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즘 엑소시스트- 제 1화

<뜻하지 않은 교포 사회로의 합류>中에서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입력 : 2008/07/30 [19:42]
1부 실화 엑소시즘 엑소시스트


1장 폴의 귀환



 

 
2006년 5월, 여기는 미국의 한 대도시에 형성된 교포 사회이다. 그렉(주: 필자의 세례명이자 영어명)은 휴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역 교포 사회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조 비오 신부(주: 가명)가 그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조 신부는 그렉이 워싱턴에서 그곳으로 오기를 내심 원했었고, 마침내 그를 한 교포 집에 머물도록 주선하였다.

사실 그렉은 특수한 사명을 띠고 이 집에 들어왔다. 여기서 그는 그 집안의 아들인 폴(주: 혹은 김 준호. 모두 가명임)과 함께 생활하며 그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기로 조 신부와 그 교포 부부와 미리 합의를 했던 것이다.

잘 자라던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으면서 빗나가기 시작하여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술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마약, 문란한 성(性)문화와 헤비메탈, 미국 학생들의 무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바빴던 부모들의 무관심이 한데 어우러져, 어릴 때 잘 자라던 준호를 비참하리만큼 몰락시켰고 지금은 정신과 의사가 주는 처방까지 받고 있는 신세였다. 이 년째 낭인 생활을 하던 아들 폴과 난생 처음 맞게 되는 상주 손님 그렉이 한 날 동시에 들어왔다. 참으로 이날은 이 교포 부부에게 있어서 기쁘고 희망찬 날이었다. 이를 기화로 김 동준과 민 주영(주: 둘 다 가명)씨 부부는 폴과 함께 매일 아침 미사를 다니고 저녁마다 묵주 기도(주: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주기도문-, 성모송, 영광송으로 이뤄진 기도)를 바치기로 약속하였다. 그것은 정신과 치료도 별반 효과가 없었던 폴을 위한 마지막 시도였던 것이다. 
 
네 사람 모두에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먼저 그렉과 폴은 온 가족이 약속한대로 매일 아침에 미사에 참석하고, 아침 식사 후에는 한 시간씩 성경 공부와 교리 공부를 한 후 오후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그 지역에 있는 한 복지 시설에 가서 봉사하기로 정하였다. 그리고 저녁때는 온 가족이 약속한대로 매일 가족 묵주 기도를 하였고, 그 이외의 시간은 카운티(주: county, 주보다는 작고 여러 시들로 구성된 미국 행정 단위)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처음에 폴은 이 년간의 낭인 생활을 마친 직후라 쾌적하고 여유 있는 집과 따뜻하게 대해주는 부모와 부모도 존경하는 그렉 형(주: 폴은 그렉을 형이라고 부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냈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와 조 신부와 그렉 형이 함께 정한 이 ‘치유 프로그램’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것은 본인 스스로 말하곤 했듯이 ‘잃어버린 십 년’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렉도 폴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폴이 어린 동생뻘로 자신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따라주었고, 본인 스스로 젊은 날을 마약과 폭력과 어쩌면 불순결로 헛되이 보냈다는 자책감 때문에 겸손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렉은 이상한 점들을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아침 성서 공부 때, 폴이 성서를 읽는 차례가 되면 그의 혀가 뒤틀리고,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었고, 저녁 가족 묵주 기도 시간에도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곤 하였다. 아침 성경 공부 시간에 그렉은 성경의 일부를 읽고 난 후 나머지는 폴이 읽도록 시켰다. 물론 폴이 한글 성서를 잘 못 읽기 때문에 영어 성서를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폴은 어떤 경우는 근육 경련을 일으키며 다 읽지를 못하는가하면, 어떤 때는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힘겹게 읽거나 아니면 스스로 화가 나 읽는 것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렉이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김 동준 씨로부터 폴의 과거와 병 증세에 대해 미리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 예감했던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사실 이 점에 있어서 그렉에게 폴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그렉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살면서 단 한 번의 체험도 드물 터인데 여러 차례 이런 사람들을 접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이러한 폴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측은한 마음이 앞섰고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 퍼센트 확신을 가지기 위해 폴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렉: “폴, 왜 그렇게 성경을 읽지?”

폴: “이상해요. 혀가 저절로 굳고 몸도 저절로 움직여요.”

그렉: “그래도 끝까지 한 번 읽어봐.”

폴: “몸 안에서 누가 막는 것 같아요.”

