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 제국, 그 격동의 순간들
런던타임즈 | 입력 : 2008/03/17 [10:42]
▲ 고종황제(李熙)와 황태자(순종). 1907년 고종황제는 헤이그 밀사에 대한 책임으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런던타임즈
▲ 대한제국의 군인이었던 윤웅렬(尹雄烈)소장과 그의 손자들. 그는 국채보상운동을 와해시킨 것으로 인해 106명의 친일 반민족 자 명단에 포함된다     ©런던타임즈
▲ 대한제국 고종황제(당시54세-1902년)의 서울 시내 행차도. 근위병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런던타임즈
 
우리에게도 제국이 있었다. 비록 1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으나 그 정신과 이름은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거듭 나게 된 것이다. 세계 열강들이 각축을 벌이던 격랑의 시절 속에서 태어나고 막을 내린 대한제국,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수레바퀴는 돌고 있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100 년 전 그 때와 너무도 흡사하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오히려 현 상황은 그 때보다 한층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6자 회담의 주변국 당사자 미·일·중·러 항상 그들이었다.
단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멀리 있던 미국이 코 앞에 다가와 있을 뿐…

대한제국은 친러파의 주도로 고종이 러시아공관에 이동했던 아관파천에서 환궁한 직후에 황제즉위식을 거쳐 1897년 선포 되었다. 비록 외세에 의지한 제국의 설립이었으나 그 것은 자주 독립국을 갈망하던 우리 선조들의 꿈의 실현이었다. 이 즈음 서재필이 주도한 독립협회가 결성되고 독립신문이 발간되고 독립문이 세워졌다.

우리 선조들은 그 때 신흥제국 러시아를 너무 믿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멀리 있던 러시아가 어떻게 극동의 한반도까지 세력을 뻗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피터스부르그에서 연해주와 중국의 대련을 있는 시베리아 만주철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주연이 바뀌고 미국의 8함대와 오끼나와등의 미군기지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강국 러시아에 의지 했던 대가는 냉혹했다. 내정간섭과 함께 수 많은 이권을 러시아에 주어야 했으며 기회균등을 요구하는 열강인 갑들에게 을로서 수없이 도장을 찍어대야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되돌아 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나라는 자주 독립국인가? 그리고 하나의 강국에만 너무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작금의 친미 반미의 논쟁은 진부하다. 100년이나 되풀이해온 소득 없는 패배주의의 호들갑일 뿐이다. 해방시절 그 노래를 기억하는가?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 속지말자 일본놈 일어난다’ 이제 ‘중국놈 주의하자’ 라고 한 귀절 더 붙여야겠다. 동북공정을 통해 준비중인 중국은 북한에 혼란이 오면 그 땅을 접수하려 할 것이다.
 
호랑이에게 팔다리를 하나씩 떼어주고 어찌 몸통만으로 생명을 유지할 것을 기대하겠는가.
일치단결하여 스스로의 힘을 기르고 외교에는 균형감각을 살려야 한다.
분열된 모습으로는 살쾡이 한 마리도 물리칠 수 없다.

대한제국은 1910년 치욕적인 한일합방으로 13년 만에 그 막을 내린다. 친러파였던 완용 일파가 친일파가 되어 데라우치 총독에게 제국을 들어다 바친 것이다. 무력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들이 지하에서 변명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백성에게 봉사하는 책임자의 자세가 아니다. 적어도 그 책임 있는 위치에 오른 자는 목숨을 걸고 항거 했어야 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동해물과 백두산을 그리며 아직도 가슴시린 100여년 전 역사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김지호 런던타임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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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타임즈 2008/03/18 [06:14] 수정 | 삭제
  • 해야님
    괸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몇회에 걸쳐 연재 할 예정입니다.
    연재에 필요한 사진은 좀 더 있습니다
  • 해야 2008/03/17 [18:45] 수정 | 삭제
  • 귀한 사진 잘 보았습니다.
    연재하실 계획이라면 사진이 더 많이 있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