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지구촌 패러다임 고대로마 회귀

<무자년 스페셜 리포트> 빅뱅 EU’ (2) 로마제국의 부활
최형선 칼럼니스트 | 입력 : 2008/01/21 [20:25]
최근 유럽과의 fta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주시해 볼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외부를 주시하고 있는지! 또 어떤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통합을 서두르고 있는지! 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무자(戊子)년 새해를 맞이하여 국내의 상황은 온통 경제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도 공언하였듯이 경제가 회복되는 길만이 우리의 나아갈 바가 된 현실에서 경제통합에서 정치통합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유럽연합의 여정을 회고해 보고 그들의 행보를 통해 한국이 마땅히 어떤 변화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면 큰 의미가 될 것입니다.

이에 브레이크뉴스에서는 유럽연합과 관련된 정보를 분석하고 유럽의 변화에 대한 현실성을 심층 분석하여 마땅한 대응책을 제시하기 위한 지면을 할애하였습니다. 讀者 諸賢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편집자주>

 

▲ 오늘날 유럽인들의 장점을 합리성, 포용성 및 개방성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런 모든 특성이 과거 로마인들의 장점에서 기인하였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 유럽문화 완성은 고대 로마가 시발

최근 신문지상이나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 로마제국의 부활을 알리는 유럽연합이라는 골자의 글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사실 유럽 문화의 완성은 바로 로마제국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고 세계 문화의 흐름을 오리엔트 지역에서 유럽 지역으로 이동시켜 완성한 세력이 로마제국이었다는 면에서 로마는 단순한 정치세력 이상이었다고 혹자는 말한다.

그리고 로마의 시작에서 동로마의 멸망까지로 이어지는 역사가 기원전 700년부터 15세기 중엽까지이니 2천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 고대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신바빌로니아 그리고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고대 제국들은 오리엔트 문명을 꽃피웠다. 다시 말하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중심으로 문명을 이어 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명들이 계속 이 지역에서 문명을 지속하고 이어갔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슬람 문화를 통해 과거 화려했던 문명이 명맥을 이어갔다고 볼 수도 있으나 과거의 화려했던 문명을 다시 중흥시키지 못했다.

화려했던 유럽 문명은 헬레니즘을 시작으로 로마 문명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이어진다. 결국 현 세계의 실세가 되는 문명은 유럽문명이고 유럽문명은 로마제국이 완성한 틀에서 지금도 계속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유럽문명은 미국에서 꽃을 피웠고 또 더 나아가 세계로 널리 전파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유럽연합의 등장을 끝나지 않은 로마제국의 부활이라고 피력하는지 모르겠다.

과거 세상에는 많은 문명과 세력들이 일어났었다. 동쪽으로는 징기즈칸이 한 때를 휩쓸었던 때가 있었고 일본이 동아시아를 점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한 민족이나 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민족과 국가를 침탈할 형태였다.

그리고 결국 그 역사는 오래가지 못 했다. 로마제국이 완성한 유럽문명의 의미는 어느 한 민족이 이룩한 문명이 아니라 다민족이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고 실현한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문명이라는 것이고, 그 문명은 아직도 지속적인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유럽인들의 장점을 합리성, 포용성 및 개방성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런 모든 특성이 과거 로마인들의 장점에서 기인하였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이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는 시대적 요구에도 당연히 부응하므로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는 유럽인들의 정서적 변화를 이해할 만도 하다.

과거 문명의 흐름이 옮겨간 사건들을 통해 유럽문명의 태동과 성장 그리고 발전을 되짚어 보고 결국 어떤 형태로 완성을 고하려고 하는지 유추해 보도록 하자. 
 

▲ 고대 바빌로니아는 기원전 1830년경,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 바빌로니아 문명

고대 바빌로니아는 기원전 1830년경,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근거로 한 이 왕국의 수도 바빌론은 당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일대의 정치, 상업 중심지였다. 고대 바벨탑을 쌓았던 그 자리에 바빌로니아가 둥지를 틀었고 왕국의 이름도 이를 본 딴 바빌로니아라고 했던 것은 과거를 추억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왕국은 제6대 함무라비 왕 때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엘람 및 시리아를 평정하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한 대제국을 건설하였을 뿐 아니라 고대 학문들을 발전.집대성시키는 일을 했고 함무라비 법전(282조)을 통해 통치의 이념을 삼아 바빌론을 명실상부한 오리엔트의 중심도시로 발전시켰다.