그렉은 한 숨이 나왔다. 짐작했던 바가 맞았다. 이것은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이 ‘돌아온 탕자’의 착한 의지를 ‘그 안에 있는 어떤 존재’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일들은 저녁 식사 후 온 가족이 모여 묵주 기도를 드릴 때도 자주 일어났다. 그렉과 폴이 한 팀, 폴의 부모가 다른 한 팀이 되어 서로 돌아가며 기도하곤 했는데 한 번은 폴이 목을 비틀기 시작하더니 들고 있던 묵주를 바닥에 치면서 그렉과 한 목소리로 기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렉은 동요치 않고 계속 기도를 해나갔으나 폴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는지 바닥에 눕기 시작하였다. 그의 얼굴의 근육 경련은 이것이 고의로 그러는 것이 아님을 잘 증명해주고 있었다.

또 한 번은 성당 안에서 기도 도중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났는데, 폴은 그렉에게 참 가슴 아픈 질문을 하였다. “형, 이렇게까지 기도를 해야 해요?” 그렉은 그러한 폴에게 깊은 애정과 연민을 느꼈다. 사실 폴과 그렉은 거의 생활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이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일반 서적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tv를 보더라도 이러한 현상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오직 두 경우만 제외하고-성경 읽기와 묵주 기도.

그렉은 알고 있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책, 즉 성령의 감도를 받아 쓰여진 거룩한 책으로 예수 그리스도 친히 악마의 유혹을 받았을 때마다, 모두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다”하고 성경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그 유혹들을 이겨냈다. 그리고 폴이 두 번째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인 묵주 기도는 아우구스티노(어거스틴)와 함께 교회 최고의 신학자로 손꼽히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배출한 ‘도미니꼬 남녀 수도회’의 창설자인 도미니꼬 성인이 환시에서 성모 마리아로부터 직접 묵주를 하사받고 그 후 대중화된 기도로, 특별히 도미니꼬 성인에게는 당시 이단들을 쳐 이기는데 큰 역할을 했던 기도로 알려져 있다. 또한 20세기 최대의 성인으로 일컫는 프란치스코회(카푸친)의 파드레 비오(주: padre pio. 이태리의 비오 신부. 신비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몸에 친히 지니고 오십 년을 살다간 성인으로 살아생전 그의 영적 자녀는 전 세계에 이백만 명 이었던 것으로 추산)도 묵주를 가리켜 악을 쳐 이기는 ‘무기’라고 부르며 하루에도 수 백 단씩 바친 기도였다.

이 묵주 기도에 대해 폴 가족이 단골로 가는 한 교포 한의원의 한의사는 이렇게 질문하여왔다. 
 
“폴이 그런 증상을 보이는 것이 정확히 어떤 기도를 할 때인가요? 주기도문을 할 때인가요, 아니면 성모송을 할 때인가요?” 
 
이 한의사도 폴의 치유를 위해 의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도움을 주고자 애쓰던 차였지만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다. 그것은 묵주 기도가 주님의 기도(주기도문)와 성모송으로 구성되어 있는 기도기 때문에 자신이 소속된 감리교(주: 개신교의 한 교단)에서 인정하는 주기도문만 악의 세력에 대한 효력이 있는지, 아니면 정말 가톨릭 교회에만 있는 성모송에서도 그런 효력이 나오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폴은 분명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둘 다에 그러한 반응을 보인 것이며, 더 정확히 말해서 묵주 기도라고 할 때 이 두 기도문을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렉은 이미 한국에 있을 때 이런 현상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심중에는 폴이 지금 어떤 상태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김 동준씨의 정신병리학적 혹은 심리학적 해결 방안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폴을 데리고 정기적으로 그 지역 약물/알콜 중독자 자활 병원에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다녔다. 그 의사는 일종의 폴의 주치의인 셈이었고, 폴의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을 처방해 주고 있었다. 그렉은 관찰자 혹은 보호자의 자격으로 의사와 환자가 대화하는데 낄 수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이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김 동준 씨는 그렉에게 이런 저런 부탁을 하기도 하고, 또 정신과 의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정신과 의사: “요즈음은 어때요?”

폴: “상당히 좋아요.”

정신과 의사: “약은 잘 먹고 있나요?”

폴: “네. 하지만 그 약을 먹으면 너무 졸려서 잠을 많이 자요.”

정신과 의사: “그러면 그 양을 줄여서 복용해요. 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있나요?”

폴: “네, 요즈음 매일 아침 미사를 가고, 성경 공부하고 저녁에는 묵주기도를 해요. 한 봉사 단체에서 일도 해요.”

정신과 의사: “좋아요. 또 다른 특별한 일이 있나요?”

폴: “성경을 읽을 때와 묵주 기도를 할 때 얼굴 경련이 일어나고 몸이 앞뒤로 흔들 리고 속에서 뭐가 막는 것 같아요.”

정신과 의사: "?"

