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영국 민주주의

김지호 | 입력 : 2011/03/16 [18:54]
5월 5일 영국에서는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선거방식의 변경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변경안이 통과된다면, 이는 영국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을만한 사건이다. 국민투표는 보수당과의 연립정부 구성 당시 자민당의 가장 핵심적인 요구조건이었다.

▲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현재의 선거제도는 1위를 한 후보가 과반수가 넘지 않아도 당선이 되는 ‘최다득표 당선(first-past-the-post)’이나, 개혁안은 ‘대안투표(alternative vote)’로서, 유권자들이 각 후보들에 대한 선호도 순위를 정해 투표한 후, 1순위에서 과반수 획득 후보가 없을 때는 최하위를 먼저 탈락시킨 후, 탈락 후보에게 투표했던 유권자들의 표들은 차순위로 기명한대로 남은 후보들에게 분산하여, 과반수가 될 때까지 탈락과 분산을 계속해서 집계하는 방식이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최다득표 당선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비해, 대안투표제는 호주와 피지, 파푸아 뉴기니가 채택하고 있다.

전반전은 자민당과 하원의 승리

선거법 개정은 창당이래 줄곧 제3당의 위치였던 자민당의 오랜 숙원이었다. 좌우 양극화의 중간지대에서 2위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자민당은 대안투표를 통해 사표를 줄이면 유리하기 때문이다. 보수당은 자민당과의 연합유지를 위해 개정안을 입법했으나, 개정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진보적 성향으로 지지층이 겹치는 노동당과 자민당에 비해 3자구도가 유리한 보수당으로서는 대안투표가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파 노동당의원들과 연합한 보수당 중심의 상원은 개정안 저지를 위해 수개월간 줄다리기를 하면서 하원을 압박했지만 결국 하원의 승리로 끝났다. 노동당의 로드 루커(lord rooker)를 비롯한 상원의원들이 제안하고 보수당 상원의원들이 지지한, 국민투표의 참여율이 40%이상이 되지 않으면 무효로 하자는 수정안을 내었으나 하원이 거부한 것이다. 상원의 리더인 로드 스트랏칠드(lord strathclyde)가 “우리는 의무를 다했으니 더 이상 정부를 가로막지 말자”고 호소함으로써 법안은 원안대로 2월 17일 통과 되었다. 이에 대해 보수당의 재무상을 지냈던 로드 로우슨(lord lawson) 상원의원은 “법안이 헌법의 기초를 흔드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각료들이 “돼지머리처럼 고집불통”이라면서 “아마도 돼지에게도 모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적과의 동침은 불변

보수당과 자민당은 각자 개정안 발효를 위한 국민투표에서 반대와 찬성으로 당론을 정하고, 국민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득과 실이 공존하는 노동당은 의견이 분열되어 뚜렷한 당론을 정하지 않고 있지만, 밀리밴드 노동당수는 개정을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자민당은 ‘정확한 민의를 위한 한 세대에 한번 올 수 있는 변화의 기회’임을 강조하면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자민당 당수인 클레그 부수상은 “현재의 선거방식은 양당제 시스템에나 어울리는 제도” 라고 비판하면서, “대안투표 방식은 수백만에 달하는 사표를 줄여서 합리적인 민의를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수당은 대안투표는 민의가 왜곡되어 불합리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정부가 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2순위를 의식하여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과 당간의 밀실거래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보수당의 카메론 수상은 “대안투표가 실시되면 차선의 의회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안투표의 방식의 설명서 [대안투표의 진행과정에서 탈락한 후보의 2순위가 또 다시 탈락한 후보일 경우에는 3순위 혹은 4,5순위가 분산되고…….예를 들어 3명이 탈락했을 때 2,3,4 순위자가 탈락자인 경우엔 5순위가 분산되고…]를 거론하면서, 일반인들이 이해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자신은 몇 번이고 읽어 보았지만 잘 이해가 안 간다고 꼬집고, “소수의 엘리트들만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하고 복잡한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왜 1위에 투표한 표는 한번만 카운트하는데 비해 골찌에 투표한 표는 2,3,4,5 순위까지 가리면서 제일 많이 카운트 해야 하느냐?”고 하면서 “소수 의견을 오히려 더 우대하는 완전 불공평한 시스템”이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두 리더는, 첨예한 의견대립이 연립정부를 붕괴시킬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국민투표의 결과에 상관없이 양당의 연합은 유지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소수에 의한 혁명?

시민단체들의 의견은 팽팽히 양분되어 있다. 현재의 선거제도는 민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해 온 선거개혁협회는 “낡은 정치와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환상적인 기회가 왔다” 고 반기고 있다. 하지만 대안투표반대초당파연합은 복잡한 선거제도로 바꾸기 위해서는 2억5천만 파운드(한화 4천5백억원)가 소요될 것이라고 밝히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기에 유권자들의 분노를 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국민투표는 연합 유지를 위한 자민당 달래기 거래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공방을 지켜보는 지금 대다수 영국인들의 시선은 아직 싸늘하다. 수년간 지속된 침체에서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경기가 아직도 불안한 상황에서 선거방식 개정 논쟁은 정치인들만의 이해관계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투표는 5월 5일 예정대로 실시될 것이고, 40% 이상의 참여율 조건도 부결된 상황에서, 적극적인 소수에 의해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대 변혁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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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템즈 2011/03/17 [11:39] 수정 | 삭제
  • 명료한 기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