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文武)로 본 ‘안철수 신드름’

이 민족이 고대하는 위대한 지도자?
신성대 논설위원 | 입력 : 2011/11/05 [20:00]
▲ 신성대 논설위원
박정희 대통령은 관악산 기슭으로 서울대학교를 옮겨놓으면서 언젠가는 이 민족, 이 국가를 영광으로 이끌 위대한 인물이 그곳에서 배출되리란 염원을 가졌을 것이다. 국민들 역시 그곳에서 ‘큰바위 얼굴’이 나오길 기대해 왔다. 때때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 ‘서울대학이 없어져야 대한민국이 산다’는 극언까지 하지만, 본마음으로야 어찌 그 희망을 버릴 수 있으랴.
 
그동안 김영삼, 조순, 이회창, 이수성, 황우석, 고건, 정몽준, 정동영, 오세훈 같은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혹여‘관악산 큰바위 얼굴’일까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때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반기문, 정운찬, 손학규, 김문수, 박세일, 유시민, 나경원, 안철수, 심지어 박원순(?)까지 제각기 그 주인공이 되고자 분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전두환, 노태우, 정주영,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 각기 다른 산의‘큰바위 얼굴’이고자 했지만 역시 아니었다. 그리고 박근혜, 문재인, 김두관, 박경철 등등 다음 출연자들이 대기 중이다.
 
주둥이 깨어진 국보급 백자!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있던 안철수가 서울대학교로 옮아갈 때 이미 눈치 빠른 사람들은 짐작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직함도 처음 들어 보는 융합과학대학원장이란다. 헌데 이때 부인까지 서울대 종신교수로 임용된 것에서부터 뭔가 미심쩍어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국립대학에 부부가 동시에 임용이라니?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음에도 여론은 그저 조용히 넘어갔다. 게다가 청춘콘서트? 대학교수가 그 학교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마다하고 학교 밖에서 젊은이들 모아놓고 멘토를 핑계로 팔로어 늘리기에 열중했다.
 
이러한 안철수의 변신과 성공, 그리고 사회적 공헌을 부정하거나 흠잡자는 건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그의 행보는 어떤 지향점이 있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 다수의 저서(실은 자기PR서), 일반 개인에게 백신을 무료로 배포, 청춘콘서트, 그리고 여기저기 학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온갖 위원회나 시민단체에 자신의 이름을 걸친 점 등을 미루어 짐작할 때, 그는 분명 정치적 야심을 키워왔다고 볼 수 있겠다. 아무튼 그의 행보는 나름으로 성공적이었고, 시류 또한 잘 맞아떨어져 오세훈 전 서울시장 사퇴로 광풍이라 할 수 있는 ‘안철수 현상’을 불러왔다.
 
아무튼 그는 드물게 잘 빚어진 그릇임에는 틀림없다. 허나 어쩌랴. 겨우 유약 바른 상태에서 밖으로 내돌리다가 그만 주둥이에 금이 가버렸으니. 초벌구이 가마에 들어가기도 전에 지레 자랑하며 내돌리다 그만 문턱에 걸려 넘어진 꼴이다. 말 한마디 잘못 뱉어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 것이다. 제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그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아직 정치에 입문하는 훈련이 덜되었지만, 만약 그때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헌데 야망이 너무 컸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정치에 뜻이 없었던 것일까? 초벌구이 재벌구이의 불의 시련을 통과해 낼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남다른 두뇌로 불의 강을 건너뛰려는 걸까?
 
바이러스와 동침한 백신?
신은 인간에게 순금의 절대반지를 주지 않는다. 나머지 12k는 인간의 몫이다. 안철수가 처음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었을 때, 절반을 넘어서는 지지를 받았다. 민주국가에서 그 정도면 사실상 절대반지나 다름없다. 헌데 그는 그 12k 반지에 오만해져 버렸다. 그걸 가지고 24k 절대반지로 만드는 지혜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반지조차 골룸에게 빌려주었다. 해서 겨우 5%짜리 골룸이 졸지에 반지 덕에 총독자리를 얻었다.
 