그렉: “그 때 적어주신 폴의 병명들을 의학 백과사전에서 확인해 보았는데, 일부만 맞고 나머지는 맞지 않았어요. 특히 방금 폴이 애기한 증상들은 그 병명들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폴: “저는 엑소시즘이 필요한가봐요(주: 이 당시 그렉은 이미 폴이 엑소시즘을 받도록 설득하고 있었음)”.

정신과 의사: “엑소시즘?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폴의 증상들을 여러 병명들로 설명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렉: “필요하다면 뉴욕 타임즈 등 여러 엑소시즘에 관한 믿을만한 자료들을 이메 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사실 그 전 진료 때 정신과 의사는 그렉의 부탁으로 폴이 지니고 있을 법한 병명들을 모두 적어 주었고, 이를 가지고 그렉과 폴은 의학 백과사전을 찾아서 서로 질의응답을 해가며, 폴의 현재 상태를 그 병명들(예컨대, ‘환각, 환청, 망상, 지나친 유연성(?)...’)과 비교해 보았다. 그 중 일부만 폴에게 해당될 수 있었고, 나머지, 특히 기도 중에 일어나는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현상들은 전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상한 현상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 밤 중에 그렉은 가끔 맞은 편 폴의 방에서 나오는 어떤 악마적인 웃음소리를 듣곤 하였다. 하루는 참을 수 없어서 폴의 방문을 노크하였다. 

그렉: “폴, 아직 안자니?”

폴: “네.”

그렉:“아까 이상한 소리가 들리던데.”

폴: “몰라요.”

그렉: “폴이 일부러 그런 소리를 낸 거야?”

폴: “아니요. 잘 모르겠는데요.”

사람의 웃음소리는 분명 아니었고 듣는 사람의 심기를 매우 거스르는 소리였지만 본인 자신은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은 그렉만이 아니었다. 폴이 예전에 낭인 생활을 할 때 머물던 한 모텔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폴의 방 주변에 머물던 사람들이 밤에 이상한 소리를 듣고 다음 날 폴에게 이에 대해 물어왔다. 물론 그 때에도 본인은 이를 의식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사실 이와 같은 이상한 현상들은 그 당사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안에 있는 ‘어떤 존재’가 주체였던 것이다. 결국 오래지 않아 그렉은 조 신부와 김씨 내외를 만나 자신의 소견을 피력하였다. 

그렉: “폴은 구마(주: 사람에게 들어간 마귀 혹은 악마를 쫓아냄. 영어로 엑소시즘- exorcism)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이런 케이스들을 몇 차례 겪어 보았습니다.”

조 신부: “글쎄. 폴이 마약을 많이 해서 정신이 혼미한 것이겠지. 누구말대로 마약 때문에 뇌가 상했거나...”

김 동준: “심리학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문제겠지요? 지가 노력을 해야지요. 병원에 도 열심히 다니고 의사가 주는 약도 열심히 먹으면 낫을 수 있어요.”

결국 그렉은 자료 수집과 편집에 들어가 '세계 엑소시스트 협회'의 창립자인 로마의 아모스 신부와 미국 abc 방송에서 방영한 엑소시즘 특집 프로(주: abc의 '20/20'라는 방송 프로에서 뉴욕 교구의 여러 엑소시스트들이 악령 들린 플로리다의 한 소녀에게 엑소시즘을 해서 성공시킨 것을 담은 현장 다큐멘터리로, 주인공 엑소시스트는 익명을 요구하였고 보조 엑소시스트는 이름을 밝힘)의 보조 엑소시스트였던 뉴욕 교구의 르바 신부에 관한 기사들과, 자신이 한국에서 직접 체험한 ‘구마가 필요한 이들’과 폴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현상들을 지적하며 이를 조 신부와 그 교포 부부에게 증거로 제시하였다.

그렉이 체험했던 경우는 세 차례 정도였는데, 한번은 그가 한국에 있을 때 꽃동네 본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젊은이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 있어서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미주 지역 젊은이들도 많이 참여하여 그 수는 수백 명을 넘어섰다. 그곳 창설자 신부가 시작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간단한 구마경도 포함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구마 기도에 그 넓은 홀 안에 있던 젊은이들 가운데 의외로 많은 이들이 곳곳에서 거부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비명을 지른다거나 몹시 괴로워한다거나 울부짖는다거나 하는 등등의 여러 반응들을 보였던 것이다. 물론 그렉처럼 '구마가 필요 없는 이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그 기도를 듣고 있거나 아니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들을 두려운 마음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이에 대해 그 창설자 신부는 자신도 이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구마가 필요한데 대해 놀랐다며, 그러한 젊은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다가가서 구마를 시작하였다. 

