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의 쓸쓸함을 대하는 내안의 우울

<土 曜 隨 筆> 수필가 최영옥, 아버지의 뒷 모습
수필가 최영옥 | 입력 : 2009/04/18 [01:15]

유록빛 잎 새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마냥 보드랍고 사랑스럽다. 햇살아래 기지개를 켜며 자연은 마음껏 발돋움하고 있었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열리며 검은 어둠 속에 묻혀있던 씨앗들은 꼼실거리며 생명을 피워냈다.
 
그네들은 잎이 되고 푸른 나무가 되고 꽃이 되고 그리하여 자연의 일부로 자리 잡아 오월의 화사한 햇살을 마음껏 받아내고 있었다. 이렇듯 찬란한 날씨와는 달리 내 마음은 우울하기만 했다. 싱그러운 자연과 아버지의 쓸쓸함, 그리고 그 쓸쓸함을 대하는 내안의 우울은 확연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우리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 져 저마다의 삶으로 돌아갔다. 두 분이 오손 도손 삶을 공유하셨던 고향 집을 이제는 외로움을 벗 삼아 홀로 지키고 계실 아버지 생각에 집에 온 지 일 주일 만에 내 발걸음은 또 다시 시골집으로 향하고 말았다.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 들어 있었지만 아버지는 어느 것 하나 꺼내 드시지를 않았고, 뚜껑도 열리지 않은 채 변해 있었다. 일흔 아홉 고령의 노인이 어찌 자신의 식탁을 마련하는데 부지런을 낼 수가 있을까.
 
무슨 재미로 여러 가지 반찬을 꺼내 식탁을 차리실까. 저마다의 바쁜 삶에 치어 아버지의 외로움을 함께 나눌 단 한 사람의 자식도 곁에 없다는 사실이 슬프고 마음 아팠다. 일곱이나 되는 아들과 딸을 키우실 때 부모님은 바쁜 일 다 제쳐 놓고 아이들을 건사하셨을 것이다.
 
또 당신들은 헐벗을 지언 정 아이들은 좋은 옷과 새 신발을 입히고 신기기에 결코 아까와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렇게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을 먹고 장성했건만 자식들은 홀로 계신 아버지를 위해 시간 내기를 버거워 한다. 

이른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신 아버지는 어머니 잠들어 계신 곳을 둘러보려 나가셨다. 한 쪽으로 기울어진 삐딱한 몸으로 절뚝이며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평생을 거친 농사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고단한 삶. 그 삶 속에서 늘 함께하여 왔던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그 쓸쓸함이 얼마나 크실지 짐작이 가기에 아버지의 굽은 등과 힘없는 어깨, 백발이 더욱 쓸쓸해 보였다.
 
아버지의 노쇠한 몸 곳곳에는 외로움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듯 느껴졌다. 평생을 욕심 부리지 않고 거짓을 모르는 흙처럼 순박하고 정직하게 살아오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몹시도 슬퍼 보였다. 어머니 가신 후로 부쩍 쇠약해지신 아버지임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리다.

유난히 몸이 약해 병치레가 잦으셨던 어머니는 늘 아랫목에 자리를 깔고 아버지와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누워 계셨다. 가끔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께 ‘아이구 이제 그만 죽어버려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곤 하셨다.

이제 어머니 누워 계시던 아랫목은 썰렁하게 비어 찬 기운만 감돌뿐이다. 어머니가 투병 중일 때의 일이다. 외출준비를 하는 아버지를 보고 ‘날 놔두고 어디 가려고 하닝교? 갔다가 퍼뜩 오이소.’하며 아기처럼 투정부리셨다.
 
외출에서 돌아오실 때마다 아랫목에 누워 희미한 미소로 반기시던 어머니, 앙상한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버지는 얼마나 허전하실까. 그때마다 아버지는 반려자의 부재를 확인하며 마음 쓰리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집으로 돌아오신 후 뒷담으로 난 쪽문을 열고 어머니의 산소로 가 보았다. 장례식 날 만발했던 진달래와 산 벚꽃의 모습은 흔적이 없고 연녹색 싱그러운 잎 새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니 잠들어 계신 무덤에 심어 놓은 잔디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 여름이나 되어야 융단을 깔아놓은 듯 윤기 흐르는 모습으로 변할까. 

외로움 가득 얹힌 아버지를 남겨두고 난 또 어찌 집을 떠나가야 할지 미리 걱정부터 앞선다. 빈 집 쪽마루에 홀로 앉아 먼 산을 바라보실 아버지 생각에 마음은 한없이 아려온다. 힘없는 걸음걸이로 터벅터벅 마실을 가실 아버지는 경로당 노인들과 주고받는 농담 몇 마디와 허허 웃음으로 외로운 마음에 위안을 받기는 하시는 걸까.
 
커피 한잔 타 드릴 자식이 곁에 없어 손수 커피를 타실 아버지, 찻물을 끓이다가 깜빡 잠드는 바람에 주전자를 새카맣게 태우셨다던 아버지...  한 평생 힘겨웠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실린 아버지의 굽은 등이 오늘 따라 더욱 고단해 보였다.

아버지께서 자주 바라보시던 큰 골 산 중턱으로 하얀 안개가 스물 스물 기어오르고 있었다.




▽ 최영옥 프로필

慶北 慶州 출생
계간 문학세상 詩 등단
한국 예총 예술세계 수필 등단
예술시대작가회회원
동작문인협회회원
現 동서울 교회 신문 편집장
시집 “사람아 사람아”(2007년 푸른 사상)
e mail/ogi10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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