게다가 그는 그 12k 반지를 쥐자마자 외쳤다. “한나라당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민주당도 대안이 아니다!”라고. 맙소사! 이제 그는 영영 24k 절대반지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 안철수는 영원한 12k 반지인 것이다. 나무꾼은 쇠도끼를 은도끼로, 은도끼를 금도끼로 바꾸는 시험을 통과했지만, 안철수는 실패하고 말았다. 나무꾼은 정직과 겸손을 가졌지만 안철수는 겸손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이후 그가 직접 정치에 나서 아무리 잘한다 해도 절반의 사람들은 동의치 않을 것이다. 감정의 상처를 입힌 때문이다.
 
그 말을 뱉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선 그 누구도 안철수를 몰랐으면 몰랐지, 미워하거나 적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 또한 누구와도 등질 필요도 이유도 없는 그런 위치에 서 있었다. 헌데 그는 세상에다 처음 입을 열자마자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만들었다. 이게 솔직한 건가? 아니면 어리석은 바보인가? 이는 그가 그동안 내심 얼마나 네거티브적인 사고로 살아왔는지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만약 그때 안철수가 자만하지 않고 고행의 길을 택했더라면 24k 순금의 절대반지로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12k반지에 만족하지 말고 그걸 깊은 연못에 도로 던져 버렸어야 했다. “저는 아직 그걸 가질 자격도 없고 능력도 부족합니다.”라고 겸손하게 사양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랬다면 그 즉시 24k 절대반지를 손에 쥐었을 것이다. 실수 다음엔 반드시 징벌 혹은 재앙이 닥치는 것은 당연한 섭리. 그는 골룸과 포옹함으로써 부도덕하고 진정성 없는 망토를 뒤집어써 버렸다.
 
상식이라는 새로운 편가르기?
그는 우리나라 정치사에 드물게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었다. 부패와 무능, 끝없는 당파적 분쟁에 넌더리난 국민들에게 도덕성을 갖춘 참신한 인물로서 비쳐졌었다. 해서 그가 나선다고 하자 모두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희망을 기대했었다. 헌데 그가 세상에 대고 한 첫 일성은 절반의 사람들에게 “어?”하는 당혹감을 주고 만 것이다.
 
안철수! 그는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큰바위 얼굴’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 또한 스스로 혐오해 마지않는 기성 정치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고를 가진 평범한 인물이라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 버린 것이다. 양극단의 한쪽 끝에 서 있었을 뿐인, 편협성과 독선으로 자라온, 편가르기식 고질병에 걸린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말이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결벽증적 도덕성을 리더로서의 자질과 혼동한 것이다.
 
안철수가 10월 24일 박원순 후보 지원을 위해 들러 건넨 편지에서 “이번 시장 선거는 부자 대 서민, 노인 대 젊은이, 강남과 강북의 대결이 아니고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은 더더욱 아니어야 한다”며 “누가 대립이 아닌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누구의 말이 진실한지, 또 누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말하고 있는지를 묻는 선거여야 한다”고 했다. 누가 할 소리?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서로 상치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안철수의 현재 직함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대학원장이다. 학문 혹은 기술 간의 용합을 주선하는 일을 맡은 모양이다. 헌데 이번의 정치적인 등장은 전혀 융합적이 질 못했다. 과연 그가 진정한 융합의 의미를 알고나 있을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기술이나 물질에서는 융합이란 용어를 쓰지만 사회에서는 그게 곧 화합이고 소통이 아닌가? 헌데 백신개발자로서의 결벽증은 애초부터 화합이란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배타적이었다. 바이러스와는 포옹할 수 있어도 시스템과는 악수조차 거부했다.
 
철학적 소양과 인간적 경륜 부족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예전에 우리가 어렸을 적엔 부모들로부터 항상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 있다. 밖에 나가면 어른을 존경하고 친구 잘 사귀어야 된다고. 안철수가 펴낸 책들을 보면 하나같이 자기가 잘났다는 자만심이 가득 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남을 칭찬하는 글이 거의 없다. 아마도 칭찬하는 법을 몰랐을 것이다. 일생동안 귀하고 착하고 공부 잘하는 도련님으로 떠받들려 칭찬받기만 하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스승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혼자 힘으로 백신을 개발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지난번 윤여준을 물먹인 싸가지 없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주변 인물 모두가 그냥 자신의 멘토일 뿐이란다. 그 말도 뒤집어 보면 기실 모두가 자신을 멘토로 따르는 추종자라는 거다. 기껏해야 조언자 정도로 여긴다는 말이다. 바로 이 점이 그의 한계이자 최대의 약점이다. 워낙 매끈하고 작디작은 그릇이라 다른 거친 무엇을 담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상품성을 보고 주변으로 몰려들었던 모양인데, 어찌된 일인지 삐딱한 깻잎머리과 부류들과 어울리면서 그의 사고는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물론 그 역시 처음부터 깻잎머리여서 그런 동류의 사람을 불러모은 것이겠지만, 아무튼 주변에 또래의 팔로어들만 가득하고 어른다운 어른이나 스승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들 대부분 그의 참신한 이미지에 동승하거나 차경(借景)하려는 사람들일 뿐이었던 셈이다.
 
