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만난 우리

러시아에서 보내온 편지
김진형 | 입력 : 2008/11/26 [21:25]
▲   눈 덮인 깔로멘스싸야 공원에서

러시아는 잘 알고 있듯이 매우 큰 나라입니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국토의 면적이 전세계 지표면적의 1/5을 차지하였으며 11시간의 차이가 있는 국내 표준시와 88개 공화국에 122개의 종족으로 이루어진 다인종 다문화 국가입니다. 


유럽과 극동을 잇는 위치에 있다 보니 이곳 러시아에서는 우리의 잊혀진 일면들이 문득 문득 보이는 듯 합니다. 영국에 거주할 때의 저의 세계관은 한.중.일로 축약된 아시아(극동)와 유럽, 그리고 뭐가 뭔지 모르게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막연한 존재들 정도였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 영화에서 나오는 ‘중간계’라는 단어가 간혹 연상됩니다 


우리말 중에 ‘근본을 모르는..’ 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말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우리의 터전이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지금 우리는 얼핏 알면서도 느끼지는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신문기사들에 의하면 다문화가정의 자녀 중 불과 30% 정도 만이 고등학교 교육을 이수한다고 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차별 때문이라고 합니다. 과연 한민족이 단일민족이고 이러한 폐쇄, 배타성을 고집할 만한 근거가 뚜렷한지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이라는 말을 되새겨보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연해주에서 최근 발굴된 발해유적 등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유라시아 대륙의 일원으로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부와의 교류가 끊이지 않았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생활하면서 지금 우리는 지나친 배타성으로 인해 절해고도와 같은 고립된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하였습니다.

이는 갑자기 처해진 남북분단의 상황이 지속되면서 대륙과 철저하게 단절이 되고 또 비근한 시기에 인접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 공교롭게도 쓰라렸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요즈음 국내 tv를 통해 비쳐지는 일부 연예인들의 얼굴을 보면 아마도 그들의 조상이 중앙아시아에서 유래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으나 대륙인 러시아에서 생활하면서 발견하게 된 시각의 변화입니다. 

많은 중앙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동과 서가 마구 뒤섞인 느낌입니다. 노란 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러시아 사람들에 비해 시베리아 쪽의 수많은 공화국들과 남쪽 카프카즈 산맥 쪽으로 가면 점차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가 많아지면서 온갖 인종들이 지리적으로 불규칙하게 분포된 것을 보면 마치 인종 박람회장을 보는 느낌입니다. 

또 카스피해 옆에 위치한 칼믹 공화국처럼 홀연히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 고립된 공화국을 형성하고 살아 가는 모습을 보면 그 옛날 얼마나 많은 부족간의 전쟁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서로 쫓고 쫓기다가 이런 인종 모자이크가 형성되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 곳에서 알게 된 친구 중에 안드레이라는 러시아 국적의 칼믹공화국 출신이 있습니다. 이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면 영락없는 우리나라 동네 청년 같은 느낌으로 당연히 한국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못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카스피해 인근에 위치한 칼믹공화국 주민들은 우리의 먼 친척쯤 되는 듯 한데 남방 티베트계 불교이지만 특이하게도 불교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주변지역은 모두 이슬람이나 러시아 정교인데도 섬처럼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 징키스칸 부대의 오이라트 부족이 정착해서 살다가 몽고의 쇠퇴와 함께 러시아와의 충돌로 일부는 신장성으로 돌아갔으나 절반 가량은 볼가강이 녹는 바람에 건너지 못하다가 이후 계속 주저 앉아 칼믹(remnant; "잔류자" 라는 의미) 공화국을 형성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유라시아에는 이처럼 다양한 역사적 발자취와 이야기를 갖고 있는 지역과 민족들이 많습니다.  이를 볼 때 분명히 고구려는 돌궐(투르크), 만주족, 여진 등이 뒤섞인 국가였을 것이며 또 역사적으로도 고려시대의 국제화가 현대의 한국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개방된 사회였다고 하니 역사의 발전이라는 것이 일진일퇴하며 역동적으로 변화해왔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장대한 시계 속에서 우리 각 개인의 dna에는 어떠한 역사가 담겨 있는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모 러시아 일간지 특파원과 식사를 하며 모스크바의 셰르메체보 공항에서 관료주의적인 러시아에 대한 첫 인상을 가진 사람들이 러시아에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을 때 그의 반응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러시아인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의 반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반말을 예사로 하며 범법자처럼 취급하는 모욕적인 대우에 다시는 한국에 오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로 부정적인 인상을 받는 러시아 인들의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과연 우리가 단일민족임을 주장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묻고 싶습니다.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더라면 아마도 한국인들의 얼굴도 지금과는 다소 상이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고토의 역사를 되찾기에 앞서 고립되고 폐쇄된 우리들 마음의 문부터 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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