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홀에 빠진 골프황제 우즈를 위한 변명

<뉴욕칼럼> 불쌍한 골프기계의 일탈
채수경 | 입력 : 2009/12/11 [07:09]
골프는 종종 섹스에 비유된다. 음양의 이치를 아는 사람치고 ‘작대기’와 ‘구멍’이라는 단순한 은유를 모르는 사람 없고, “처음에는 구멍이 좁아 보여 잘 넣지 못하지만 자꾸 하다보면 구멍이 커 보여 잘 넣게 된다”는 선배의 조언은 노골적인 음담패설로 들리고, ‘십팔홀’에서의 긴장을 ‘십구홀’의 뒤풀이로 푸는 것도 섹스 후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스포츠 신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외골프투어를 다녀오는 골퍼들의 80% 이상이 ‘19홀’을 즐기고 오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었다. 정복욕이 강한 남자 골퍼들에게 있어서 난코스의 정복은 어렵사리 여자를 정복하는 것과 같은 쾌감을 준다는 게 골프 코스의 통설, 끊임없는 연습과 피를 말리는 접전 끝에 라이벌 골퍼를 꺾었을 때의 통쾌감은 섹스보다도 중독성이 심하다는 말도 나돈다.
 
푸른 초원 위에서 하얀 공을 딱 쳐서 멀리 날려 보낼 때의 상쾌함이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golf’라는 단어를 ‘green(초원)’ ‘oxygen(산소)’ ‘light(햇빛)’ ‘friendship(우정)’으로 풀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골프는 자기와의 싸움, 끊임없는 체력 단련으로 근력을 키워야 하고 틈이 날 때마다 연습하여 스윙감각을 유지해야 하며 경기에 임하여서는 한 타 한 타 온갖 정신력을 집중해야 하는 바,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 날 내기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퍼팅 그린 위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직행하는 일이 빈발하는 데서 보듯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골프 좀 해봤다는 사람들은 “골프는 육체적인 운동이 아니라 정신력의 게임”이라고 주장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마스터스 대회, 전미 오픈 대회, 전미 프로선수권 대회, 영국 오픈대회 등 전 세계 4대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골프 그랜드 슬램을 이룩했던 잭 니클라우스도 “골프 경기에서 승리를 좌우하는 것은 기술 20%·정신력 80%”라고 주장했었다. ‘19홀’의 음담패설이나 뒤풀이 또한 그런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생겨난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19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식당 여종업원과 나이트클럽 호스티스 등 닥치는 대로 불륜을 저질러온 게 까발려지고 있는 가운데 파트너들이 대부분 금발의 백인 여성들로 밝혀져 백인들의 스포츠였던 골프에서 부동의 황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즈를 ‘흑인들의 자랑’으로 여겨온 흑인들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는 등 인종문제로까지 번지고 있지만 18홀보다도 19홀에서의 플레이에 더 열을 올리는 사람들만큼은 감히 우즈 편은 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해는 해줄 것으로 믿는다. 사실 거품 걷어내고 보면 타이거 우즈야말로 극성스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두 살 때부터 골프채를 잡아 모든 것을 골프를 위해 희생하고 짜맞춰온 불쌍한 골프 기계에 지나지 않거니와, 백인들의 텃세가 심한 골프계의 황제로 등극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종차별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어왔는지를 생각하면 그 정도의 헛스윙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고 해도 빈말이 아니다.
자신에겐 백인(caucasian), 흑인(black), 인디언(indian), 그리고 아시안(asian)의 피가 섞여있다고 주장하면서 ‘카블리나시안cablinasian)’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흑인임을 부정하는 인종적 열등감, 얼마 전 pga 챔피언쉽서 무명이나 다름없던 한국의 양용은이 우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 중계방송 카메라가 양용은의 환호보다는 우즈의 풀 죽은 모습을 클로즈업한데서 보듯 매 경기 때마다 겪어야 하는 ‘골프 황제’로서의 부담감과 스트레스에 비하면 백인 아가씨들과의 마구잡이 불륜쯤은 이유 있는 일탈인지도 모른다.
 
타이거 우즈는 성인도 아니고 모든 사람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는 신사도 아니다. 인기 스포츠맨으로서의 품위를 저버린 우즈만 조롱하고 욕할 게 아니라 작대기와 볼 하나로 인생을 살아온 불쌍한 ‘골프기계’를 우상으로 떠받들어온 세상 또한 조롱당하고 욕을 얻어먹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골프 황제가 헛스윙 하자 큰 구경거리 생겼다는 듯이 난리법석을 떠는 세상 사람들이 천박해 보인다. <채수경  / 뉴욕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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