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도 섬진강 유역은 그 어느 지역보다 고난의 질곡(桎梏)이 깊은 곳이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역으로서 영토싸움이 치열한 곳이었으며, 고려 때에는 해로를 통한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섬진강 유역은 분단으로 인한 좌우의 갈등이 격심했는데,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순사건에서 극에 이른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섬진강은 또 다시 심한 몸살을 앓게 된다. 남한 빨치산의 조직인 남부군(南部軍)의 총사령관으로 이현상이 임명되면서, 지리산을 본거지로 한 남부군은 섬진강 유역을 격렬한 전쟁터로 만들었다. 섬진강 유역을 피로 물들인 전투는, 이현상이 1953년 군경합동으로 실시된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 때 사살되면서 막을 내린다. 이현상은 화개장 섬진강가 백사장에서 화장되어 섬진강에 뿌려졌고, 섬진강은 말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섬진강은 오늘도 말이 없고 유유하다. 공자는 흐르는 물을 들여다보면서 “흐르는 것은 저러하구나.”라고 했다. 배움이 일천한 나는 그 말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지만, 그 말에서 가슴은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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