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열차강도 로니 빅스 가석방 불허

자유인으로 죽고 싶다
김형국 | 입력 : 2009/07/02 [03:19]

대 열차강도로 유명한 로니 빅스(ronnie biggs)에 대한 가석방 위원회의 석방 권고에도 불구하고 보석 신청이 법정에 의해 거부됐다.


그는 지난 주말 넘어지는 사고로 엉치뼈가 부러져 감옥에서 병원으로 옮겨 치료 중이나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대 열차강도 사건이란 1963년 버킹엄셔(buckinghamshire) 의 리드번(ledburn) 에서 우편배달 기차가 15인의 강도에 의해 260만 파운드라는 거금이 약탈되었던 사건이다. 올해 79세가 된 로니 빅스는 15인 주범 중의 한 명이다. 

로니 빅스는 당시 체포되어 30년 형을 받고 원드워즈(wandsworth) 교도소에 복역 중 15개월 만에 로프 사다리로 벽을 내려와 가구 운송차량을 타고 탈옥했다.

그는 1965년 탈옥 후 파리에서 성형수술을 한 후 새 신분증으로 1970년에 호주로 가서 방송국에서 몇 년간 일을 하다 리포터에게 신분이 들키자 아내와 아들을 두고 브라질로 도주했다,

1974년에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가 그가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 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고 영국 경찰청에서 형사를 급파하였으나 압송에 실패했다. 영국과 브라질간에는 범인인도 협정이 없었으며 빅스의 여차친구인 나이트클럽 댄서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법에 따라 브라질 아이의 부모는 추방할 수 없었다.

그는 범죄자의 신분으로서 일을 할 수 없었지만 영국 경찰의 압송 실패로 인해 유명해지면서 ‘로니 빅스’ 커피 잔 티셔츠 등과 그의 거주지가 관광명소로 지정되면서 돈을 벌었다. 영화 주제가 음반도 내고 수차례 영국에 위장 잠입하여 ‘대 열차 강도’ 도큐멘터리도 촬영하기도 했다.   

그에게 걸린 현상금 때문에 바베이도스(barbados)로 납치된 적도 있으나 바베이도스 역시 영국과 범인인도협정이 없어 다시 브라질로 되돌려 보내지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이야기는 많은 화제를 뿌리며 영화화 되기도 했다.

그는 8년 전인 2001년에 갑자기 고향이 그립다면서 35년간의 도망자 생활을 청산하고 자진해서 영국으로 돌아왔다. 강력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없는 영국 법에 따라 그는 귀국하자마자 바로 수감되었고 남은 형기를 채우기 위해 8년째 복역 중이었다. 

그가 2001년 2005년 2007년 건강 악화를 이유로 수 차례에 걸쳐 가석방 신청을 했었으나 모두 거부된 바 있으나 자유인으로 죽고 싶다는 그의 소원을 받아 들인 가석방 위원회에서 7월 4일 석방을 권고 했기에 기대감이 높았으나 법정에 의해 거부 된 것이다. 

잭 스트로우(jack straw) 판사의 거부 이유는 한마디로 뉘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빅스가 미디어 플레이를 했다고 덧붙이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도피와 귀국 과정에서 영웅행세를 하며 영국 법을 조롱했던 괘씸죄가 풀리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끝내는 자유인으로 생을 마감하는 영웅 아닌 영웅을 만들 수 없다는 논리가 깔린 결정일 수도 있다.


                       <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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