽은 자 만이 안전하고 산 자는 위험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나는 자기의 정체성을 버리고 주인에게 꼬리치는 댓가로 안락한 삶을 보장받은 애완견의 삶이 아니라 바람 부는 들판에서 매일 매일 게릴라처럼 한끼 한끼 끼니 걱정을 하면서 치열하게 사는 들고양이처럼 살 것입니다.

기자 : 선생님의 각오가 참으로 비장합니다.

송현 : 나는 죽음이 삶의 절정이라 생각합니다. 삶의 절정에서 장렬하게 죽기 위해서 이 땅이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옥과 천국은 다른 곳에 있지 않지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지옥이요 천국입니다. 내 존재 방식에 따라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될 수 있지요. 내가 살아가는 지여처다 방식의 삶을 사는 나에게 여기 이 지상이 바로 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자 : 선생님의 삶의 자세가 아주 낙천적으로 보입니다.

송현 : 내가 살아오면서 본 꽃과 나무, 벌과 나비, 산과 들, 강과 시내, 새와 토끼, 소와 보리밭, 하늘과 구름, 달과 별, 동무들, 선생님들, 그리고 자살한 누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공병우타자기, 조용필, 초등학교 문 앞에도 못 가 봤으면서도 나에게 자신을 귀히 여기라고 가르쳐준 우리 어머니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어느 하늘에 어느 천국에 또 있겠습니까!

기자 : 그래서 선생님은 이 지상 보다 아름다운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지요?

송현 : 예. 이 아름다운 세상 이 아름다운 천국에서 온몸으로 치열하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곳에서, 처음 볼 때 처럼, 다시 못 볼 것 처럼 사랑하고 일하다 죽을 것입니다. 이런 삶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찹니다. 이보다 더한 신비가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한 축복 또한 어리 있을까요?

기자 : 선생님의 열정이 참 부럽고 멋집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쓰시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지여처다 출간을 축하합니다.

송현 : 감사합니다.
"송현은 누구인가?"
▲송현(시인·한글문화원장)   
송현은 함 석헌 선생,공병우 박사, 라즈니쉬, 한 창기 사장(뿌리깊은나무 발행인)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일년에 4일 단식한다. 그분들이 돌아가신 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그분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들을 추억하고, 그분들에게 배운 값진 교훈들과 은혜를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졍건하게 하루를 보낸다. 

부산에서 나서 동아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그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다. 1974년 상경, 서울 서라벌고교 국어 교사 노릇을 하던 중 서 정주 선생 추천으로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서라벌고교 교사 시절 한글 타자기 발명가 공병우 박사를 만났다. 공병우 한글기계화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공박사의 훌륭한 정신과 삶의 태도를 배웠다. 서른 한 살 때 공병우타자기(주) 대표이사가 되었다. 박정희 독재정권 때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처음에는 공병우박사의 제자로 나중에는 글자판투쟁의 동지로 한글기계화 글자판 통일 운동을 주도했고, “한글기계화개론”, “한글기계화운동”, “한글을 기계로 옳게 쓰기”등도 집필했다. 서라벌고교 교사 시절에 한글의 글자꼴을 십년 동안 연구하여 “한글자형학”이란 책으로 새로운 학문을 창시하였다. 한글학회 홈페이지에서는 그를 “한글을 빛낸 문화인물”로 선정 소개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를 읽고 크게 깨닫고,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다. 장기려 박사가 주관하는 성경모임에서 함 석헌 선생 강의를 들었고, 상경한 뒤에는 “명동 성경모임”, “노자모임” 등에서 공부하였고, 명동 3.1 구국선언문 사건 때 함 선생에게 직접 세례를 받다. 그 뒤 라즈니쉬를 영적스승으로 모시면서 “비말끼르띠”라는 법명을 받고, “라즈니쉬 예술론”을 집필하였다. 1999년 불교방송국을 개국할 때, 장 상문 사장의 제의로 불교 어린이잡지 “굴렁쇠” 창간 작업을 하였고, 대원불교대학에 입학하여 불교 공부를 하면서 라즈니쉬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여 라즈니쉬 전문가가 되었다. 2006년 국내 최초의 생활실천선인 무향선(無向禪)을 창시했다. 

1980년 월간 “소년”에 동화 “소싸움”을 창비아동문고에 동시 “붕어빵”을 발표하면서 동화와 동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992년에 발행한 도깨비학교문고(디자인하우스 발행)는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쥐돌이의 세상구경”은 정부간행물 윤리위원회 우랑도서로 뽑혔다. “쥐돌이의 두 번째 배낭여행”은 소년조선일보 우량도서로 뽑혔다. 동시집 “풍뎅아 나랑 놀자”는 한국아동문학연구소에서 우랑도서로 뽑혔다. 동시 “갈새”는 국정교과서 교사용지도서에 실렸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아동문학분과위원장과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장을 했고, 국제편클럽회원이기도 하다. 

월간 “디자인” “공예” 주간을 했고, kbs라디오에 “송현 인생칼럼”을 kbs tv에서 “비지니스맨 시대” 를 진행했고, ca/tv 채널 23번에서 “영재교실” mc를 하는 등 방송 활동도 활발히 했다. 오리리문화센터, 삼성주부교실 등에서 글쓰기 강좌를 오래했고, 금성사 신부교실 등 여러 기업이나 단체에서 특강을 많이 했다. 서울예술신학교 문창과 교수, 경기대학교 결혼정보관리사과정 주임교수를 했다. 사법개혁국민연대 공동대표도 하고, 60여권의 책을 썼다. kbs tv 인간극장에서 그의 사랑과 삶을 5부작으로 방영하기도 했고, 다음카페 외 여러 곳에 그의 팬들이 10만명이 있고, 일본에서 그의 동시집 우리엄마 회초리를 번역하고 있고, 2007년 11월 “일본골프다이제스트”에서 그의 “ss이론”을 일본에 소개하였다. 현재 무향자연학교장. 한글문화원장이다. (www.songh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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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9/11 [15:35]  최종편집: ⓒ 런던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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