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목장의 대혈투에서 세상사를 배워본다

그린위에서 12시간의 피말리는 경쟁에도 웃음 잃지 않는 두 어린처녀
최영호 변호사 | 입력 : 2009/05/30 [14:10]
지난 주말 춘천의 라데나 골프클럽(파72,6,381야드)에서 열린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총상금 4억원, 우승상금 1억원). 마침 그 전 주말에 그 골프장에서 운동을 하였는데 페어웨이고 그린이고 정말 경기를 진행할 준비를 완벽히 하여 놓았다.
 
이 챔피언십에서 작년에 가장 많은 우승을 한 서미경도, 지난해 이 경기의 우승자인 김보경도 하늘하늘한 하늘이도, 파워풀한 안선주도 모두 중간에 탈락하고, 머시기 대학교 같은 과 1학년인 방년 19세 두 처녀가 결승에 올랐다.
 

▶왼쪽이 최혜용 선수. 최 선수가 27번홀에서 벙커샷을 시도하고 있다. 오른쪽이 유소연 선수. 티샷장면이다.      ©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언제나 즐거운 표정으로 “나는 왜 얼짱이라고 기사를 써주지 않느냐”고 기자들에게 들이댄다는, 재작년 pga 마스터스 우승자 잭 존슨을 닮은 유소연. 조용하고 참한 모습으로 상냥한 표정을 지으면서 수줍은 동네처녀 같으면서도 나이에 맞지 않게 침착하고 어른스러운 최혜용.
 
전반 9홀까지는 장타를 자랑하는 유소연이 세 홀인가 앞서더니, 거리는 짧아도 또박또박 그린에 올리고 무서운 감각으로 긴 거리의 퍼팅을 성공시키면서 14번 홀인가부터 a/s로 무서운 혈투가 계속된다.
 
녹화방송을 보면서 무심코 두 처녀의 대결이 세상사와 연결되는 것은 웬 일? 두 처녀가 각각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여당과 야당, 친박과 친이, 반미와 친미, 반북과 친북 등 우리 사회에서 반목하는 세력으로 바꾸어본다면?
 
지난 도하 아시안게임의 단체전에 함께 출전하여 우리에게 금메달을 안겨주었지만, 개인전에서는 유소연이 우승, 최혜용이 준우승이었다던가?
 
작년에 프로골퍼에게 평생 한 번 있는 신인상을 최혜용에게 근소한 점수 차이로 넘겨준 유소연과 작년 이 대회에서 김보경에게 마지막 홀에서 퍼팅 실수로 한 홀 차로 우승을 놓친 최혜용.
 
두 처녀는 이번 대회의 우승을 결코 상대방에게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대립 중인 두 세력과 조금은 닮아있다. 잘 깎은 페어웨이와 박박 다져놓은 그린은 우리 국민들의 높은 정치의식수준 같았고, 멋지고 훌륭한 주변풍경은 우리 조국의 아름다운 모습에 다름 아니다.
 
양보할 수 없는 우리나라 유일의 매치플레이 챔피언, 두 처녀는 다른 사람의 플레이는 상관없이 자신의 경기에만 열중한다. 상대방이 파를 하면 나도 파를 하면 되고. 상대방이 실수를 하면 나는 정신을 차려서 잘 하면 되고. 상대방이 반칙을 하면 내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경기위원을 물론, 수많은 갤러리와 tv 카메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상대방이 어프로치로 잘 갖다 붙이면 까탈스럽지 않게 컨시드를 주고, 어느 쪽이건 좋은 샷이나 퍼팅을 하면, 선수도 갤러리도 잘 했다고 박수를 치고 엄지를 치켜세워 격려해준다.

 
▶  두산매치플레이챔피언십 결승전 장면   ©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 어른들의 정치, 사회도 이렇게 될 수 없을까?
 
어느덧 마지막 18번 파5 홀. 이제 마지막 한 타로 승부가 결정된다. 유소연은 세 번째 샷을 그린위로 올렸으나 최혜용은 라프에서 친 것이 그만 그린을 넘어섰다. 여차하면 패배자가 될 최혜용이 정신을 집중하고 네 번째 샷을 위하여 연습스윙을 하는데.
 
어디선가 울리는 삐리릭 휴대폰 소리.....이런 빈대같은 경우가 있나? 나라도 신경질을 내버렸을 터인데 19살 저 최혜용은 갤러리를 쳐다보면서 가볍게 웃음을 지은 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어드레스를 한다.
 
선거방해, 부정선거, 부당한 선전, 선동. 정치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그들은 상대방에게 어떻게 대처하여 왔나? 악랄한 비난, 비방, 상대방을 박멸하려는 극심한 모욕과 비꼬음....
 
휴대폰 소리에도 너그러운 웃음으로 대하여 복을 받았을까? 최혜용이 네 번째 샷으로 핀 가까이 공을 부치고, 유소연이 버디 퍼팅을 할 찰나 어떤 갤러리가 중계 케이블을 밟았는지 아니면 방송국의 다른 사정인지 중계방송이 중단되어 한참을 기다리니 두 사람 다 버디 펏을 성공하지 못하여 연장경기를 한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선수들보다 인물이 빼어나거나 몸매가 s라인은 아니었고, 나쁜 샷을 하였거나 힘이 들었을 때 혀를 낼름 내미는 흠(?)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흉보는 사람은 없었다.
 
선거과정에서 정치인들이 모자라고 맘에 들지않는 허점이 들어나도, 일단 지도자로 당선되면 아무도 그들의 치부를 깨물고 늘어지지 않았듯이....
 
본인들은 지겹고 힘들었는지 몰라도, 갤러리나 시청자들은 한 홀이라고 더 계속되는 것이 더욱 즐겁기 마련....벌써 해는 서산에 기웃기웃, 연장게임을 계속 반복하게 된 18번 홀에서 연장 8번째 경기가 계속된다.
 
