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일방적인 식약청의 결정에 의료계 강력 반발
런던타임즈 | 입력 : 2012/06/15 [09:00]
식약청의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발표에 대해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국민의 건강을 증진해야 할 정부 정책이 오히려 최악의 결정으로 퇴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식약청이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근거로 제시한 ‘장기간 또는 정기적으로 복용하지 않고, 1회 복용하는 의약품이기 때문에 부작용 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대전제 하에 내려진 결정이라는 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며 반박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반대성명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응급피임약의 복용실태, 응급피임약은 이미 사후피임약이나 마찬가지다.

식약청은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근거로 ‘장기간 또는 정기적으로 복용하지 않고 1회 복용하는 의약품이기 때문에 부작용 걱정이 없고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20대 여성들에게 응급피임약은 이미 응급할 때 복용하는 약이 아니라 성관계 후 복용하는 사후피임약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와이즈우먼의 피임생리이야기’(http://www.wisewoman.co.kr/piim365’)란 사이트를 통해 피임에 대한 무료 상담활동을 3년 이상 꾸준히 벌여온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상담의들은 ‘20대 여성들의 응급 피임약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이미 우려할 만한 수준’이며,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응급피임약을 매번 처방 받기 번거롭다며 여러 회분을 한꺼번에 처방해 달라는 환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2011년 한국 여성의 일반 피임약 복용률이 2.8%인데 반해, 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응급피임약 복용률은 이미 5.6%로 두 배에 달하였으며, 사후피임약이란 용어가 대중매체나 인터넷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만 봐도 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편의성과 접근성만 강조해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응급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면, 응급피임약이 계획적인 사전피임 없는 성관계 후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즐겨 사용하는 사후 피임약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된다.

일반 피임약의 10~15배에 달하는 고용량 호르몬제재인 응급피임약에 대해 ‘부정기적으로, 응급 시에만 사용’하지 않고, 장기간 반복적으로 복용함으로써 일어나는 부작용에 대해 식약청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식약청에게 묻고 싶다.

일각에서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에 대해 의사 약사간의 이익싸움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으나, 응급피임약은 지금처럼 의사 처방 하에 복약할 때에만 반복적 복용을 줄이고 개인상담을 통해 개개인에게 맞는 사전 피임계획 수립과 실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식약청이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둘째, 응급피임약의 효과에 대한 과신, 제대로 복용해도 100명 중 15명 임신.

응급피임약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으면, 원하지 않는 임신과 낙태를 줄일 수 있을까? 아니다. 그 이유는 응급피임약의 피임효과가 85%로 사전피임약의 92~99%에 비해 충분히 신뢰할 만큼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응급피임약의 평균 피임률 85%는 75%에 해당하는 콘돔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며, 미레나나 루프 등 여성용 피임시스템의 평균 99%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정확한 복약 지도에 따라 응급피임약을 먹더라도 100명 중 15명 꼴로 임신이 된다는 말이며, 다른 계획적인 피임방법 대신 응급피임약을 사후 피임약처럼 대중적으로 이용하게 된다면 오히려 원하지 않는 임신은 늘어날 수도 있다.

또한 응급피임약은 일반피임약의 10~15배에 해당하는 고용량 호르몬 제재인 만큼 충분한 복약지도가 필요하다. 응급피임약 복용 및 피임 상담은 여성의 매우 사적인 문제로서 노출된 공간인 ‘약국’이 아니라 의사와 1대 1 상담이 가능한 ‘병원’이 더 적합하다. 응급피임약 처방 시 성생활 시기, 배란일 여부, 금기증이 있는지, 임신상태는 아닌지 등을 물어보고 응급피임법사용이 적합한지, 환자에 대한 선별과 이에 따른 진료가 필요하고, 약의 부작용, 주의사항, 응급시 대처방법 등을 지도해야 하며, 평소 계획을 세워 실천할 수 있는 사전피임 상담 등도 반드시 필요하다.

