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 이건희 - 이맹희

삼성, 미행사건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
서울의소리 | 입력 : 2012/04/20 [03:13]



유산문제와 미행 문제를 둘러싸고 소송을 벌이고 있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CJ그룹 이맹희 전 회장이 극한 감정싸움까지 벌이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제는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씨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7일 출근길에 “고소한 사람들이 수준 이하의 자연인이니까 내가 섭섭하다느니 그런 상대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어 “자기네들이 고소를 하면 (나도) 끝까지 고소를 하고,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갈 것”이라면서 “지금 생각 같아서는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형 이맹희 씨를 ‘수준 이하의 자연인’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발언 수위가 높아서 삼성그룹 홍보실이 이 부분은 쓰지 말아달라고 기자들에게 요구했으며 기자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기자들의 입을 통해 이 발언이 CJ 측에 전해졌으며 CJ 이재현 회장도 크게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이로써 한 때 두 회사가 극적으로 화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흘러나왔지만 더는 돌아설 수 없는 극한의 대립상황까지 가게 됐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이건희 회장은 통상적으로 일주일에 2번 내지 3번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로 출근한다. 7시 이전에 롤스로이스 팬텀이나 벤츠 마이바흐를 타고 본관 지하에서 내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무실로 올라간다.

혹시라도 이 회장이 본관 로비를 통해 출근을 하는 날이면 삼성그룹 출입기자들이 대기해 있다가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진다. 통상적으로 이 회장은 기자들과 가볍게 인사하고 집무실로 들어갔지만 이날은 달랐다. 이 회장은 기자들을 지나쳐 가다가 소송 문제를 묻는 질문을 듣고 갑자기 뒤를 돌아 작심한 듯 발언을 쏟아냈다.

이 회장은 “고소한 사람들이 수준 이하의 자연인이니까 내가 섭섭하다느니 그런 상대가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자기네들이 고소를 하면 (나도) 끝까지 고소를 하고,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갈 것”이라면서 “지금 생각 같아서는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회장은 “(이병철) 선대회장 때 벌써 다 분재(재산 분배)가 됐고 각자 다 돈들을 갖고 있다. CJ도 가지고 있는데 삼성이 너무 크다 보니까 욕심이 좀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 말을 마치고 곧바로 집무실로 올라갔다. 지난 2월 이 회장의 큰형인 이맹희 씨가 삼성생명 주식 등 7,660억원대 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한 후 이 회장이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심 발언 왜?

이 회장의 이날 발언은 돌발적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이 회장의 가감 없는 속내를 볼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최근 일부 형제들이 상속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한데 대해 섭섭한 것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섭섭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다만 이번 소송이 이미 끝난 상속 문제를 재 거론한다는 점과, 이 회장이 지난 25년간 성장시켜온 삼성의 성장과실을 ‘자연인’들이 탐을 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이 회장은 이번 소송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강하다. 일단 소송을 제기해서 뭔가를 얻어내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렸다고 이 회장은 판단하고 있다.

이 회장이 형제들에게 섭섭하지는 않다고 한 점이나, 구체적으로 CJ를 거론하며 다 나눴다고 말한 점에서 재산 분배 과정에서 CJ 몫으로도 분배가 됐음을 시사하는 한편, 이번 소송을 주도한 이맹희씨의 아들인 이재현 회장에도 암묵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이건희 회장 측과 이맹희씨 측은 각각 소송 대리인을 두고, 소송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양측이 물밑 협상을 통해 타협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대두됐으나 이 회장의 이날 발언으로 양측간 타협의 여지는 대폭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선대 회장 작고 당시 재산 분할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이건희 회장이 직접 이미 재산의 분할은 과거에 완료됐다고 언급해, 최근 소송 과정에서 이미 같은 언급을 한 장녀인 이인희 고문이나 차남인 고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의 미망인들과 뜻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이번 소송은 타협의 여지보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까지 가는 지루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이러한 발언을 전해들은 CJ측도 불쾌하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대해 CJ그룹 측 은 “아버지를 돈만 욕심내는 수준 이하의 사람으로 폄하하는데 기분 나쁘지 않을 아들(이재현 회장)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삼성 직원이 이재현 회장을 미행한 사건에 대해 해명이나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넜나

CJ는 미행사건이 삼성그룹 차원에서 꾸며진 일이라고 보고 있다. 반대로 삼성은 이맹희씨의 소송 배후에 CJ그룹이 있다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이맹희씨가 지난 2월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CJ 계열사 법무팀장이 맹희씨의 소송 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와 맹희씨가 체류 중인 중국을 방문했다는 것이 근거다.

