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살 수 있겠네요. 1년 정도는…” 수의사의 말을 듣는 늙은 주인의 흔들리는 눈빛은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임을 단번에 보여줬다. 어느 베테랑 연기자라고 만감이 교차하는 그런 눈빛을 연기할 수 있단 말인가. 흔히 말하는 독립영화지만 이미 10만 명 이상이 관람했고, 온오프라인에서 수없이 ‘찡한 감동’ 어쩌고 하며 소개 글을 실은 <워낭소리>의 줄거리를 새삼 언급할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고’ 척박하게 살아가는 시골 노인네와 ‘더 아무 것도 모르는’ 늙은 시골소를 구경하러 모여드는 호기심을 냉소하며 <워낭소리> 보기를 미루고 있던 참이다. 그래도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자본주의식 ‘정보제공’과 유년의 강렬한 기억은 결국 나를 영화관으로 이끌었고 감상이랍시고 이렇게 끄적거리게 만들었다. 농사를 짓던 우리 집은 10여 년 전만 해도 소를 키웠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 역시 영화 속 여든의 노인처럼 소에게 끔찍했다. 소가 밤새 앓던 날, 소 옆에서 같이 온밤을 지 샌 아버지는 날이 밝기 무섭게 우리 남매를 10리나 떨어진 약국에 보냈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동생의 손을 잡고 소에게 먹일 약을 사러 가던 날의 두렵고도 서러운 기억은 참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그림 그리기에는 맨재기 였던 내가 순하고 덩치 큰 황소 한 마리를 그려 담임선생님한테 민망하리만치 긴 칭찬의 말을 들은 것도 모자라 이 일을 계기로 무슨 사생대회까지 나갔던 일은 소와 관련된 참으로 잊혀 지지 않는 기억 중 하나다. 빈말이 아니라 그때 소는 정말 우리 식구였다. 매일 그 놈의 커다란 눈과 느릿느릿 여물 씹는 입을 들여 다 보고, 새끼 낳는 모습과 그 새끼가 팔려 갈 때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함께 살던 정다운 식구였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그림에 재능이 없기로서니 소 한마리쯤 그럴듯하게 못 그리겠는가. 세월이 흘러 아버지도 늙으셨고 우리 집에서 키우던 그 소도 지금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늙었으리. <워낭소리>에는 우리들의 아버지처럼 늙어 간 9남매의 아버지와 꼭 그이만큼 늙은 소가 나온다. 고된 노동에 등이 낙타처럼 울룩불룩 휜 늙은 소와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느라, 또 쉼 없이 일하는 것이 당신의 운명인양 한 길을 걸어 온 늙고 야윈 아버지의 ‘대화’는 지난한 삶의 과정과 무게를 절감하게 한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코뚜레가 빠지고 멍에가 벗겨지는 늙은 소, 소가 죽고 나서야 농사일을 멈추게 될 늙고 병든 아버지, 그러나 소의 죽음이 곧 자신의 죽음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의 아버지. 믿을 것이라곤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것 밖에 없는 힘없고 약한 이들의 눈물겨운 연대와 이울어가는 모습은 산다는 것의 고단함과 숭고함을 가슴 시리도록 돌아보게 만든다. ‘잘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워낭소리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한 늙은 소와 아버지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얼핏 예전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이지만, 역으로 무척이나 단순한 가치에 너나 할 것 없이 정신을 빼앗긴 우리들 귀를 맑은 워낭소리가 잠시 흔들어 놓고 있다. 원본 기사 보기:컬쳐인 <저작권자 ⓒ London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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