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 모델 실패를 선언한 소로스

<채수경 칼럼> 더러워진 보이지 않는 손
채수경 | 입력 : 2009/02/24 [06:42]
인류는 직립보행을 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쓸모 있는 도구’인 손을 얻게 된다. 손을 쓰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인류문명은 없었으리라는 데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 바, 그래서 두 발로 걸으면서 손을 사용한 원인류를 ‘손재주 있는 인간’ 즉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라고도 부른다.
손이야말로 인간의 욕망추구 도구, 그리스 신화에 뭐든지 손을 대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하는 ‘마이더스의 손’이 등장하는 것도 그걸 풍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프리기아의 왕 마이다스가 디오니소스를 길러준 숲의 신 실레노스를 환대해준 데 대한 보답으로 디오니소스가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마이다스는 자신의 손에 닿은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빌었고, 그 소원이 이뤄져 처음에는 매우 기뻐했으나 먹는 음식까지 황금으로 변하여 먹지도 못하게 되고 심지어는 딸의 손을 잡자마자 딸까지 황금으로 변하자 다시 디오니소스를 찾아가 소원을 철회해달라고 빌었다는 이야기다.
무욕을 금과옥조로 삼는 불가에서 합장을 하고 두 손으로 각종 수인(手印)을 만드는 것도 욕망 추구의 도구인 손을 불법으로 깨끗이 씻었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함이었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a. 스미스도 손을 욕망추구의 도구로 간주하여 저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소개했었다. 스미스는 “이기심은 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실현을 위해 신(神)이 내려준 수단으로서 비능률·불합리를 제거하는 유일한 요소이며 국부의 원동력”이라고 역설하면서 “자유경쟁시장에서의 가치법칙과 이윤 동기에 의한 자본투하의 자연적 서열 즉 ‘보이지 않는 손’이 인간을 자연적 조화와 번영으로 인도한다”고 주장했었다.
각 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생산된 재화가 자유경쟁시장의 가격조절 시스템을 통해 가장 최적의 상태로 분배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개인이 무제한으로 이기심을 발휘하게 되면 결국 사회는 파멸에 이를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이타심·상호애·자비심 등의 덕목 즉 ‘정의의 법칙’으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너무 많은 욕망을 움켜쥐다가 손목이 부러져버렸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불황의 쓰나미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일 뉴욕의 콜럼비아대가 주최한 경제학자·금융인 컨퍼런스에서 ‘헤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가 기조연설을 통해 “지금의 금융위기가 대공황 때보다 실질적으로 더 심각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유시장모델이 실패했다”고 선언하여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간 자신이 창업한 퀀텀펀드를 통해 210억달러의 자금을 운용해온 소로스가 자신의 입으로 ‘자유시장모델의 실패’를 선언한 것도 아이러니컬하지만 자신을 포함한 투기세력이 지난 97년 아시아 지역에서 환투기를 하다가 먹고 튀어 금융위기를 불러 일으켰을 때는 먼 산 바라보면서 딴청을 하다가 미국 발 금융위기로 큰 손실을 입게 되자 생뚱맞게 자유시장 모델 탓을 하고 있음에 무덤 속의 스미스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젓게 생겼다. 소로스는 지난 해 11월 미 하원의 금융위기 관련 청문회에 출석했을 때도 ‘헤지펀드들이 거품을 키웠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시종일관 “금융위기의 원인은 시스템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하여 눈총을 받았었다.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으면 배탈이 난다.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 또한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을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때가 너무 많이 낀 것 같다. 석가모니가 역설했던 금욕이나 스미스가 권고했던 이타심·상호애·자비심 등의 덕목 등의 강력 살균 비누로 한번 쯤 깨끗이 씻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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