CJ 내부적으로는 ‘소송을 낸 형제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재계와 법조계에선 최소 1~2명의 형제가 추가로 소송전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선 고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의 유족들이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새한그룹이 망하고 몇년 전 이창희 회장의 아들이 자살했을 때도 이건희 회장 일가가 전혀 찾아보지 않을 정도였고, 이창희 회장의 유족들은 현재 생활이 어렵다. 소송에 나설 이유가 충분하다”고 전했다. 이창희 전 회장의 차남 이재찬씨는 사업 실패 뒤 생활고에 시달리다 2010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도 소송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범삼성가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명희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동생으로 고 이병철 회장의 넷째 딸이다.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상속권 소송에 동참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솔그룹은 삼성과 척을 지고는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울 텐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병철 회장의 3녀로 이건희 회장의 셋째 누나인 이순희씨 역시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이씨의 남편은 김규 제일기획 상임고문이다. 더구나 이씨의 장남인 김상용씨는 삼성전자에 휴대폰 액세서리 등을 납품하다 현재는 삼성전자의 자회사로 갤럭시 스마트폰 등의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애니모드의 대표로 있다.

소송 결과에 따라 삼성그룹에서 이건희 회장의 입지는 더 위태로울 수 있게 됐다. 이맹희·숙희씨가 승소해 차명주식을 재분할할 경우, 이숙희씨는 삼성생명 지분 2.29%를 갖게 된다. 이건희 회장과 삼성 계열사는 14.3%, 이맹희씨와 씨제이 계열사는 13.98%, 이명희 회장과 신세계 계열사는 13.36%로 변경되는 터에, 이숙희씨가 이맹희씨에 지분을 보태면 16.27%로 가장 많아진다.

이맹희씨 등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화우는 이건희 회장 명의로 실명 전환된 삼성전자 주식 225만7923주와 에버랜드 명의로 전환된 삼성생명 주식 3477만6000주에 대한 증거신청을 낸 상태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 측 변호인단은 “차명 재산은 선대 회장의 유지에 따라 공동상속인들이 협의해 이 회장 소유가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조계에서는 소송전이 최소 1년에서 길게는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삼성, 미행사건에 대해서는 모르쇠

한편, 삼성그룹 직원이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미행했다는 의혹이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지만, 삼성 측은 여전히 혐의사실을 부인하며 만약 문제가 있더라도 계열사 차원에서 대응할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수사결과를 더 지켜보겠다는 것이지만, 미행의혹을 인정할 경우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끝까지 그룹 수뇌부와의 연관성을 부인하며 선긋기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이미 실체가 드러난 사건을 계속 부인하면 최근 거듭된 악재로 이미 타격을 입은 삼성의 이미지가 더 크게 추락할 수 있다고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재현 회장을 미행한 혐의로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감사팀 직원 5명을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15일부터 21일까지 대포폰과 렌터카를 사용해2인 1조로 이 회장의 이동 동선을 따라다니며 미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포폰중 1대는 항상 삼성 서초본사 근처에서 사용된 것으로 밝혀져 사건 진행상황을 보고받은 ‘윗선’의 존재도 간접적으로 밝혀졌다.

결국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씨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7천억원대의 상속분할 소송을 제기하고 거액의 인지대를 납부한 직후 미행이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삼성 측이 소송의 배후로 CJ 측을 의심하고 조직적으로 뒤를 밟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당초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고 견해를 밝히겠다던 삼성은 수사결과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는 미행의혹을 증명할 길이 정황증거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해, 삼성으로서는 끝까지 미행 의도가 없다는 식으로 부인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만약의 경우 혐의를 인정하더라도 후폭풍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룹과의 연관성 차단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 일부에서는 이미 실체가 드러난 혐의를 계속 부인하는 것은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계열사들의 담합행위와 삼성전자의 당국조사 방해 등으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삼성의 해명이 거짓으로 판명 나면 후폭풍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본지는 최근 이십여년 전 이맹희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맹희 씨가 그룹 황태자 자리에서 물러난 후 수많은 고생을 했다는 내용을 다시 한 번 보도한 적이 있다. 만약 삼성이 이맹희 씨와의 소송 그리고 미행 사건과 관련해 계속적으로 대립과 부인으로 일관한다면 반인륜적이라는 비판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미주한인신문, 선데이 저널 : http://www.sundayjournalusa.com/



원본 기사 보기:서울의소리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