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잠시 우리를 흔들고 지나갔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그 소도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늙었으리...
유영자 | 입력 : 2009/02/23 [23:25]
▲ 워낭소리     ©컬쳐인
수의사가 마흔 살 먹은 늙은 소를 진찰하며 말한다.

“더 살 수 있겠네요. 1년 정도는…”

수의사의 말을 듣는 늙은 주인의 흔들리는 눈빛은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임을 단번에 보여줬다. 어느 베테랑 연기자라고 만감이 교차하는 그런 눈빛을 연기할 수 있단 말인가.

흔히 말하는 독립영화지만 이미 10만 명 이상이 관람했고, 온오프라인에서 수없이 ‘찡한 감동’ 어쩌고 하며 소개 글을 실은 <워낭소리>의 줄거리를 새삼 언급할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고’ 척박하게 살아가는 시골 노인네와 ‘더 아무 것도 모르는’ 늙은 시골소를 구경하러 모여드는 호기심을 냉소하며 <워낭소리> 보기를 미루고 있던 참이다.

그래도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자본주의식 ‘정보제공’과 유년의 강렬한 기억은 결국 나를 영화관으로 이끌었고 감상이랍시고 이렇게 끄적거리게 만들었다.

농사를 짓던 우리 집은 10여 년 전만 해도 소를 키웠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 역시 영화 속 여든의 노인처럼 소에게 끔찍했다. 소가 밤새 앓던 날, 소 옆에서 같이 온밤을 지 샌 아버지는 날이 밝기 무섭게 우리 남매를 10리나 떨어진 약국에 보냈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동생의 손을 잡고 소에게 먹일 약을 사러 가던 날의 두렵고도 서러운 기억은 참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그림 그리기에는 맨재기 였던 내가 순하고 덩치 큰 황소 한 마리를 그려 담임선생님한테 민망하리만치 긴 칭찬의 말을 들은 것도 모자라 이 일을 계기로 무슨 사생대회까지 나갔던 일은 소와 관련된 참으로 잊혀 지지 않는 기억 중 하나다. 빈말이 아니라 그때 소는 정말 우리 식구였다. 매일 그 놈의 커다란 눈과 느릿느릿 여물 씹는 입을 들여 다 보고, 새끼 낳는 모습과 그 새끼가 팔려 갈 때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함께 살던 정다운 식구였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그림에 재능이 없기로서니 소 한마리쯤 그럴듯하게 못 그리겠는가.

세월이 흘러 아버지도 늙으셨고 우리 집에서 키우던 그 소도 지금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늙었으리. <워낭소리>에는 우리들의 아버지처럼 늙어 간 9남매의 아버지와 꼭 그이만큼 늙은 소가 나온다. 고된 노동에 등이 낙타처럼 울룩불룩 휜 늙은 소와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느라, 또 쉼 없이 일하는 것이 당신의 운명인양 한 길을 걸어 온 늙고 야윈 아버지의 ‘대화’는 지난한 삶의 과정과 무게를 절감하게 한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코뚜레가 빠지고 멍에가 벗겨지는 늙은 소, 소가 죽고 나서야 농사일을 멈추게 될 늙고 병든 아버지, 그러나 소의 죽음이 곧 자신의 죽음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의 아버지. 믿을 것이라곤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것 밖에 없는 힘없고 약한 이들의 눈물겨운 연대와 이울어가는 모습은 산다는 것의 고단함과 숭고함을 가슴 시리도록 돌아보게 만든다.  

‘잘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워낭소리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한 늙은 소와 아버지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얼핏 예전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이지만, 역으로 무척이나 단순한 가치에 너나 할 것 없이 정신을 빼앗긴 우리들 귀를 맑은 워낭소리가 잠시 흔들어 놓고 있다.       



    

원본 기사 보기:컬쳐인
  • 도배방지 이미지

  • 런타 편집부 2009/03/14 [23:29] 수정 | 삭제
  • 좋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의견을 통한 건전한 비판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그러나 이전의 2개 댓글은 국가수반을 지나치게 모독하는 언어가 사용되어 부득이 삭제하였으니 양해바랍니다.
  • 이견도 의견 입니다. 삭제 하지 마십시오. 2009/03/14 [17:07] 수정 | 삭제
  • 들어가면서…

    여기에 있던 두개의 댓글이 삭제 되는것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과연 여기 편집진에게 제 글을 수긍할 능력이나 자세가 있을까 하고요. 그럴 능력이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또 지우겠지 하면서, 나름 고민 끝에 글을 올립니다.

    이글이 어쩌면 생존해 계시는 의 최원균 할아버님께 폐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글은 누가 틀리고 맞음을 얘기하고자 함이 아니라 최원균 할아버지와 동시대를 살아오신 나의 어머님을 바라보며 느낀, 중년의 또 다른 인생의 관점이라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인생無常

    는 지금처럼 입소문이 나기 전 우연히 시놉시스를 접하고 제가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워낙 좋아하고 또 마흔 살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소의 나이가 내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었죠.

