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이야기, 타이타닉

김지호 | 입력 : 2012/05/01 [15:00]
세월이 흘러도 식을 줄 모르는 세기의 화제. 서방 언론들은 20세기에서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최대의 사건으로서 케네디의 암살과 타이타닉의 침몰을 꼽는데 별로 이견이 없는 듯 하다. 지난 4월 15일은 영국의 초호화 유람선 타이타닉이 빙산과 충돌한 후 북대서양의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진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이 사고는 총 탑승인원 2,206명 중 1500명 이상이 희생된 초대형 참사였다.  


 
지난 달에는 영국과 미국, 캐나다 등의 관련 지역들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열렸다. 영국에서는 희생자들의 후손 50여명을 포함한 1,309명이 엠에스 발모럴(MS Balmoral)호를 타고 타이타닉의 항해루트를 따라 기념항해를 했다. 타이타닉과 같이 영국의 사우스햄톤(Southampton)항을 출발한 후 침몰해상에서 사고가 일어났던 시간에 선상 추모식을 갖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옆에서는 뉴욕에서 출발한 '아자마라 저니'호도 도착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사고해역에서 서북방 800Km에 위치한 캐나다의 핼리팩스에서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교회 행사가 열렸다. 구조선들이 수거한 150구의 시신이 묻혀 있는 이곳에는 최근 추모 100주년 공원이 새로 조성됐다. 타이타닉을 건조했던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출항지인 사우스햄톤 등에서도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행사가 열렸다. 미국, 홍콩, 싱가포르 등 세계 각지에서도 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면서 추모열풍이 이어졌다. 

식지 않는 관심의 배경

이렇게 한세기 전의 사건에 대해 오늘날까지도 식지 않은 뜨거운 관심의 배경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타이타닉의 잔해를 탐사하고 있는 미국의 제임스 델가도 박사는 “사라질 수 없는 영원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타이타닉을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밀랍으로 붙인 날개로 태양에 너무 접근해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졌다는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에 비유했다. 실제로 당시 세계최대인 4만6천 톤의 타이타닉은 사실상 침몰할 수 없는 배라고 희자 되었으나, 뉴욕을 향해 처녀항해 중 단 5일만에 침몰함으로써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자연의 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인간의 자만이 초래한 대재앙이었던 것이다. 여러 음모론들의 배경이 되는 미스터리한 불운의 연속, 빙산 충돌 후 침몰까지 160분 동안 희생자들이 보여준 슬프고도 감동적인 장면들, 배와 운명을 같이한 스미스 선장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 등, 타이타닉은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은 간직하고 있다.   

타이타닉은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스햄톤 항을 출발해서 프랑스의 세르부르와 아일랜드의 퀸즈타운에 기항한 후, 승객과 승무원 2,206명을 태우고 뉴욕을 향해 처녀항해를 시작했다. 출항 당시 관측용 망원경 보관함의 열쇠를 인계 받지 못해 육안으로만 관측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결국 후일 빙산을 미리 발견하지 못한 치명적인 원인이 되었다. 타이타닉은 출항 때부터 무선통신을 통해 빙산이 떠다닌다는 경고를 받았고, 사고가 발생한 14일에도 빙산 경고를 6통이나 받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고지역을 22.5노트의 전속력으로 항해했다. 특히 북방 30키로 인근에서 빙산들에 둘러싸여 엔진을 끄고 조류를 타고 있던 캘리포니안호로부터 빙산 경고를 받았으나, 우편 수발신 업무에 바쁘던 타이타닉의 통신사는 “바쁜데 시끄럽다”며 무시했다. 이날 밤 11시 40분에 갑판에서 쌍안경도 없이 육안으로 견시를 서던 선원이 전방 450미터의 빙산을 발견했고 조타수는 왼쪽으로 회전하기 위해 키를 최대한 돌렸으나 배의 우현이 빙산과 충돌했다. 충돌로 뚫린 구멍으로 유입되는 해수를 막기 위해 격벽들을 내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제어에 실패한 타이타닉은 12시 45분 무선으로 조난신호를 발신했지만 인근에 있던 캘리포니안호의 통신사는 타이타닉의 통신사로부터 면박을 받은 후, 화가 나서 잠이 들어 버린 후였다. 이 후 1시 10분과 1시 50분에 위급을 알리는 조명탄을 발사 했고 캘리포니안호에서 포착했지만, 조명탄의 색깔이 흰색이라는 보고에 선장은 선사 소속의 배들끼리의 신호로 여기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2시 20분에 타이타닉은 구명보트에 타지 못한 1,503명과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 앉았다. 93키로 떨어진 곳에 있었던 카파티아호가 무선신호를 받고 평상속도 14노트를 초과하여 전속력으로 달려 4시에 도착했고, 구명보트에 타고 있던 703명을 구조했다. 