그는 또한 바빌론 세력만의 종교를 확립하고 해당 신전을 통치 지역마다 두어 중앙집권체제를 강화시켰다. 이 왕국은 결국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지만 신바빌로니아로 정통성이 이어졌다.

신바빌로니아는 기원전 626년, 앗시리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아람계 칼데아 부족을 통해 왕조를 시작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 때가 바빌로니아의 황금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도 정복하였다.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잡아간 ‘바빌론유수’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고대 함무라비 왕 이래 몰락했던 바빌론은 다시 부흥하여 명실공히 세계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유래 없는 번영을 누렸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 성을 중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시리아가 파괴한 고대의 바벨탑을 다시 재건하였는데 탑은 약 90미터의 높이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윤곽만이 남아 있다. 그는 또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정원’도 만들었다.

기원전 482년 반란으로 성이 파괴되고 페르시아가 바빌론 성을 함락시키면서 1세기도 못 간 바빌로니아의 번영은 덧없게 끝나고 말았다. 당시 바빌론 성은 내부적인 요인이 아니었다면 어떤 세력도 함락시킬 수 없는 난공불락이었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바빌론을 점령한 알렉산더 대왕도 바빌론을 복구하여 수도로 만들 계획이었으나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함으로써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 키루스 2세 때 메디아 수도가 페르시아에 의해 점령됨으로써 페르시아제국이 일어나게 되었다.

▽ 페르시아문명

bc 815년경, 이란 민족이 자그로스산맥을 가로질러 남하하면서 파르수마슈에 정착하였고 아케메네스가 수장이 되면서 아케메네스 왕조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 왕국은 메디아와 페르시아가 함께 연합하였던 것이었으나 페르시아의 세력이 훨씬 막강한 힘을 지녔었다. 그리고 키루스 2세 때 메디아의 수도가 페르시아에 의해 점령됨으로써 페르시아제국이 일어나게 되었다.

bc 538년에는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을 무혈점령하고, 바빌론에 유폐되어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있었다. 이 왕조의 특징은 제국 내 각 민족마다의 종교나 관습에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페르시아 문화는 다민족 문화에 영향을 받아 다양한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바빌론의 점령으로 일약 세계제국의 반열에 오른 페르시아는 이집트 원정을 꾀하기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중도에 혼란에 빠지기도 했던 이 왕조는 다리우스 1세 때 질서를 회복하였다.

그는 제국 내 반란을 평정하고 인도의 북서부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기도 하였는데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20개 주로 행정구역을 나누어 관리하였다. 주를 관리하는 장관도 두었는데 세를 거두고 병역의 의무도 지웠다고 하는데 중앙과의 소통을 위해 ‘왕의 눈’과 ‘왕의 귀’를 두었던 것은 페르시아만의 특색이었다.

다리우스 1세는 바빌로니아의 영광을 흉내 내기 위해 ‘여름궁전’과 ‘겨울궁전’을 만들었고 긴 왕도도 건설하였다. 중앙의 명령을 각 도로 신속히 전달하기 위해서 역마를 이용한 역전제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그는 두 차례에 걸친 그리스 원정을 했던 것으로 유명한데 모두 실패하였다.

이 제국은 알렉산더대왕의 원정으로 인해 유린을 당하게 되는데, 다리우스 3세가 베소스에게 암살되는 사건으로 결국 멸망하였다. 

 
▲ 그리스문명은 로마제국 때 그리스도교와 함께 유럽문화의 근간이 되었던 문명이다.

 
▽ 그리스문명

그리스문명은 로마제국 때 그리스도교와 함께 유럽문화의 근간이 되었던 문명이다. 그리스 문명은 오리엔트 문명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였는데 도시국가를 통해 오리엔트와 본질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독창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리스의 폴리스 시민들은 스파르타와 같은 특수한 폴리스를 제외하고는 자유로이 개인적인 능력을 분출할 수 있었는데 특히, 중산층 시민들은 노예제를 뒷받침으로 힘든 육체노동이나 생계획득으로부터 해방되어 한가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문화 창조나 문화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서 유럽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철학을 생산해 내었다. 그리스문명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 및 아르키메데스, 유클리드 등과 같은 뛰어난 학자를 배출하였다.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른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4년 동방 원정에 나서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까지 계속 진군하여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음을 알 것이다. 이 시대에는 그리스문화와 동방의 문화들이 융합을 이루었는데 중요한 상징적 의미는 문명의 중심이 오리엔트 지역에서 유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알렉산더대왕은 정복한 지역마다 총 70여 개나 되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이 도시들을 통해 그리스문명이 동방에 전파되었다. 알렉산더는 정복지에 그리스인을 이주시켰는데 집단 결혼을 통해 세력 확장을 꾀하였다.