    다큐멘터리 특성상 가 이렇게 대박을 낸 것은 참 의외입니다. 영세한 독립영화사 제작이라 홍보도 별로 없었음에도 말입니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사람과 소의 무상(無常)한 일생이 관객들에게 동질감과 카타르시스를 주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가 세상에 관심을 끌자 인터넷에 많은 영화평이 올라왔습니다. 할아버지와 소의 기나긴 우정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글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소를 너무 혹사시킨 것 아니냐 하는 동물애호가적 관점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관점 역시 존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란 일본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 보면 리트리버 강아지 한 마리가 맹인견으로 선발됩니다. 그리고 훈련과정의 일환으로 ‘해피워커’라는 자원봉사자 집에 잠시 머물며 거기서 ‘퀼’이란 이름으로 자원봉사자의 애정을 듬뿍 받으며 자라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사람과 교감을 나누며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죠. 아마도 그 짧은 시간이 ‘퀼’에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을 겁니다.

    ‘퀼’은 그런 꿈같은 시간을 잠시 보낸 후, 훈련센터에 입교해 맹인안내견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습니다. 그리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교육을 마친 ‘퀼’은 첫 주인인 고집 센 맹인에게 인도되고 그 뒤의 일생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눈이 되어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퀼’도 점점 나이가 들고 늙게 되자 몸이 예전 같지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맹인안내견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마치고 영원히 손잡이가 달린 견복을 벗습니다. (이 견복은 소의 멍에나 워낭과 같겠죠.)

    그리고 ‘퀼’은 그가 어린 시절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자원봉사자의 집으로 돌아가 그들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노년의 휴식을 즐기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맹인안내견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일반 개들보다 수명이 더 짧다고 하더군요.)

    물론 의 소도 할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소가 먹는 꼴이 오염될까 논에 농약도 안 치고 노부부가 힘들어도 꼭 쇠죽을 끓여주는 것만 보아도 할아버지의 소에 대한 애정은 영화에서 의심 없이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소가 말을 할 수가 있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할아버지 저도 이제 늙어서 힘이 드네요. 그리고 힘에 부쳐 힘들어하는 당신을 보니 내 마음도 많이 아프고요……. 그동안 우린 열심히 일했잖아요? 인제 그만 쉽시다. 네?”


    일 중독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저 불편한 몸으로 더구나 여든이 넘은 연로한 나이에 책임져야 할 부양가족도 이제는 없고 그만 쉬셔도 될 텐데 말이죠. (제가 보기엔 영화에 등장한 할아버지의 자녀인 9남매가 다들 자리를 잡은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할아버지는 당신이 평생을 해 오신 일을 손에 놓기가 어려웠을 거란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일을 조금 줄이고 같이 늙어오며 봉사해온 소와 함께 조금은 여유로운 삶을 사셨더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들 부모님 대부분은 어려운 시절을 만나 최원균 할아버지처럼 한평생을 힘겹게 살아오셨습니다. 를 감독한 이충렬 감독도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고 말했듯이 슬하에 많은 자식을 부양하려면 잠시라도 손에서 일을 놓을 수 없는 그런 고단한 삶을 사셔야 했습니다.

    바로 그래서, 그 긴 시간, 그런 환경 속에서 우리의 부모님들은 계속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무시무시한 일 중독에 서서히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우리 어머님 역시 그랬으니까요.





    조로 국가

    내가 영화를 보면서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 분위기가 할아버지와 같은 고단한 삶을 지금 내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고3, 고1인 두 아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다 그렇듯이 지금 나는 교육비에 허리가 빠집니다.

    오늘자 뉴스에 오바마가 한국초등학교의 수업 일수를 언급한 기사가 떴더군요. 미국이 한국보다 학교수업일수가 적어 경쟁력에서 뒤처진다고 한국을 따라하겠다는 것입니다.

    제 사견입니다만, 아마도 오바마의 속내는 부자인 백인들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교육열 탓(물론 경제력이 밑받침이 안 되는 원인도 있음)에 흑인들이 사회경쟁력에서 떨어져 삶의 질이 좀처럼 향상되지 않자 국가가 비용을 더 지불해서라도 그들의 경쟁력을 높여주고 싶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오바마의 이 발언을 당장 이 이명박정부는 감지덕지하여 자신들이 추진하는 무한경쟁교육정책의 당위성에 견강부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바마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학력이 삶의 질을 좌우는 하지만 그것이 곧 행복의 지름길이 아니란 것입니다. 공부는 학교보다 건전한 사회, 건전한 가정에서 건전한 호기심과 창의성으로 터득하는 지혜가 더 삶의 필요한 공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바마는 미국사회를 좀 더 건전한 사회로 만드는 일에 노력을 해야지, 전임 부시가 다져놓은 깡패국가정책을 버리지는 않고 그저 지금의 경제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인성을 잃어가는 경제교육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런 미국사회 학교에서 더 많이 공부를 해보았자, 단지 더 무서운 깡패가 될 뿐입니다.

