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 아가시와 브룩쉴즈 : 조성민과 최진실

[논객 발언대]치마폭에 쌓였던 것은 안드레 아가시 인가 조성민 인가
자성 | 입력 : 2008/10/03 [07:52]

최진실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며 그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난 최진실을 미워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몇 가지 점에서 연예인 중에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예쁜 얼굴을 빼고는 다 노력과 의지의 산물이었다. 사리분별이 있고 경우에 맞는 말을 예쁘게 잘 했다. 그의 과거가 유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나 자신의 유무형의 자산을 현명하게 이용하고 진지하게 노력했다. 초창기부터 연기에 대한 성실성은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리적으로 어려운 조건에서의 현지 촬영도 마다하지 않았고 연기에 만족치 않으면 몇번이라도 자원해서 다시 찍었으며 촬영 중 숙소에서 화재가 나 죽을 뻔 할 때 구해 준 이가 이덕화인 것으로 기억한다.
 
이덕화가 어느 프로에서 자랑삼아 "내가 구했다. 구할 때 가슴도 좀 만진 것 같아. 그런데 왜 살려줬는데 인사가 없는 거야." 했던 소리가 기억난다. 이때의 화상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엉덩이 한쪽도 살짝 떼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처녀 적의 얘기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서 인기 연예인으로 뽑혀 강당에서 인사말을 하는데 그렇게 당당하고 어울리는 말이 쉽지 않았다. 자신이 학벌은 대단치 않았을 것이나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이렇게 수재들의 상아탑에 오게 돼서 영광입니다" 고 할말을 또박또박 경우에 맞게 하는데 예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름다운 프로였다. 
  
자본주의 세상이 되면서 연예인이 국민과 애환을 함께 한다고 할 때는 지나도 많이 지난 것 같다. 나훈아 같이 신비주의가 연예인의 밥줄이라며 일부러 가뭄에 콩나듯 무대를 차리고 지하식당을 통해 자신의 무대에 잠입하고 팬과 상업적인 계산에서 철저히 거리를 지키는 마땅치 않은 프로도 있다.


조성민과의 연애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그녀였고 안드레 아가시와의 연애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브룩 쉴즈였다.  둘 다 연하의 남자였다. 아가시는 브룩과의 이혼 후 테니스 성적을 되찾았으며 프린스턴 출신이며 아이큐 150인가 하던 브룩은 이혼 후 잊혀졌다.

나는 그녀가 조성민에게 접근할 때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그녀다운 개성과 정직함의 발로였지만 그녀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연하 남자와의 결혼에 얼마나 상대에게 피곤함을 줄 것인지 불안했다. 남자가 아는 한 세상에 여자에게 쥐어살고 싶은 것은 특별한 경우다.  

연기나 프로 스포츠는 인기로 먹고사는 직업이라 양쪽이 모두 현역 프로일 때는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생기게 된다. 이를 알고 머리 좋은 브룩은 결혼 후 연기를 접었으나 리즈 테일러 이후의 최고미인이라는 평을 들었던 브룩과의 삶이 아가시로서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사는 독일의 테니스 영웅 스테피 그라프는 공식 은퇴 후 아가시와 결혼을 했다.

최진실은 착하게 생겼다. 한국적 상황과 시대는 이런 사람을 원하지 않고 김희애 같은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날 것 같은 인상을 (나는 아주 싫어한다) 오래 살게 한다. 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아야지..    

안재환 사건도 있었지만 최진실이라는 대형 배우의 죽음으로 함부로 악성 댓글을 달지 않는 정화된 세상이 앞당겨졌으면 좋겠다. 악플이 사망요인의 하나였던 건 분명해 보이니까. 또 한국의 모든 분야가 거품인지라 인기의 세계와 대중이 거품을 조금이나마 걷고 상호 다가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인격이 있는 사람은 인격모독을 싫어한다. 또 오해받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세상에 없는 법이다. 공인이라면 더 그러하며 연예인은 대개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들이다. 연예인은 슬퍼도 대중 앞에 슬픈 내색도 못한다. 코메디언은 대개 집에서는 엄격하며 웃지도 않는다.

물론 세상이 내 뜻같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내가 싫어하는 연예인과 친한 것은 나도 이해할 수 없다. 최진실은 왜 이경실이와 친하며 김혜수는 왜 김희애와 친한가 따위...

또 하나 부기하고 싶은 것은 이름이다. 그는 왜 이름이 진실이었을까? 이름을 거짓이라고 짓는 사람은 없겠으나 이름은 함부로 짓기 어려운 무엇이다. 남이 평생 불러주는 이름의 뜻에 자신이 지배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진실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나쁜 길을 걸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 이름이 세속적으로 말하는 행복된 삶을 살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원본 기사 보기:신문고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