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이 개입한 유럽 챔피언스 결승전

러시아에서 펼쳐진 러시안 룰렛게임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입력 : 2008/05/2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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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수문장 체흐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난 말이야. 맨체스터를 손바닥 보듯 알고 있지. 누가 어떻게 덤빌 것인가를. 다만 한 놈만 빼고 말야.”
그 한 놈에 해당하는 예측불가능의 호날두가 클린 헤딩골로 모스크바 빗줄기를 갈랐다.

90분간의 혈투가 1:1 무승부로 끝나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장대같은 빗줄기속에 물먹은 솜같은  선수들이 공 앞에서만은  비호처럼 날랜 것을 보니 인간의 예측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가히 존경스럽다.

운동장에 나뒹구는 양측 선수들을 보며 차라리 공동 우승을 주는 것이 어떨까. 천근같은 몸을 끌고 빗속을 질주해야만 하는 이들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순간 로마시대 짐승들과 사투를 벌이던 검투사 경기를 관람하던 군상들과 다름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관객조차 상상하기 싫은 연장전마져 무승부로 끝이났다. 이제 결국 저 선수들에게 권총을 드리밀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신들은 이 순간을 지켜보며 인간들을 비웃고 있을까. 아님 그들조차 판돈을 걸고 이 승부의 끝을 보자고 하는가.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 칭해지는 호날두 차례가 왔다. 오늘의 선제골을 넣었던 그가 승부차기에서 실패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총 5발이 들어간 리볼버에서 호날두의 총알에 공포탄을 넣은 것은 인간의 뜻이 아닐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기 앞서 언뜻 머뭇거린  호날두 자신의 동작에 본인도 놀라 한쪽으로 몸을 날리던 체흐의 가슴팍에 패스한 꼴이 되고 말았다.

순간 7만의 광중들은 넋이 나가버렸다. 적군과 아군 구별없이 호날두의 실축이 가져온 짧은 침묵은 곧이어 천둥같은 환호성으로 뒤바꿔졌다.  이미 2차례나 유럽 클럽축구의 정상에 오른바 있는 맨유의 세번째 도전이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백 년이 넘는 창단 이후 최초로 우승의 고지에 도전하는 첼시의 응원단들은 모스크바가 떠나가라 폭죽을 쏘아댔다.
여기까지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세계다. 

맨유 최고의 간판 저격병이 스스로 룰렛에 당하자 당연 승리의 여신은 첼시쪽으로 기울어진다. 첼시의 마지막 킥커로 나선 존 테리가 서서히 등장한다.
첼시라는 이름은 몰라도 테리라는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첼시의 주장 존 테리의 존재는 하나님 다음이었다.

킥을 하기 위해 걸어나오는 그의 어깨에 지구를 올려놓을 만큼의 무게가 짓눌렀으리라. 테리는 왼팔에 차여진 주장 완장을 다시한번 추스린다.
이 한방에 첼시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 날아가는 것이다. 축구사에 새로운 전설로 기록될 0.1초에 전세계가 호흡을 멈췄다.

여기에서 짓궂은 신들의 장난이 시작된다.  테리의 왼쪽 발밑 풀 잎위에 알맹이 굵은 빗방울을 감추어둘 줄이야.
미끌어진 테리의 오른발에서 튕겨져나간 하얀 공은 왼쪽으로 몸을 날린  골키퍼와 반대방향으로 슬로모션으로 흐르더니 오른쪽 골대를 벗어나 빗속에서 하얀 장갑을 흔들어댄다.
죽었던 호날두가 살아나고 첼시의 기둥 존 테리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이것이 신들의 장난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내가 있다. 바로 로만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이다. 테리의 킥이 골대를 비켜가자 그 젊은 억만장자는 등받이 의자에 몸을 던진다.  그의 입가에 띤 웃음은 인간에게 보내는 미소가 아닌 이러한 장난을 하고 있는 신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조국에서 자신의 팀이 승리하는 것을 보여주려던 그의 야망이 신들의 개입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러나 억만 장자가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허공으로 향한 웃음은 신들이 축구에 개입할수록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런던타임즈 편집장 박운택必立)  www.londontimes.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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