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위기의 영국국교

김지호 | 입력 : 2011/03/07 [15:27]
헨리 8세 이후 450년의 역사를 이어온 영국의 국교 성공회가 위기에 처했다. 성공회의 급진적인 변화에 불만을 품은 성공회 신부들이 로만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경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영국 방문 이후, 개종 움직임이 가속화 되고 있다.

 
▲ 2010년 9월 영국을 공식방문한 카톨릭 교황 배네디토 16세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성공회의 키스 뉴톤 주교를 비롯한 전직 주교 3인이 지난 1월 웨스터민스터 성당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카톨릭을 관할하는 빈센트 니콜스 대주교로부터 오디너리에이트(odinariate)라고 하는 특별법에 따라 카톨릭 사제로서 서품을 받았다. 이법은 특히 여성사제에 대해 반발하는 성공회 교인들을 카톨릭에서 받아들이기 위해,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제정되었다. 특별법은 주교는 될 수 없지만 결혼한 사제들을 받아들이고 성공회의 전통과 양식의 일부분도 허용하고 있다.  

뉴톤 주교는 향후 수개월 동안 50여명의 성공회 성직자들이 카톨릭으로 개종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4월말 이스터 전에 많은 성공회 성직자들이 카톨릭으로 개종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는 개종으로 주교의 지위를 잃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고 하면서 “비록 내가 살고 일하는 곳과 내가 하려는 것 그리고 어떤 처우를 받을지에 대한 희생이 따르겠지만, 나는 미지를 향해 믿음의 발길을 내딛고 있다. 그러나 나는 기쁨으로 행하고 있다”고 지난해 11월 결심을 밝힌바 있다. 이렇게 성공회를 떠나게 되면 사택뿐 아니라 연금 등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개종 후 본당을 맡지 못한 성직자들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일자리를 얻어야 할 입장이다. 영국 카톨릭은 이들 개종자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위해 약 4억5천만원을 비축하고 있지만, 다른 자선 기금들도 구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사제 허용으로 촉발된 불만

이들은 성공회의 구교파에 속하면서 최근 여성사제를 허용한 성공회의 조치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해온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뉴톤 주교는 개종이유가 여성사제 허용 때문만이 아니라 전통을 버리고 있기 때문임을 밝혔다. 실제로 최근 성공회는 동성애와 낙태를 허용하는 등 진보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많은 성공회의 구교파들은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고 있다. 구교파인 데이비드 하월딩 신부는 “여성 사제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개종을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성공회가 오랫동안 카톨릭과 개신교 뿐만 아니라 전통과 개방 사이에서 유지해온 균형이 깨지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뉴톤 주교는 “근래 들어 성공회는 보다 더 개신교적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 카톨릭적인 이해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다”고 항변했다. 이러한 탈 성공회 움직임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호주의 데이비드 실크 전직 주교도 카톨릭으로 개종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공회 측은 이들의 개종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회피했으나, “각자 믿음의 길로 가는 누구든 잘되기를 바란다. 우리도 그렇다”고 하면서 “그렇게 개종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   교황방문 환영인파  ©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탈 성공회의 물꼬를 튼 교황의 방문

지난해 9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공회가 로만 카톨릭으로부터 분리해 나간 이후 400년만에 처음으로 영국을 국빈자격으로 공식 방문했다.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영국방문은 교회차원의 방문이었다. 베네딕토 16세의 표면적인 방문목적은 뉴먼 추기경의 시복식 거행이었다. 성공회 사제였던 뉴먼 추기경은 1830년대에 옥스포드 운동이라고 불리는 성공회의 정체성을 찾는 쇄신운동을 주도했고 1845년에 카톨릭 사제로 개종한 뒤 버밍엄에서 오라토리오(oratorio) 수도회를 창설했다. 그러나 이면에는, 지난해 말 영국 성공회의 윌리엄스 대주교의 교황청 방문을 계기로 우호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카톨릭과 성공회의 통합’에 대한 논의의 구체화를 위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공회 사제들의 카톨릭으로의 회기는 교황의 방문으로 그 물꼬가 트인 셈이다. 

전통가치와 충돌하는 영국의 진보 무드

4월 29일로 예정된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의 결혼식을 앞두고, 왕위 계승권에 대한 법개정 논의가 일고 있다. 300년 전에 제정된 왕위 제정법인 act of settlement 에 따르면 왕위계승 순위는 아들이 딸에 비해 우선한다. 따라서 윌리엄 왕자가 첫딸을 낳게 되더라도 후에 아들이 태어나면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노동당의 키스 바즈 의원은 법을 개정해서 딸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카메론 수상의 보수-자민 연립 정부는 시간적으로도 촉박하고 영연방 중 15개국이 영국의 왕을 국가 수반으로 하고 있어 이들 국가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임의로 개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일부 국가들이 이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의 왕은 성공회의 수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가 실현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희박해 보이지만, 만일 구체화된다면 성공회의 진보화 변화와 맞물리면서 전통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층의 이탈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왕정체제의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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