모두에게 노출된 공간인 약국에서 응급피임약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고 상담이 잘 이루어 질 수 있을지 또한 의문이다. 실제로 응급피임약을 반복적으로 복용할 경우 상당량의 출혈이 생길 수 있으며, 이를 생리혈로 오인해 임신 초기인 줄 모르고 초기 태아에 해가 되는 생활습관을 교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응급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으면,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낙태율이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하며, 여성과 초기 태아에게 심각한 건강상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셋째. 해로운 응급피임약! 선진국과 피임현실 달라도 무조건 따라가나?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응급피임약이 선진국 사례에서도 부작용 면에서 안전하다는 식약청의 주장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여성들의 피임약 복용률로 여성들의 사전피임 실천율을 짐작해 볼 때, 선진국들은 사전피임 실천률이 많게는 우리나라보다 20~30배가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응급피임약이 응급 시에만 복용되었을 것이므로 부작용 문제가 크지 않았다면, 피임약 복용률이 2.8%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는 반대로 부작용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일반피임약의 10~15배 용량에 달하는 고용량 호르몬 제재인 응급피임약 복용 후 평균적으로 31%의 여성들이 대량출혈의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으며, 복용 후 2시간 이내 구토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약이 흡수되지 않는다면 응급피임약 복용이 무용지물이 된다. 또한 응급피임약 복용 후 자궁외임신이 보고되기도 하는데, 나팔관 내 수정란 착상이 될 경우 나팔관 절제 등 생식기의 영구손상을 입을 수 있는 부작용이므로 소수의 부작용이라고 해서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성관계 연령은 빨라지고, 결혼 및 임신 연령은 늦어지는 현 추세를 볼 때, 10대나 20대 초반 여성들이 고용량 호르몬 제재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이 임신이나 출산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신체적으로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10대 청소년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하므로, 10대 청소년의 응급피임약 복용에는 안전장치를 달면 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청소년 음주를 법으로 금지해도 주민등록증 등을 위조하거나 대여해 음주하는 청소년들이 많은 것처럼, 응급피임약이 일단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되면 10대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응급피임약 오남용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선진국 사례를 들어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피임률이 높은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등에서조차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후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낙태율은 줄어들지 않는 반면, 응급피임약 판매와 성병만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례를 외면해선 안 된다.

넷째, 처방없는 응급피임약, 계획적인 피임저하, 성병과 불임 증가 등 기타 부작용도 대재앙!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응급피임약을 제약없이 복용할 수 있을 때, 콘돔, 사전피임약, 피임 시술 등 현재도 미미한 사전피임 실천율이 현저히 떨어질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는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불법낙태를 오히려 늘릴 뿐 아니라, 성감염성 질병(성병)이 전파될 위험도 더 증가함을 의미한다. 콘돔 없는 성관계를 통해 성병이 전파되면서 여성의 골반염이나 생식기 손상으로 악화되고,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불법낙태 등으로 인한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이는 여성들이 원하는 시기에 임신을 하기 어려운 불임 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응급피임약 복용으로 인한 2~3차 부작용이 양산되는 것이다.

또한 성폭력 등 원하지 않는 성관계 후에는 현재도 병원 응급실 등에서 응급피임약 복용 및 필요한 조치를 받을 수 있는데, 응급피임약을 누구나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게 된다면, 성폭력 남성이 피해여성에게 강제로 응급피임약을 복용시키는 불상사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은 즉각 폐기해야 하며, 응급피임약은 응급한 때만 복용하는 약으로써 의사 처방 및 복약지도 하에 복용하는 기존 정책으로 회귀되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를 통해 정확한 복약지도뿐 아니라, 개개인의 피임상담과 피임교육을 통해 계획적인 사전 피임을 실천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은 피임약의 복용률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고 피임 및 성에 대한 바른 인식이 정착된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어렸을 때부터 계획적인 피임에 대해 교육하고 실천하는 실질적인 성교육 문화 정착과 한국 여성의 건강증진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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