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통의 로열메일과 우체국, 살아남을까?

김지호 | 입력 : 2011/06/14 [14:58]
영국 마을의 중심가에는 반드시 정겨운 우체국이 있었다. 이렇듯 빨간 우체통과 함께 우체국은 한 시대를 풍미하다 21세기 들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추억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 평일 날이면 빠짐없이 찾아오는 우체부 아저씨의 빨간 우편 가방이 달린 자전거는 올해부터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130년간이나 사용되던 자전거가 교통 안전상의 이유로 2010년에 퇴출되었기 때문이다. 

 
▲  이태리 레스토랑으로 바뀐 우체국 건물 (영국 서비톤 중심가)   ©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1516년 헨리8세에 의해 우체국이 설립된 후, 1635년부터 시작한 영국의 공공우편 서비스는 royal mail이 담당하고 있다. royal mail과 우체국인 post office는 주식회사로서 현재 정부가 100%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royal mail holding plc의 자회사들이다. royal mail holding plc는 소포를 취급하는 parcelforce worldwide 및 국제물류 운송을 하는 general logistics systems도 소유하고 있다.

royal mail의 민영화 계획과 우체국의 위기

royal mail은 평일 하루에 8천만 통 이상의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고, 1등급 우편의 경우 전국각지에 익일 배달과 안전 배달률 99.9% 이상을 기록하면서 영국인들의 신뢰를 받아왔다. 하지만 350년간 독점해왔던 우편시장이 2006년에 개방되면서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정부가 royal mail의 매각을 추진함에 따라 우체국들이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다. royal mail이 민영화 되면 9,000개 이상의 우체국들이 문을 닫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1997년 노동당정부 집권 당시 19,000개이던 우체국들이 계속 줄어들어 현재 11,500개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현실화 된다면, 우체국은 몇몇 대도시를 제외한 일반 마을에서는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통신종사자연합(cwu)의 빌리 헤이즈 사무총장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우체국 네트워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붕괴위험에 처해 있다”는 경고에 에드워드 데이지 우정 장관은 “정부는 우체국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집권시절 우체국들의 몰락을 방치하다시피 했던 노동당도 royal mail의 민영화 계획을 폐기하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royal mail은 수개월내에 최고가를 제시하는 민간기업에 매각될 것이고, 외국기업이 인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royal mail과 우체국의 전통적인 관계는 단절될 것으로 우려된다. 하지만 우체국을 지키라는 여론이 상승하자, 정부는 조기매각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지난 11월 이래 민영화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이 명백해 졌다” 고 한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잡화점 더부살이 신세로 전락한 우체국 (영국 서비톤 중심가)   ©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우체국 일병 구하기 처방들

도시의 변두리나 작은 규모의 마을에는 우체국 분소(sub-post office)가 문구류나 일상용품을 판매하는 상점의 코너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각종 수당 지급, 공과금 및 자동차세 납부 등의 서비스도하고 상점도 운영하지만 대부분을 royal mail의 우편 업무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 우체국 분소장 연맹은 royal mail이 매각 되기 전, 우체국을 우편업무의 창구로서 보장하는 최소한 10년간의 상호 업무 계약(inter-business agreement)을 요구하고 있다. 하원에서 입안한 royal mail 매각 법안은 상원으로 넘겨져 있다. 따라서 상호업무계약에 대한 조건은 상원의 결정에 달려 있다.
 
한편 정부의 의뢰로 작성된 보고서는 ‘post office mutual’ 라고 하는 우체국의 공공기업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현재 정부소유인 우체국의 소유권을 우체국 종사자들에게 주는 방안, 또는 우체국 사용자들이 우체국의 멤버가 되는 방안이다. 전자는 죤 루이스(john lewis) 백화점의 기업형태이고 후자는 코오퍼레이티브(co-operative) 슈퍼체인이 취하고 있는 방식이다. 죤 루이스의 모든 직원은 사주로서 기업에 수익이 좋으면 보너스를 받는다. 코오퍼레이티브는 고객이 1 파운드를 내고 멤버로 가입하면 구매실적으로 적립된 포인트에 따라 배당금을 지급한다.
 
에드워드 데이비 우정장관은 이러한 제안에 흥분이 된다면서 적극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전국 우체국 분소장 연맹의 죠지 톰슨 사무총장은 “정부가 관련 비즈니스를 우체국 네트워크에 주지 않는다면 한낱 몽상에 불과하다”고 반격했다. 사실 우체국에게 우편업무 없이 스스로 독립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을 잘 팔라고 하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royal mail도 체질을 개선해야

지난 4월 데일리 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노팅햄셔에 사는 라디오 진행자인 데이비드 히스코트씨가 royal mail에 근무처에서 가까운 우체통의 위치가 어딘지를 문의하자 ‘이들의 상업적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의 정보가 일반인에게 공개할 내용이 아니다’ 답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장문의 회신 내용 중에는 ‘그러한 정보를 비공개로 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설명도 있었다고 한다. 혹시나 잘못 이해했나 싶어 다시 읽어 볼 수 밖에 없었다는 히스코트씨는 “단지 애청자에게 몇 장의 편지를 보내려 한 것뿐이었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royal mail이 우편량이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 우체통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지 않는걸 보니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이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이지만, 냉혹한 경쟁의 시대에서 royal mail이 체질과 경쟁력을 개선해야만 동네 어귀를 지켜온 우체통과 우체국도 지키고 자신도 400년 만에 팔려가는 수모를 면할 수 있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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