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아래 일엽편주 조선팔도

대한제국, 그 격동의 순간들
런던타임즈 | 입력 : 2008/04/09 [16:21]
▲ 사열하고 있는 조선의 신식군대     © 런던타임즈

일본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출현으로 조선 팔도는 일대 격랑에 휩싸이게 되었다.
일엽편주(一葉片舟)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파도가 그치지 않는 형국이었다. 

어차피 제방으로 막을 수 없는 밀물이라면 닻을 올리고 그 물결을 향해 노를 저어 나아가야 하기에 조선은 과감한 변신을 꾀하게 된다.
비록 타의에 의해 촉발 되었으나 이제 변화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이다.
 
1894년에 자주국가의 염원을 담은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인 홍범 14조가 제정되고 김홍집 윤치호 등의 친일 개화파 내각은 양력의 사용과 군제를 변경하고 1895년엔 선비들의 극심한 저항을 불러 온 단발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 경부철로 공사 장면     © 런던타임즈

▲ 독립문     © 런던타임즈
 
독립협회가 결성되어 독립신문이 발간되고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 딴 서재필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독일공사관의 스위스 기사가 설계한 독립문이1896년에 세워졌다.

철도가 건설되어 1899년 경인선 개통에 이어 경부선이 기공되고 1904년에 완공되기에 이른다. 

이는 가히 민족 반만년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빅뱅 이었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에는 필연적으로 극심한 저항이 따른다. 전통과 자존심이 강한 사회일수록 그 강도가 높은 법이다. 
 

▲ 이런 양반들에게 단발령은 곧 사형선고였다     ©런던타임즈
 
 
▲ 뚱보공 이채순     © 런던타임즈
▲ 민비인척 민영관     © 런던타임즈
고종 임금이 백성들에게 먼저 본을 보이고자 서양식 이발을 했으나 유인석등으로 대표되는 유교식 독립주의인 위정척사론 자들이 의병을 일으키며 저항했고 아관파천시에 김홍집은 성난 백성들에 의해 피살 되었다.
 
김홍집 내각의 붕괴로 조선은 급격히 러시아에 기울며 친러파가 득세하게 되고 이어서 1897년에 대한제국이 선포된다. 

갈 길을 놓고 대립했던 그 때 그 사람 잘잘못을 오늘의 시각으로 평가 할 수는 없다. 그 들 모두 자주꽃이 피는 독립섬을 찾아 칠흑의 거친 밤바다에서 방향타를 돌렸던 일등 항해사 들이었다.
 
각자 다른 나침반을 따랐을 뿐 일엽편주 조선이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때 다이묘와 사무라이 계급들의 저항이 심했으며 두 차례의 내전을 겪었다.
처음의 내전은 메이지 유신 첫해인 1867~1868년 겨울 기간에 개화파와 반대파가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여 개화파가 승리 했다
 
1877년엔 소총과 신무기로 무장한 싸쓰마 가문이 천황에 대항하여 일으켰던 반란이 발생 했다
짧은 전투에서 동원 된 병사들 1/3 이 죽거나 다친 극렬한 공방전 끝에 진압되어 천황의 왕권은 더욱 공고해 졌고 평화를 되 찾은 일본은 순풍에 돛을 달고 서양식개화를 이룰 수 있었다


▲ 이또 히로부미     ©런던타임즈
이러한 변화는 쵸시우 가문의 이또 히로부미에 의해서 주도 되었고 후일 그는 일본 총리가 되며 안중근의사에 의해 피격 된다

외적을 물리치고 승전의 잔에 취했던 잠에서 깨어 난 조선팔도 위에 아침 해가 떠 오르며 희미한 여명이 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잔뜩 흐려있는 먹구름 하늘은 당장이라도 동녘산에 떠오르는 해를 삼켜 버릴 듯이 보였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닿기 위해 수평선 위에 나타난 섬을 향해 편주(片舟)는 사력을 다해 노를 저어야만 했다

                                                                              <김지호 런던타임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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