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에 올려진 영국의 사회보장제도

김지호 | 입력 : 2010/12/18 [02:34]

2차 대전 후 영국 노동당 정부가 채택한 슬로건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복지제도의 이상으로서 자리매김 되어왔다. 전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1945년에 태생한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종전 이후를 계획한 청사진인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의 1942년 보고서에 따른 것이다. 이후,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기본 틀만큼은 굳건히 유지 되어왔던 사회보장제도가 최근 개혁의 도마 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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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성원들이 더불어 행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최저생활을 국가가 보장함으로써 사회불안정의 주범인 절대빈곤을 퇴치해야 한다는 것이 베버리지 보고서가 지적했던 사회보장제도의 당위성이다. 이러한 이론의 실질적인 배경은 국가가 이룩한 부를 여러 계층이 평등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었다. 식민지와 해외파병으로 국가가 획득한 부를 부유한 상류층만 독차지한다는 국민들의 불만이 위험수위에 달했기 때문이다. 계급사회인 영국에서 수많은 절대 빈곤층의 문제는 러시아 혁명처럼 왕정체제의 위협이었기에, 외부의 부를 나누는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사회 여러 계층들의 반발 없이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

방만한 운영에 대한 불만 누적  

그러나 현재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 대부분의 재원은 일하는 중산층의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소득을 나눔으로써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언젠가 자신들이 수혜자가 될 수 있는 보험적인 성격의 보조금에는 관대한 편이지만, 일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낭비되는 관료적인 시스템에 반발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업수당이나 주택보조금이 일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경우도 있어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

실제로 7자녀를 둔 실직한 버스기사 ‘압디 누르’는 구청에서 마련해 준 런던 북부에 마련해 준 월세 740만원의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런던 중심가 부촌인 노팅힐 지역에 위치한 40억원 상당의 주택을 월 1600만원에 월세 계약을 하고 구청에 지급요청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하는 중산층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이는 주택보조금의 한도를 정하지 않고 거주하던 지역에서 가족의 형편에 맞는 집을 구해주는 관료적인 제도 때문이다. 자신도 빈민가에서 성장했다는 ‘숀 베일리’씨는 “런던에 살 엄두도 못 내는 중산층은 가난한 사람들이 런던 중심에 살게 하기 위한 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일 런던 밖에서 출퇴근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나도 버킹엄 궁에서 살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안 된다” 고 비꼬면서 “남의 돈으로 고급지역을 고집하지 말고, 자신의 형편에 맞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개혁의 칼을 뽑아 든 정부

어려워진 경제사정과 맞물려 과다한 혜택과 관료적인 운영으로 인한 폐단이 공론화 되면서, 보수-자민 연합정부는 사회보장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고 공표했다.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사안 중에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공룡화된 사회보장제도를 수술하기 위한 메스를 든 것이다.

 ‘이언 덩컨 스미스’ 후생성 장관은 현재 실업수당, 주택보조금, 자녀 지원금 등 여러 항목으로 나뉘어 있는 보조금의 형태를 단일 항목으로 일원화하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 개혁안에는 직업을 찾는데 무성의한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중단 조치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이번 개혁안은 1940년대 사회보장제도 확립이래 가장 강력한 변혁”이라고 강조하면서 “일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보조금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보조금의 한도를 책정하고 “거주지역에서 형편이 안되면 맞는 곳으로 이주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빈민층의 반발을 의식하여 “그러나 그 수는 몇 천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때아닌 사회적 청소 논란

개혁안을 두고 정계는 ‘사회적 청소’ 논란으로 공방을 하면서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서로의 지지층을 의식한 각론 대립으로 보여진다. 노동당은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한다”고 전제하고, “개혁안은 가난한 이들을 도시에서 몰아내기 위한 사회적인 청소”라고 공격하면서 논란의 불을 지폈다. 

노동당의 ‘더글러스 알렉산더’ 예비 후생성 장관은 “1980년대 대처수상 시절의 인두세과오에 버금가는 실책” 이라고 비난하면서 “수많은 노숙자를 양산하여 오히려 더 많은 자금을 낭비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부동산에 대한 책을 발간한 작가 ‘린시 헨리’는 “주택보조금이 중단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생활하는 자영업자나 근로자들이 도시에 살 수 없게 되면 도시기능이 마비될 것”, “가난한 사람들도 부유한 지역에 살 권리가 있다, 부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이들에게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고 비난에 동참했다. 그녀는 또 “최저임금에 해당되는 경우가 되면 내게로 오라는 말을 카메룬 수상에게 전하고 싶다”고 비꼬았다.    

보수당 소속이면서도 하류층 유권자들 의식한 ‘보리스 죤슨’ 런던시장마저도 “코소보 식의 사회적 청소”는 안 된다고 가세한바 있다. 하지만 ‘이언 덩컨 스미스’ 장관은 “지금은 런던시장도 개혁안을 지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현재 런던중심에는 아주 부유하거나 보조금을 받는 사람들만 살 수 있다”고 반격했다. 그는 또 ‘사회적 청소’ 논란에 대해서는 “노동당이 주택보조금을 통해 도시빈민을 유지하려는 것은 표밭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개혁은 성공할까?
 
사회보장제도는 사회 안정이라는 측면 외에도, 경제활동의 일시적 낙오자를 국가가 보호하여 생산현장에 재 투입시킴으로써 생산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면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병폐가 발생한다. 과거 영국병이라고 일컬어지던 일을 기피하는 폐단이 그것이다. 1980년대 보수당 정부를 이끌던 대처수상의 과감한 개선책으로 경쟁력을 회복하였지만, 지나친 개혁조치로 빈부차가 벌어지고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하는 부작용도 경험했다. 재산세를 인두세로 변경하려던 무리한 추진은 국민저항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정권붕괴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보수-자민 연합 정권은 과도한 조치는 피하면서 비효율성 제거에 초점을 맞추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정권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민감한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려는 것은 경쟁력강화를 통한 경제회생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당면과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카메룬 수상의 리더십이 던진 승부수는 승산이 높아 보인다. 장기적인 경제 침체로 인해 쌓인 공멸의 위기감에 억눌린 대다수 국민들이 돌파구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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