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경제윤리, 창궐하는 포퓰리즘

이인제 국회의원 | 입력 : 2011/06/30 [07:19]
                                      무너지는 경제윤리, 창궐하는 포퓰리즘

▲ 이인제 국회의원     ©우리들뉴스
 반값 등록금 이슈가 터지면서 정치권에 포퓰리즘 논쟁이 뜨겁다. 이 논쟁에 재계까지 뛰어들었다. 전경련 회장이라는 사람이 정치권의 대응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한 것이다. 여야 모두 불쾌감을 드러내며 반격함으로써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여당 전당대회 당권을 노리는 후보 대부분이 재계, 정확히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을 공격하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다. 

 오래 전에 읽은 책 『아담 스미스 구하기(saving adam smith)』 내용이 생각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자유시장경제의 바이블이라고 할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의 진면목을 알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스미스는 무엇보다 경제주체의 ‘윤리적 긴장’을 강조한 사람이었다. 그가 말한 자유는 도덕적, 윤리적 긴장 위에서 허용되는 자유이다. 따라서 이 윤리적 긴장이 무너지고 시장이 탐욕으로 가득 차게 되면. 자유시장경제는 존립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경제주체, 특히 경제적 강자들의 윤리야말로 자유시장경제를 떠받치는 토대라는 이야기다. 

 먼저, 우리 사회의 재벌, 대기업집단을 보자. 

 재벌들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생산, 고용, 수출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재벌 대기업과 종속 또는 협력관계에 있다.     한마디로 재벌이 무너지면 우리 경제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우리 내수시장은 좁다. 재벌기업은 세계를 무대로 선전하고 있다. 삼성, 현대, lg는 세계시장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나아가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어 있다. 세계를 여행하는 우리 국민에게 자랑과 자부심의 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재벌의 그림자도 만만치 않다. 우리 사회의 재벌은 개발경제시대 특혜를 누리며 성장하였다. 재벌들은 잊고 싶겠지만,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특혜가 사라졌다 하더라도 재벌들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그만큼 더 도덕적, 윤리적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재벌들의 지배구조는 외국자본 비중이 높고, 부채비율이 과중하며, 그리고 투명하지 못한 세습제로 얼룩져 있다. 한마디로 재벌 일가들이 큰소리 칠 형편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배반하는 대목은 문어발식 세력 확대이다. 커피, 빵, 콩나물, 두부 등, 전형적인 소기업 영역까지, 마치 저인망으로 바다 속 어자원을 싹쓸이하듯, 시장을 휩쓸고 있는 재벌의 탐욕, 그 끝은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찍이 아담 스미스가 말한 ‘윤리적 긴장’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자연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사자나 호랑이도 자기 생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먹이를 사냥하지 않는다.  사자나 호랑이도 지키는 이 ‘윤리적 긴장’을 이 땅의 재벌들은 왜 지키지 않을까. 

 미국의 대기업 경영자들이 앞다퉈 기부 대열에 나선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자신의 순 재산이 500억 달러를 넘는다. 그는 자식들에게 1,000만 달러 이상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우리 재벌들은 자녀, 일가친척을 내세워 서민들이 영세하게 경영하는 업종까지 다 집어삼키려 한다. 미국의 재벌은 미련하고 시장의 자유를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고, 우리 재벌은 영리하고 시장의 자유를 만끽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오히려 정반대이다. 우리 재벌은 무지하고 탐욕스러워 윤리적 긴장을 풀고 자유시장경제 토대 자체를 허물고 있다. 사회에 패악(悖惡)을 저지르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발등을 찍는 어리석은 짓이다. 

 재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높아만 간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여야 가리지 않고 재벌 때리기에 나선다. 이 와중에 재벌을 대변하는 전경련 회장이 포퓰리즘을 비판하고 나섰으니, 그 말이 아무리 옳아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재벌, 대기업집단은 도덕성으로 무장하고, 윤리적 긴장을 높여 성장, 발전해야 할 경제주체이지, 결코 타도할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  재벌들은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우리 경제역량을 키우는데 앞장서야 한다.  

 일부 불순한 세력들은 재벌을 응징하면 경제, 특히 서민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 중소기업이 재벌, 대기업과 의존, 협력관계에 있는 우리 경제현실을 생각하면, 이들에 대한 응징이 서민경제의 재앙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정치권이 국민적 불신을 재벌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재벌이 올바른 방향으로 자기혁신에 나설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견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벌, 대기업집단은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윤리적 긴장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보자. 

 포퓰리즘은 한마디로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고 보자는 생각이다. 모든 정책은 과학적으로 설계되고, 지속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대중들의 요구가 다급해도, 책임 있는 정당이나 정부라면 과학적 정책 없이 대중들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맹목적으로 영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포퓰리즘에는 미래가 없다. 찬바람 부는 절망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는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이다.  

 민주당 대표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고액 등록금 부담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가 아우성치는데, 그것이 무슨 포퓰리즘이란 말인가.”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공당의 대표이고 정치학을 강의했다는 사람 입에서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올까, 믿어지지 않아서이다.  등록금 부담을 완화해달라는 국민의 요구 그 자체는 물론 포퓰리즘이 아니다.  그러한 요구에 정책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세금을 쏟아 붓겠다고 나서는 태도는 의문의 여지없는 포퓰리즘이다.  

 민주당이 평소 고액등록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고민하거나 정책을 만들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경쟁하듯 세금으로 등록금을 내리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하였다.  대학의 구조조정, 재정개혁 그리고 기부금활성화 같은 전제가 되는 정책을 일체 생략하고 높은 등록금 부담에 고통 받는 국민들의 인기에 영합하고 보자는 자신들의 태도가 포퓰리즘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술에 취한 사람일수록 술 취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끝내 큰 사고를 저지르고 만다.  여야 가리지 않고 포퓰리즘에 휩쓸리는 우리의 정치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은 결국 국민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 대선에서 지금처럼 여야 가리지 않고 복지 포퓰리즘 경쟁에 나서게 되면 어떻게 될까.  참으로 끔찍한 생각이 든다.  국민과 함께 땀과 눈물을 흘리며 나라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새로운 리더십을 대망(待望)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으로 믿는다.

2012.     6.     29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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