그날 오전 최혜용은 무서운 신예 이현주를, 유소연은 서미경과 김보경을 제껴버린 정혜진(해진?)을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 하루동안 45홀 가까이를 죽자사자(?) 계속 싸우고 있는 것이다.
 
연장 8번째 홀. 유소연이 5미터가 넘는 긴 퍼팅을 성공하여 버디를 잡자. 최혜용도 2미터 가까운 내리막 퍼팅을 성공하여 다시 한 번 맞장을 뜬다. 7번째, 8번째 연장 홀에서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티샷이 감기어 왼쪽 해저드 쪽으로 집어넣어 세컨샷에 애를 먹었던 그녀가 멋지게 해낸 것이다.
 
어쩌면 19살의 그녀가 저렇게 침착하게 경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 과연 상주를 자처한 사람들이나 수모를 겪으면서 조문을 하는 정치인들이 어려운 정치상황에서 저 어린 처녀처럼 정국을 술술 풀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보가 앞섰다가 다시 보수가 국민의 여론을 휘감듯이 수시로 정치상황이 바뀌는 것처럼 경기위원과 골프장의 관리자는 연장 홀 마다 핀의 위치를 바꾸고 어떻게든 최고의 실력자가 우승을 할 수 있도록 국면은 다시 전환된다.
 
마지막 연장 아홉 번째 홀. 다리가 풀린 두 사람 모두 세 번째 샷이 그린에 올라가지 못하고 유소연은 그린 주변의 러프에서, 최혜용은 그린을 넘어 방송중계탑에 맞고나온 볼을 무벌타로 구제받아 드롭한 뒤 그린에 올린다.
 
마지막 날 결승전에서 연장 9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유소연(19,하이마트)이 라이벌 최혜용(19,lig)을 눌렀다.  3~4위 결정전에서는 ‘프로 4년차’ 정혜진(22,삼화저축은행)이 이현주(21,동아회원권)를 7&6로 누르고 3위에 올라 상금 2천4백만원을 챙겼다.
두 사람 모두 3미터 가량의 결승퍼팅을 남겨두었다. 조금 거리가 먼 유소연이 지금까지 해온 대로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잡고 오른손으로 퍼터를 잡은 뒤 왼손을 내려서 침착하게 홀에 집어넣는다.
 
최혜용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불안한 표정이 역력하다. 3미터가 조금 안되는 오르막 퍼팅. 평소 가장 퍼팅을 잘 한다는 그녀가 쏜 총알(?)은 홀을 왼쪽으로 1센티 비켜나가고 만다.
 
순간 최혜용의 안구에는 안개가 스치고. 유소연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잠깐 감사의 기도를 한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한 경기가 해가 넘어간 19:20경에야 끝났다.
 
친구인 두 사람은 12:00경부터 7시간이 넘도록 27홀을 함께 경기하였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서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었다.
 
최혜용이 아직도 퍼터를 든 채 넋을 잃고 서있는 사이 유소연은 아버지를 끓어안고 흐느끼다가 최혜용이 생각난 듯 얼핏 그녀를 찾아 위로의 포옹을 하여 준다.
 
두 번 연거푸 준우승의 아픔을 안게 된 최혜용 그러나, 그녀도 유소연의 등을 두드리며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우리 둘 다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치?”
“그래, 고생했다. 고맙다, 다음 경기 때 또 한 번 붙어보자!”

 
그렇다. 그들은 상대방을 물리쳐야 최고가 될 수 있는 필연적인 경쟁자였지만,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고의 경기를 벌여 자신들의 영광은 물론, 수많은 갤러리와 골프팬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지상의 과제가 있었을 뿐, 불구대천지 원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시 이번 주에 다른 경기에 같이 출전하여 상대방이 우승을 하면 다시 그를 축하해주고, 또 다음 경기를 기약하면서 경기가 끝나면 다시 친구로 만나 19살 순정을 나누는 사이로 오랫동안 자신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열심히 골프를 해야 할 운명을 가진 것이다.
 
pga도 아니고, lpga도 아니고, 유로피언 투어도 아닌 한국여자프로골프선수권 대회에서 이렇게 멋지고 당당한 경기를 보기는 처음이다. 19살짜리 처녀들이 만들어낸 역사적인 경기 정정당당하고, 공평무사한 승부. 이런 모습을 우리 어른들이 하는, 정치 9단이라는 사람들이 하는 정치세계에서 좀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수모를 겪으면서도 조문을 가는 놈들은 한심하다고 하는 사람들이나 아직도 조문을 하지 않는 놈들은 인간도 아니라는 사람들이나 모두들 두 처녀에게 좀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그린에 나타난 분은 아마도 유소연의 어머니인 것 같았다. 그제서야 유소연은 마음껏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 정말 힘들었어요....그래, 세상을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고, 더군다가 챔피언이 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것이란다......
 
세상을 쥐고 흔드는 많은 분들. 휼륭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죽기보다 더 어려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진정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중도에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살아남아 불쌍한 중생들을 위하여 죽을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세요!
 
어린 처녀들의 원숙한 경기를 보면서 . 주는 대로 받는다(주는 대로 받는 세상) /누구든지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다(지위전환의 가능성)/ 반대편에 대하여 너그럽자(반대자에 대한 관용) 새삼 이런 진리를 되새겨봅니다.
 
어제 거시기 신문, 최나연이 이렇게 외치고 있다. "그립으로 볼을 땅에 박으세요!” 여러분, 공이 잘 안 맞으면 어디 깨지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 머리를 들이박고 까무러치세요! 죽지는 마시고......

 
                                             [ 본보 제휴사: 신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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