    우리나라 초, 중, 고의 학력이 세계최고의 수준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의 학력은 정말 창피할 정도의 순위이죠. 나는 그 이유가 초, 중, 고 때 국가나 학교 또 가정에서 아이들의 진을 다 빼놓아 창의성과 자발성에 조로가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지혜의 조로, 학부모는 삶의 조로, 모두가 인생의 無常함에 허덕이는 이 대한민국은 이미 활기를 잃어가는 조로 국가입니다. 오늘날 유아출산율이 바로 그 증명이죠. 자녀교육비로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어느 누가 둘, 셋씩 출산을 하겠습니까? 나는 지금의 이 출산율이 곧 재앙으로 돌아올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코뚜레

    며칠 전, 고3인 된 큰아들 녀석이 이제는 토, 일요일도 없이 학교에 가야 한다며 한숨을 푹푹 내쉬더군요. 고등학교 2년 내내 방학다운 방학 없이(놀토와 일요일 낀 일주일이 방학이었음) 보충수업을 받는 녀석을 보면서 참으로 우리 아이들이 무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들에게 잠시 숨을 돌리는 일요일마저 용납하지 않는 이 뭣 같은 현실이 나를 몸서리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무한경쟁 세상이 아이들의 코를 뚫어 코뚜레를 꿰고 억지로 내게 쥐여주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 미래를 담보로 도박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학기 초라 그런지 각종 참고서 및 교재비, 교복비, 체육복비, 통학봉고차비, 학원비, 등록금이 한꺼번에 밀려 와 요즘 같은 불황에 목돈을 마련하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 물론 이런 어려운 우리 집 경제사정이 나의 무능함에 비롯된 사적인 일이지만 내가 자라던 그 시절처럼 조금 덜 사교육경쟁이 없는 환경이라면 지금 내가 버는 수입만으로도 충분히 궁시렁 없이 살 수가 있는 수입입니다.

    한참 꿈을 키워갈 나이에 입시 지옥에 빠져 허우대며 아이들은 공휴일과 방학도 없이 학교로 학원으로 자정 넘어 까지 주입식암기를 해야만 하고 나는 녀석들이 받아먹을 꼴을 베느라 휴무 없는 가게에서 프라이팬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과 나는 도무지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는 수렁에 빠져 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휴식 없는 기나긴 공통의 시간을 감내하며 일 중독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올해 초, 할머니 제사로 인해 가게를 하루 쉬었습니다. 오랜만에 일손을 놓는 것이라 아주 편안할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게 문을 열 시간이 가까워지자 점점 불안해지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천성이 노는 걸 좋아하는 내가 그렇게 변할 줄은 나도 몰랐던 것이죠.


    또 다른

    이 고단한 일상이 언제쯤 끝이 날까요? 누구는 그러더군요.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 아르바이트로 용돈도 벌고 모자라는 등록금은 대출이 가능함으로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질 수가 있다고 말입니다.

    정말 그때쯤이면 이 무거운 멍에를 벗고 가끔은 휴일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전혀 아니올시다 입니다. 취직이 안 되어 졸업을 늦추며 대학원이다 뭐다 또 돈을 꼴아박고 또 예비역들이 군에 재입대하는 실업난을 바라보면서 지금 나는 이 짓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순수에 젖어 맘껏 싱그러워야 할 그들의 빛나는 청춘이, 어른들이 이끄는 코뚜레에 반항 한 번 변변히 못 하고 무한 경쟁이란 덫에 걸려 낭비만 했다고 끝내 원망하지는 않을는지…….

    마지막 장면이 저를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외양간 벽을 머리로 뚫고 나가 꼼짝을 않고 최후를 맞는 소를 보면서 어쩌면 소가 할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마도 할아버지에 대한 소의 첫 반항이자 마지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소가 죽음으로서 마침내 일 중독에서 벗어나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소 무덤이 바라보이는 나무 아래 앉아 워낭을 만지작거리는 회한의 장면이 나는 무척 한가롭고 평화롭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코뚜레를 쥐고 있는 우리들의 가 저렇게 끝이 난다면 그것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비극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미래가 한참 더 보장되어야 하고 길어야 한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 아버지들의 변하지 않는 신념과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희망이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짐스럽다고 육봉을 떼어낸 낙타는 더 이상 낙타가 아니다- G.K. 체스터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난 20년 넘게 부어온 보험통장을 만지작거리며 깰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막내 녀석이 고등학교에 올라가 자극을 받았는지 스스로 수학 과외를 받고 싶다며 내게 부탁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귀엔 가 들리고 있습니다.

    “아빠! 참고서 사게 돈!”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가 들리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