최후의 순간들

타이타닉의 스미스 선장은 빙산과 충돌한 11시 40분에는 비번이라 잠들어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후,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함교에서 사태를 지휘하면서 침몰하는 배와 함께 운명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은 선장이 지켜야 할 덕목의 표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는 부족한 구명보트에 어린이와 여성을 먼저 배려하면서 “영국인답게 행동하라”고 주문하면서, 극심한 혼란상황에서도 질서를 효과적으로 유지시켰다. 그러나 여러 차례 빙산경고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운행을 한 점과, 가뜩이나 부족했던 구명보트에 정원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703명만 태운 채 서둘러 보냄으로써 희생자를 늘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206명이 승선한 타이타닉에 불과 1,178명만이 탈 수 있는 16척의 구명보트 밖에 없었는데, 이는 당시의 영국 운송 규정에 위반은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큰 배에 남아 구조를 기다리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보트를 타지 않으려 해서 어려움도 있었다.

한편 타이타닉에는 이 배의 소유회사인 ‘화이트 스타 라인’의 브루스 이스메이 사장이 타고 있었는데, 그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에서 세 번째 보트에 뛰어들었다고 평생 동안 비겁자로 낙인에 시달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여러 개의 구명보트를 내리는 일과 사람들의 승선을 도와줬고, 구명보트를 내렸을 때 주변에 다른 탈 사람이 없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타이타닉 사고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정부의 광범위한 사후조사 결과를 놓고 양국이 서로 극명한 시각차이를 보였다. 미국은 영국이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고 의심했고, 영국은 특히 이스메이 사장을 비롯한 영국 선원들에 대한 미국의 조사결과가 적대적이라고 반발했다. 영국 측 조사책임자 로드 머시경은 “이스메이가 만일 보트에 타지 않았다면, 단순히 희생자 명단에 그의 이름을 하나 더 올리는 것에 불과했다”고 결론지었다.   

그에 비해, 용감하게 죽음을 맞은 이들도 있다. 철강계 백만장자 벤자민 구겐하임은 애인을 보트에 태운 후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며 턱시도로 갈아입고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최후를 맞았다. 뉴욕의 메이시백화점 오너 이시돌 스트라우스의 보트승선이 거절되자, 그의 아내 이다는 승선제안을 거부하고 남편과 함께 죽음을 택했다. 탑승객 중에 가장 부자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소유주인 제이콥 애스토도 아내를 보트에 태운 후 갑판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왈레스 하틀리와 그의 밴드단원들은 침몰 10분전까지 공포에 질린 승객들을 위해 성가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을 연주한 후 서로에게 행운을 빌었으나 모두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토머스 바일스 사제는 보트 승선을 사양하고 갑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곁에 남아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최후의 미사를 드리면서 함께 죽어 갔다.

21세기 타이타닉의 가치 

비극적인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인간들의 의식세계와 문명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자만심에 빠졌던 사람들에게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이듬해 런던에서는 SOLAS(해상에서의 인명안전에 관한 국제회의)가 최초로 열렸고, 이 후 모든 선박에 대해 탑승인원만큼의 구명정 비치와 조난시 인접 선박의 구조를 의무화하는 국제협약을 이끌어 냈다. 또한 해상에서 무선 통신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타이타닉이 보냈던 무선 구조 요청이 SOS 무선 통신의 최초사용 사례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1912년 세계최초로 제정하여 무분별한 무선의 사용을 규제하고 해상에서 무선사용을 의무화 하는 ‘라디오 법’을 제정했다. 또한 철강, 조선과 항해술의 발달에도 기여하는 계기가 됐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21세기에서 타이타닉의 진정한 가치는 이야기들이 쏟아낼 풍부한 테마가 아닐까?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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