도덕정치(道德政治)를 꿈꾸는 고고지사(枯槁之士)
그동안 그가 펴낸 책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짐작컨대, 그는 시종일관 자기 소신대로 살아왔다고 했다. 깨끗하게 자기 관리해왔으며, 비록 크지는 않지만 사업에서 성공하고, 거듭된 고민 끝에 학자로의 변신에도 성공했다. 그의 언행을 훑어보니 그가 비록 사회와 나라, 특히 젊은이들의 장래를 걱정한다지만 대부분의 자기 성공담에 관한 책이 다 그렇듯, 구구절절 옳은 평범한 소리일 뿐이다. 말라비틀어진 조선 선비들이 그랬듯이.
 
그렇지만 그의 사회를 보는 시각은 지나치게 편도되어 있었다. 매사를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 대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문화적 여유나 향기, 철학적 소양이나 미래지향적이면서 탁월한 견해, 사회에 대한 관용이나 남에 대한 배려심이 어느 페이지에서도 묻어나지 않는다. 우스갯소리지만 눈과 귀가 두 개씩 달린 것은 사물의 한쪽 면만 보지 말고 남의 말도 들어줄 줄 알라는 의미라고 한다. 헌데 안철수의 눈과 귀는 지나치게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뭐 눈엔 뭐밖에 안 보인다고, 의사로서 백신개발자로서의 소양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진정한 의사라면 그 어떤 환자도 받아줘야 하고, 그 어떤 세균과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노자(老子)가 말한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정신일 것이다. 그런 철학도 없이 어찌 융합과학대학원장을 맡았을까? 관상학자들은 그의 투명한 입술을 보고 진정으로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도련님 상이라 한다. 해서 이번 일이 그가 세상과 사회,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 보다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깻잎머리 걷어올려 넓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으면 한다는 말이다.
 
‘안철수 현상’의 사회적 학습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친다는 속담에 익숙한 민족이 바로 한국인이 아닐까 싶다. 오세훈 전 시장의 사퇴로 일어난 혼란과 국가적 에너지 낭비에 대한 사회적 학습은 시늉도 못해 본 채, 곧바로 선거전이라는 광풍에 휩쓸려 버렸다. 그러니 이제 누가 나서서 학습하고 김빠진 매뉴얼을 만들려 하겠는가? 일본이 세계 최대의 원자로 폭발 사고에도 당황하지 않고, 없는 매뉴얼을 만들어 가면서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토록 가깝고도 먼 두 민족일 수 있을까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천년 명검은 온갖 불순물이 섞인 강철을 불과 물, 그리고 긴 세월로 끝없이 담금질해야 만들어진다. 명품 도자기 또한 흙과 물로 빚어지지만, 몇 번의 뜨거운 불의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그게 바로 무혼(武魂)이다. 이번 안철수 사건에서 보듯 우리가 그토록 오매불망하는 절세의 명기는 쉽게 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인의 일생을 건 열정과 기술, 그리고 산천의 정기와 만백성의 간절한 염원이 한 날 한 곳에 모아져야 태어날 수 있다. 그 염원을 담아내기엔 안철수라는 그릇이 너무 작다.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안철수 바람이 남긴 교훈이라면,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큰바위 얼굴’은 아무리 유능하고 훌륭하다 해도 또다시 편가르기 하는 그런 인물일 순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는 거다. 부패하거나 부도덕하고 무능한 작금의 정치인이나 그들 집단에 대한 대안적 혹은 대결적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 아닌 저것이 아니라, 이 모두를 품을 수 있는 큰 품(大德)을 지닌 현자(賢者), 이 민족을 하나로 묶어 줄 그런 위인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염원하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원본 기사 보기: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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