하지만 알렉산더 제국은 갑작스런 알렉산더의 죽음(말라리아로 추정)으로 인해 네 명의 수하 장군들에 의해 사분되었는데 나중 결국 로마에 의해 정복되고 만다. 

 
▲ 로마의 통치 방식은 과거 고대의 문명과 철학을 집대성한 방식이었다.

▽ 로마문명

로마 제국이 없었다면 지금의 유럽 문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럽 문명의 두 뿌리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중 헬레니즘은 그리스 철학을 의미하고 헤브라이즘은 기독교를 말한다. 이 둘은 분리되어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그리스의 사상은 유럽인들의 사상을 주장했을 뿐 아니라, 신학사조에도 녹아 들어 함께 학습되고 연구되었다.

2천년 전 당시 유럽지역의 대부분은 사실상 부족국가 상태로서 문명이 없었던 상태였다. 하지만 로마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두 뿌리가 되는 문화를 널리 전파하였고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새로운 철학과 문화로 자연스런 동화를 꾀하였다. 로마의 확장에 대한 역사는 너무 유명하므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로마의 통치 방식은 사뭇 다른 제국들과 달랐다. 로마는 페르시아처럼 제국 내 타민족들의 문화와 종교, 언어, 관습 및 통치 체제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고 자치권도 최대한 허용했으며 과도한 세금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로마가 사실상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로마의 일원임을 인정하라는 것과 전쟁 등 유사시에 로마의 편에 서야 하는 정도뿐이었다. 로마는 심지어 원로원 의원 자리까지 이민족 출신들에게 내주었다.

로마의 통치 방식은 과거 고대의 문명과 철학을 집대성한 방식이었다. 변화에 민감한 현실적인 시스템과 도로망 시스템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했던 것은 거의 흠이 없었는데 그 중 상당수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 유럽연합의 등장

▲ 선출된 대통령에게 보다 커다란 힘이 주어진다면 과거 로마 시대의 통치 형태와 다를 것이 없어진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로마문명은 현재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고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 세계인들은 다민족 국가들이 함께 공존하기 위해 만든 로마의 제도와 사고 방식에 기반하여 학습하고 말하도록 교육받고 있다.

세계화가 화두로 등장한 현실에서 대한민국이 한민족이란 단일민족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세계인들의 지탄을 받는 것은 바로 이런 사조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로마의 질서는 ‘팍스로마나’의 원칙에 입각하여 로마황제를 인정하고 다민족이 함께 어우러져서 사는 것이었다.

민족들과 세력들의 분쟁의 조정은 로마 황제가 간섭하여 해결하였다. 즉, 로마 황제는 해결사이자 조정자의 역할을 담당하였고 공동의 목적을 위해 기꺼이 각 민족들이 동참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유럽인들이 여러 번의 혁명과 전쟁 등 파멸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계속 로마문명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로마문명이 유럽에 너무도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유럽인들은 전쟁과 갈등의 상처를 치유해 가면서 다시 하나로 연합해 가고 있다.
 
유럽연합의 결성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과거 체제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들이 완성을 하려고 하는 로마문명은 바로 세계를 껴안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주권을 포기하고 하나의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대의의 명분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유럽인들이 결국 원하는 대의의 명분이 생존이란 간단한 것일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과거의 화려했던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것일 텐데 그것의 범위가 어디까지냐가 내 분석의 핵심이다.

철학사조나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유럽연합은 정치세력으로 화하여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과거 로마제국은 황제가 통치하였고 그가 분쟁을 조정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유럽연합에서 이것을 대체할 기구는 무엇이겠는가? 결국 대통령을 뽑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선출된 대통령에게 보다 커다란 힘이 주어진다면 과거 로마 시대의 통치 형태와 다를 것이 없어진다. 세계 최대 경제 규모에 정치력이 보완된다면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는 그들을 보다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결국 유럽연합의 세력이 패권주의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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