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桃花) 예찬(5회)

"도화가 피었다:/ 박하경 수필가.
위드타임즈 | 입력 : 2024/02/24 [09:40]

 

▲ 도화가 피어나지 않으면 봄이 어찌 돌아와 설까[본문 사진 중에서, 사진=박하경]




도화가 피었다며 시인인 벗이 보챘다. 바빠지면 한동안 못 내려올 텐데 언제 내려올 기회가 되겠냐며 이틀만 왔다 가란다. 결국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게 만든 결정적인 한마디는 "도화가 피었다." 는 짤막하고도 묵직한 그녀의 언사 때문이었다.

 

시인의 말은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졸린 듯한, 어쩌면 그 어떤 일에도 통달하여 달관의 경지에 이른 듯 느긋하다. 그리고 날 어디론가 잡아당겨 끌어내는 힘이 있다.

 

복숭아꽃이라고 해야 제격이지만 언젠가부터 도화가 입에 익었다.

 

고향에서 복숭아를 가꾸는 과수원이 득량역 근처에 있었는데 오리 정도 되는 거리였다. 매미도 지쳐 쉬엄쉬엄 울어대는 늦여름이 될 즈음엔 복숭아가 탐스럽게 익었다.

 

쉬 몰캉해지는 백도나 황도는 좋아하질 않았고 단단해서 베어 물면 아작이며 단물을 내는 복숭아를 가장 좋아했다. 나중에 그 복숭아 이름이 '유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복숭아는 밤에 먹어야 예뻐진다고 했다.

 

달디단 복숭아에는 벌레가 꼬이기 마련이고 낮에는 벌레 때문에라도 복숭아 먹기가 사납던 시절 이야기였음을 세월이 지나며 절로 터득하게 되었다.

 

복숭아를 먹으면 왜 예뻐질까 궁금해서 알아봤더니 복숭아의 본질은 매운맛이라고 했다. 매운맛은 폐를 관장하고 폐가 피부를 가꾸는 역할을 하기에 복숭아를 먹으면 절대 예뻐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이치를 지녔다는 것이다. 월영 시인을 만나기 전에는 복숭아는 그저 복숭아인 줄만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에 한 가지 더 있다면 전설 따라 삼천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천상의 과일로 등장하는 천도복숭아가 있겠거니 했는데 그 종류가 너무 많아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여나무 종류도 넘었으니 말이다. 물론 신선들이 먹고 노니는 그 천도복숭아와 같은 종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삼월을 넘기기 전에 남쪽에선 도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자연에도 질서가 있어 먼저 노란 꽃이 피어나고 그다음이 흰 꽃이 피어나고 연이어 분홍이 터져난다고 했다.

 

분홍의 뒤를 이어 이 강산을 화려하게 하는 색이 보라라고 했다.

 

그렇다면 노란색으로 으뜸인 산수유가 피어나고 개나리가 핀 연후에 온통 흰색으로 물감을 풀어대는 자두꽃과 백목련이 대지와 연애를 시작하면 살짝 대지를 살피며 눈치를 보는 듯하다가 활짝 만개한 자태로 대지를 물들이며 드러나는 꽃이 도화, 복숭아꽃이다.

 

예로부터 복숭아밭을 일컬어 무릉도원이라 했던가.

 

천상의 과일로 복숭아나 살구나 대추를 일컬음은 일찍이 하늘에서 인생들에게 가르침을 베풀 때 이런 나무들과 과실들을 빙자하여 비유를 베풀어 교훈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복숭아꽃이 핀다고 하면 물색없이 가슴이 뛰고 피가 절로 끓어 나는 바람에 시인의 집으로 날아 내려오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시인의 집에 닿기도 전 시인의 집으로 가는 길목이 온통 도화밭이다.

 

조롱조롱 나뭇가지에 매달린 도화 봉오리들이 불긋불긋하다.

도화의 종류들이 다르다 보니 꽃의 일색도 꽃 나름대로 피어난다.

꽃 모양도 제각각이거니와 색깔조차도 각각이어서 도화밭을 지날 즈음이면 숨이 콱 막히고 목이 조여드는 쾌감으로 번득인다.

 

도화는 가까이에서 보아야 피어난 꽃잎의 자태를 제대로 볼 수 있다.

 

현란하도록 아름다워서 보는 이로 하여금 훅~ 숨 가쁘게 하는 꽃은 단연 개복숭아꽃이겠으나 각기 이름을 지난 복숭아꽃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며 촌스럽지 않으려 호사스럽게 피어난다.

 

도화가 피어나지 않으면 봄이 어찌 돌아와 설까.

 

도화가 피어나지 않으면 무릉도원은 어디에서 찾을까. 분홍의 세상을 연출해 내는 도화가 봄을 도도하게 이끈다면 결코 헛말이 될까.

 

이 강산에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어주지 않으면 고향이 봄이 없을 듯한데 저토록 고상하고 귀한 자태로 일구어내어 익혀내는 복숭아의 달큼함이 목젖에서 벌써 자극해 댄다.

 

여름으로 들어서기 전 복숭아가 익을 것이다. 한입 그득 베어 물고 단물을 뚝뚝 흘리며 마흔일곱을 예쁘게 아름답게 도화 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본문이미지

▲ 박하경 수필가  ©위드타임즈

  [秀重 박하경 수필가 프로필] 

출생: 전남 보성. 시인, 수필가. 소설가 

한일신학교 상담심리학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경희사이버대학사회복지, 노인복지학 전공 

월간 모던포엠 수필 등단(2004).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2007).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와 경기광주문인협회 회원, 현대문학사조 부회장, 지필문학 부회장, 미당문학 이사, 현대문학사조 편집위원. 종자와 시인 박물관 자문위원. 제2회 잡지 수기 대상 문광부장관상 ,경기광주예술공로상 등 수상, 시집 : <꽃굿><헛소리 같지 않은 뻘소리라고 누가 그래?> 외 동인지 다수 등 (현)운당하경서재(유튜브 운영)

 

 

원본 기사 보기:위드타임즈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