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겨울섬 대한제국

대한제국, 그 격동의 순간들
김지호 | 입력 : 2008/08/21 [12:52]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다가올 때 인간들은 그 시기라도 밀고 당기기를 시도해 보지만 그 조차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을 숙명(宿命)이라고 한다면 숙명은 실로 야속한 것이다.

일곱 살도 채 안된 제국의 앞마당 제물포에서 거인들이 혈투를 시작했지만 나이 어린 제국의 힘으로는 그 들을 말릴 수도 쫓아 낼 수도 없었다. 제국의 야속한 단명운이 숙명처럼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협상과 힘겨루기로 분주 했던 1903년이 저물자 러일 양국간의 충돌은 초 읽기에 들어갔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만주 철도를 통해 병력을 극동으로 집결시키고 있었고 일본도 해상권 확보를 위해 서방으로부터 신형 군함들을 도입하며 숙명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   제네항에서 일본으로 출항전 무기를 장착하는 카수가 함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이태리 제네바에서 건조된 7,700톤 급의 대형순양함인 일함 니신과 카수가는 목적지인 일본을 향해 전속력으로 항해하고 있었고 싱가포르해역을 벗어나던 1904년 2월 9일 제물포항에서 20세기의 지각변동을 부르는 러일전쟁의 첫 포성이 울렸다.   

일본의 동맹국인 영국이 제공해 준 함장과 승무원들의 인솔아래 두 전함은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항해에 필요한 서류도 없이 1904년 1월 10일 밤에 야반도주하듯 서둘러 제네바항을 떠났다. 이를 알아 챈 러시아는 이태리 당국에 압력을 행사하여 배를 되돌리려 하였으나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두 전함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 하기 직전 대서양의 길목을 지키던 러시아함대와 마주치며 나포의 위기를 맞았으나 신형 전함의 위용에 놀란 러시아 함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달아나는 우여곡절 끝에 제물포 해전 발발 일주일 후에 일본 요코스카항에 도착 할 수 있었다. 행운의 여신이 사무라이들의 품에 안겨버린 것이다.


▲   제물포 해전시의 제물포 항구 전경  ©런던타임즈 londontimes
 
대한제국의 제물포항은 서방과의 교역을 위해 개방된 국제중립 항으로서 극동에 진주하는 러시아를 비롯한 영국 미국 불란서 독일 등 서구열강 함대들의 주요한 미팅 장소이기도 하였다. 

제물포항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함정 버략호와 카라에츠호의 제거를 목적으로 1904년 2월 7일 우류제독의 지휘아래 아사마호를 중심으로 한 일본함대가 제물포항으로 진격하였다.


▲   서방 함정 승무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죽음의 결전을 위해 출항하는 버략호와 카라예츠호  © 런던타임즈

 
▲  일본 우류 제독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러시아 루디네프 함장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9일 정오까지 항구를 떠나거나 항복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우류제독의 최후통첩을 받은 버략호의 루디네프 함장은 전 승무원들을 모아 놓고 최후까지 싸울 것을 명령하고 출항하였으나 신형 무기가 장착된 일함들의 막강한 화력 앞에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중립 항에서의 선제 공격은 국제교전 수칙 위반으로서 영국의 탈봇호의 베일리 함장을 비롯한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서방국 함장들이 항의서한을 전달하였으나 막무가내인 우류제독에겐 소귀에 경 읽기였다. 항구를 빠져 나갈 때가지 호위를 부탁한 러시아함장의 호소는 서방국 함장들에게 끝내 외면을 당했다.   

결국 비운의 버략호와 카라에츠호는 서방 함대 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일함대가 뿜어대는 엄청난 포화속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았고 코리아를 뜻하는 러시아어인 카라에츠의 침몰은 대한제국과 러시아의 밀월시대 종말을 예고 한다. 제물포를 장악한 일본은 지상군을 서울로 진주시키며 주요시설을 장악하였고 부산과 목포에도 상륙한다. 

▲   동정과 격려를 받고 있는 일본  <시카고레코드헤럴드> 
 

신흥 강국 일본을 골칫거리 북극곰에 맞서는 기특한 다윗으로 여기고 내심 응원하던 서구 열강들 사이에서는 일본이 적절한 선전포고도 없이 중립 독립국에서 벌인 만행도 ‘걔들이 오죽했으면..’ 이라는 이상한 논리에 묻혀 버렸다.    



 


 
 
 패전한 러시아의 파블로프 대사가 제물포를 거쳐 불란서 함정을 타고 떠남으로써 제국과 러시아와의 밀월시대가 막을 내리고 한반도는 일본의 독무대가 되었다. 
 
떠나는 배에 오르며 흘린 대사부인의 눈물에 비치는 제국도 드러나는 슬픈 운명에 함께 울고 있었다.

▲  파블로프 러시아 대사와 눈물을 흘리며 떠난 대사부인 일행- 제물포항에서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러시아가 떠나간 빈자리에서 솟아 오르는 후지산 그림자에 가려진 대한제국은 외로운 겨울섬으로 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 김지호 런던타임즈 발행인 www.londontimes.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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