홀 한가운데서 어떤 아가씨와 창설자 신부 사이에 큰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 아가씨의 괴성과 울부짖음은 더욱 커져갔고 이 엑소시즘을 하는 신부의 구마 명령(예컨대,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나가라. 악령들아!)도 더욱 강해져갔다. 그 뒤 잠잠해졌는데 악령들이 나갔는지 그대로 남아있는지는 거리상 그렉이 구별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예식이 원래 예정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단순히 시작 기도의 일부로서 구마 기도를 했는데, 예상 밖에 이런 많은 거부 반응들을 보여 예정에도 없던 구마 예식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조 비오 신부가 구마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그렉의 이러한 조사 자료들과 체험담뿐만 아니라 본인이 본당 당직을 서면서 겪었던 그즈음 일어난 일들도 폴에 대한 엑소시즘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대해 조 신부는 그렉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한번은 당직을 서면서 한 밤중에 전화를 받았는데 그 본당 신자가 자기가 마귀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니 구마 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어. 그리고 자기 집에 와 달라는 거야. 또 지난 번 교구 사제 회의 때 나온 애긴데, 저 ㅇ 지역에서 어떤 신자가 엑소시스트를 정식으로 요청했데. 주교님은 그것이 심리학적인 증상인지 잘 확인해 보라고 하셨는데 잘 안 믿는 것 같아. 그 양반 마인드가...아무튼 한 트라피스트 수도회 신부님이 엑소시스트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데 확실치는 않아.” 
 
그렉은 조 신부의 말을 듣고 짚이는 바가 있었다. 지금 이 교구는 대도시와 그 교외 지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말은 미국의 여느 대도시 지역처럼 악령들이 마약과 무분별한 성관계와 사탄 숭배를 미끼로 많은 이들을 공격할 풍토 조성이 잘 되어있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이제 그들 넷은 엑소시스트를 찾는 일만 남았다. 정신과 의사는 번지수가 틀렸던 것이다. 그래서 몇 년째 그렇게도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엑소시스트 일순위는 abc 방송의 르바 신부였다. 결국 그렉은 뉴욕 교외에 살고 있는 그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는 르바 신부와의 여러 차례 통화 끝에 엑소시즘을 하기로 날짜까지 잡았고, 섬세한 여성 민 주영씨는 르바 신부 앞으로 항공 왕복권까지 보내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르바 신부는 전임 뉴욕 교구장인 오코너 추기경이 임명한 공식 엑소시스트였는데 후임 교구장이 재임명을 하지 않았고 노령 때문에 은퇴까지 한 상태였기 때문에 엑소시즘을 하기 위해서는 교회법에 따라 폴이 속한 소속 교구장이 구두나 서면으로 자신의 교구 안에서 있을 엑소시즘에 대한 허가를 해 주어야 했다. 그래서 르바 신부는 서면으로 된 허가장을 요구하였고 이 허가장을 받아내는 역할은 조 신부가 맡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대주교는 이 엑소시즘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 뒤에도 자신의 교구 안에서 “엑소시스트를 찾고 있는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결국 예정되었던 엑소시즘은 가족 모두에게 실망을 남긴 채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 동준씨가 신문을 들고 나와 그렉에게 말하였다. 

김 동준: “여기 이 여목사가 마귀를 쫓아냈다는데요.”

그렉: “아, 그래요.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요.”

김 동준: “오늘, 전화해서 한 번 가봅시다.”

그렉: “그래요. 저도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김 동준씨는 그 여목사와 연락이 되어 폴을 데리고 그 목사가 있는 교회를 찾아갔다. 한참을 헤매다가 시골 저 안쪽에 있는 한 한인 교회를 찾아냈다. 그들 모두는 교회 성전 안으로 인도되어 들어갔다. 그 여목사와 어떤 집사가 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일종의 엑소시즘을 하기 위한 워밍업이었다. 폴의 아버지도 그렉도 찬송가를 따라 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계속 성공적인 구마를 위해 기도하였다. 그 목사와 집사는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계속 온갖 기도를 다 했지만 폴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결국 폴은 웃음을 터뜨렸다. 왜냐하면 그 목사가 약간 코믹한 목소리로, “(악령에게)안 나가, 안 나가, 나가, 너는 이곳에 못 있어”하면서 폴을 꾹꾹 찔러댔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때문에 그렉도 웃을 뻔 했지만 지금 전혀 그래서는 안 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참았던 것이다. 결국 저녁이 다 되니 그 목사는 지난 번 구마에 성공한 사람은 마귀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여서 성공했지만, 폴의 경우는 너무 오래되어 쫓아낼 수 없으니 여기서 자고 계속 엑소시즘을 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김 동준씨와 그렉은 예의에 어긋남이 없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차를 집으로 향하였다.    (2부 계속)


 

 
* 저작권은 필자의 <뜻하지 않은 교포 사회로의 합류(잠정)>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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