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유출 사고로 영미관계 균열 조짐

신백악기 정글의 법칙
김지호 | 입력 : 2010/08/05 [20:21]
사상최악의 환경참사로 기록될 멕시코만의 원유 유출사고는 불안한 수습국면으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이어질 환경복구와 배상소송 등, 복잡하게 얽힌 사안들이 마무리되려면, 족히 10년 이상은 소요될 전망이다.

스위스 소재 세계최대의 해저시추회사인 ‘트란스오션’ 소유의 사고유정을 임대하여 시추해 온 bp는, 이번 사고의 처리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bp는, 미국정부와 합의한 200억 달러의 배상예치금과는 별도로, 7월 중순 현재 35억 달러를 사고수습 비용으로 투입했으나, 총 피해 규모는 수백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주가가 반으로 떨어지고 적대적 인수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bp는 안전을 무시한 채 무리한 시추를 감행했고, 사고에 안이한 늑장대응으로 피해를 키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bp가 ceo인 토니 헤이워드를 가리켜 “나라면 그를 해고했을 것”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한바 있다. 


▲ 바람에 흔들리는 유니언잭과 성조기    ©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확산되는 영국의 반미감정

미국 정부의 bp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에 대해 영국인들은 불편한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bp를 고의적으로 옛 이름인 ‘british petroleum’이라고 호칭하면서, 반영감정과 영국기업에 대한 적대감을 유도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british petroleum은 1998년 미국 석유회사인 amoco와 합병 이후, 다국적 기업의 위상을 반영하기 위해, bp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실제로 bp는 영국과 미국이 각각 약 40%씩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영국인인 토니 헤이워드가 ceo를 맡고 있으나, 이사진은 영국인 6명과 미국인 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6월 bbc의 ‘question time’ 이라는 토론 프로그램에서 참석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고, “영국인 고용자 1만명에 비해 미국에서 2만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bp가 어떻게 영국기업이냐?”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토론자 저널리스트 토비 영은 “오바마 대통령이 bp를 ‘british petroleum’ 이라고 한 것은 반영감정 조장을 위한 수사적 기교이며, ceo에 대한 해고 운운은 망신스러운 언동” 이라고 비난하고, “이는 bp의 목을 밟고 압박하는 격으로서 응징해야 한다”고 격렬하게 성토하여, 청중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영국의 미국에 대한 반감은 정치계와 언론에도 확산되고 있다. 집권 보수당 소속인 보리스 죤슨 런던시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bp 때리기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라고 공격했다. ‘더 타임즈’, ‘파이낸셜 타임즈’ ‘텔레그라프’ 등 영국의 주요언론들은, 민주당의 약세가 예상되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의식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사고의 책임을 영국기업에 떠 넘기는 표풀리즘을 쓰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bp를 보호하기 위한 캐머런 총리의 확실한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지 3개월이 넘도록 원유유출 차단에 실패를 거듭해온 bp가 안전 대책이 미흡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 정부 역시 대책마련에 소홀하여 화를 불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4월 워싱톤dc 항소법원에서 원유유출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내린 시추 중단 판결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가 이의를 제기하여 연방항소법원에서 판결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석유공룡들의 육식본능

백악기 말 운석충돌 대재앙으로 부족해진 먹이를 놓고 다투듯, 신백악기 공룡들이 육식본능을 드러내고 있다. 주가 폭락으로 반 토막 몸집이 된 bp를 두고, 석유공룡들이 적대적 인수의사를 나타내며,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반 bp 감정을 구실로 이들의 행보를 지원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엑손, 세브론 등의 미국 기업이 인수를 추진한다면 이를 막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위기에 몰린 bp는, 알래스카 유전 등의 자산매각을 포함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아부다비, 쿠에이트, 리비아 등의 중동의 국부펀드로부터의 투자 유치 성사여부가, 생사를 가름하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석유 메이저가 편중되는 상황을 원치 않는 중동 국가들이 bp에 대한 투자를 호의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막대한 손실에 대한 부담감 이외에도, 미국의 제제가 투자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내 외국계 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10%를 넘을 경우 미국정부로부터 조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bp는 최근 매장량 44억 배럴로 추정되는 리비아의 연안유정을 수주 내에 굴착하겠다고 발표 했다. 이는 2007년 토니 블레어 리비아 방문 시 체결된 탐사계약에 따른 것이다. 그러자, 프랭크 루텐버그를 위시한 미국상원 4인은 힐러리 국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2009년 스코틀랜드 법정이 팬암기 폭파범을 석방한 결정이, 탐사계약을 위한 bp의 로비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 조사해 줄 것을 요청’ 하고, “멕시코만 사고에서 보듯이 bp가 인간보다는 이윤을 우선하고 있는 증거”라고 bp를 공격했다. 이에 대해 bp는 “자사가 2007년 영국정부와의 대담에서, 리비아와의 죄수 인도 협정이 늦어지는 것에 우려를 표시했던 것은 공개자료”라고 일축했다. bp를 삼키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입장이 된 양국의 이해 충돌이 묻어졌던 3년 전 사건을 재 점화시킨 것이다.


bp 그리고 영국의 옵션

일부 자산 매각과 중동으로부터의 투자 유치가, bp가 당면한 난국을 헤쳐나갈, 돌파구이지만, 성패는 미국의 협조여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지나치게 압박해오면, bp는 미국법인 bp holding north america에 책임한도를 국한시키고 법인을 파산시키거나, bp 자체가 지불불능 상태(insolvency)를 영국법원에 신청하는, 초 강수 옵션을 고려할지도 모른다. 이는 순조로운 배상을 기대하는 미국에게 최악의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영화와 함께해 온 심벌기업 bp가 벌어들이는 오일머니는 영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bp가 무너지면, 블루칩 bp에 투자해 온 영국의 연금이 무너지고, 경제가 파탄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적대적 피인수를 방치할 수도 없다. 미국의 지속적인 흔들기로 bp가 만신창이가 된다면, 영국정부도 개입할 수 밖에 없고, 반세기 이상 밀월을 유지해오던 양국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캐머런 수상과 오바마 수상이 ‘bp가 무너지면 안될 것’이라고 합의하면서 우의를 과시하고 있지만, 황소를 건 샅바싸움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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