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대한제국(大韓帝國)의 국새(國璽)를 찾았다"조선왕조 유일한 국새"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유리원판필름의 사진과 일치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은 17일 오전 이건무 문화재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박물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월17일 고궁박물관 회의실에서 고종황제가 사용하였던 “국새를 공개하고 설명회를 개최한다”라고 발표했다. 이번에 발굴된 국쇄는 고종황제가 친서에 사용한 현존하는 유일한 대한제국시대 국새이자 조선왕조의 유일한 것이다. 이 국새는 국외반출 중요우리문화재에 대한 유물구입을 통한 국외문화재환수의 일환으로 2008년 12월 소장하게 된 것이며, 고종황제가 친서에 사용한 현존하는 유일한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국새로,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에 사진으로만 전해지던 분실된 바로 그 국새이다.
내함은 황동(黃銅)의 재질로, 2단으로 되어 하단에는 인주(印朱)를 넣을 수 있도록 되어있고, 그 윗단에 국새를 넣는다. 뚜껑은 네 면을 경사지게 꺾어 마무리 하였다. 하단과 뚜껑의 내부는 붉은 비단을 직접 접착하여 마무리하였으나, 국새가 들어가는 상단은 두께 0.5cm의 소나무로 내곽을 만든 뒤 붉은 천을 붙여 마무리하였다. 성분분석결과, 거북형손잡이는 은(銀)과 금(金)의 비율이 81:18이며, 몸체(寶身·보신)는 57:41의 비율로 은이 많이 사용되어 손잡이와 몸체가 따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국새는 공문서가 아닌 (공문서에는 “대한국새” “황제지보”등이 주로 사용됨) 친서에 주로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비밀리에 제작되어 고종황제가 직접 소지하고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국새는 상서원(尙書院)에서 관리하는 것이 상례이나, 황제가 이 국새를 직접 소지하고 관리한 점은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이나 긴장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판단된다. 동시기에 만들어진 어보(御寶, 의례용)와 국새(國璽, 실무용)를 비교해보면, 어보의 무게는 3.4kg으로 국새의 4배에 달하며, 크기에도 큰 차이가 있다. 주재료에 있어서 어보는 은과 구리가 주성분인 반면, 국새는 은과 금으로 제작되어 의례용과 실제 사용함에 있어서의 구별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국새 확인의 의의는,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의 유리원판사진 등으로만 전해져 오
향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이 국새에 대하여 국가지정문화재(국보) 지정신청을 함과 동시에 적절한 시기에 일반시민들에게 특별공개 할 예정이다. 또한 덕수궁 석조전의 대한제국실이 복원되면 고종관련 자료 전시에 활용할 계획이다. 다른 한 종류는 1906년에 러시아황제 등에게 보낸 친서 등에 사용된 것으로 글씨체가 각이 지고 반듯한 분위기이다. 현재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유리원판사진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원본 기사 보기:pluskorea <저작권자 ⓒ London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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