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길우문(丙吉牛問)

병길이 소에 대해 물음
송영한 | 입력 : 2010/05/03 [09:28]
이야기 하나
 
후한 선제 때에 병길(丙吉)이란 승상이 있었다.

하루는 병길이 수레를 타고 입궐을 하는데 저잣거리에서 큰 싸움이 나 사람 여럿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부가 "수레를 멈출까요?"하고 물으니 병길은 "그냥 가자"고 했다.

그렇게 한 참을 가다가 짐수레를 끌고 헐떡이며 오는 소를 보자 병길은 마부에게 수레를 멈추라고 명하고 수레에서 내려 마부에게 "소가 몇리를 왔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수행하던 관리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승상께서는 아까 사람이 여럿 죽어나오는 싸움터는 그냥 지나치시더니 헐떡이는 소를 보고 수레에 내려 물으시는 이유는 어찌 된 일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병길은"저잣거리의 싸움이야 장안령이나 경조윤(오늘날 치안담당 부서)에서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아직 이른 봄인데 몇 리를 걷지도 않는 소가 헐떡거린다면 올해 기상이 예전과 다르다는 이야기이니 이는 농사를 짓는 백성들에게 치명 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일은 마땅히 내가 챙겨야할 일이다"하고 대답하니 수행관리가 "과연 명재상이십니다"하고 탄복을 했다한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병길이 승상이 되기 전 대신으로 있을 때 병길의 마부가 술에 취해 수레에 토했다. 마부가 대신의 수레에 술을 먹고 토한 다는 것은 목이 잘려도 시원치 않은 일이라 비서가 처벌할 것을 권했다. 그러자 병길은 "술에 취해 토했다는 것으로 마부를 내치면 장차 저 사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자네만 입 다물고 있으면 저 마부는 단지 내 마차의 방석을 더럽힌 일을 한 것에 불과 할 것이다"고 마부를 용서했다.

훗날 흉노가 침범했을 때 변방에 근무한 적이 있어 그 곳 상황을 소상하게 알고 있던 마부는 재빨리 적의 허실 등 침입 정보를 병길에게 알렸고 병길은 긴급하게 대처해 흉노를 막아내 황제로부터 큰 상을 받고 승차했다. 병길의 너그러움이 결국 자신의 복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야기 둘

여태후의 뒤를 이어 대신들에게 추대되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효문제가 시간이 지나자 국가 대사를 처결하는데 눈을 뜨기 시작 해 하루는 군신들과 조회를 하다가 좌승상 주발에게 물었다.

“온 나라를 통틀어 일 년 동안 옥사를 판결하는 소송은 몇 건이나 되느냐? 전국을 통틀어 일 년 동안 국가 재정으로 거두어 지출하는 양식과 돈은 얼마나 되느냐?” 주발이 죄를 청하며"모르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황제는 다시 우승상 진평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진평은 "일을 맡아 하는 관리에게 물어보시면 될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황제가“어떤 관리를 말하는가?”하고 묻자 진평은 “폐하께서 옥사에 관한 일을 알고 싶으시면 정위(廷尉)를 불러 물으시면 될 것이며, 식량과 세금의 수입과 지출을 알고 싶으시면 치속내사(治粟內史)에게 물으시면 될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효문제는 “모든 일에 각기 그 주관하는 자가 있다면 경이 주관하는 일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진평은“참으로 황공합니다만 재상이란 직위는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고 음양을 다스려 사시를 순조롭게 하며, 아래로는 천지 만물의 생육을 제 때에 자라게 하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와 제후들을 진무하며, 안으로는 백성들을 백성들로 하여금 황실에 의지할 수 있도록 어루만져 주고, 관리들을 감독하여 각기 자기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효문제가 진평의 말이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하자 좌승상 주발이 듣고 부끄러워하며 황제의 앞에서 물러난 뒤 진평에게 “대감만 혼자 알고 어찌하여 평소에 나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았오?”하고 원망했다.

그러자 진평은 “대감은 나의 윗자리에 있으면서 그 임무를 몰랐단 말이오? 만약에 황제께서 장안의 도적 수를 물으셨다면 억지로라도 그 숫자를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겠소?”하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주발은 자기의 능력이 진평에 훨씬 미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얼마 있다가 병을  핑계로  좌승상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진평이 그 자리를 대신해 승상은 한 명이 되었다.

올 봄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천안함, 4대강, 행정복합도시, 좌파 고깔 씌우기, 스폰서 검사 사건 등 나라에 갖은 변고와 소란들이 끊이질 않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상최대의 구제역까지 발생해 농민들은 생때같은 가축들을 산채로 땅에 묻어야 하는 비극들이 일어나고 있다.

옛날 같으면 임금은 "과인의 부덕의 소치로 나라가 이 지경에 빠졌나이다"하며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드려야하고 이어 대신들은 "소신들이 전하를 보필하지 못한 죄가 크옵니다"하며 줄줄이 사직상소를 올려도 시원치 않을 형국이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하나 사태에 책임지겠다면 자리를 털고 나서는 대신들도 없고 저잣거리에서 소가 헐떡이는 이유를 물었듯이 진심으로 민심에 귀 기울이는 대신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삽질만 해대면서 좁쌀만한 일로 국민들을 오라 가라 하며 사법처리해대는 좀스러운 지도자보다 병길이나 진평 같이 혜안이 있고 너그러운 지도자 밑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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