婦 令愛 나영( 소영( 미국이나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재영 한인들의 이민사를 돌아보기 위해 박여행사의 한인신문: 영국 생활 31년 이면 이곳의 역사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는데요. 우선 간략하게나마 개인 이민사를 정리해주시죠. 영국에 도착하던 당시만 해도 대사관과 코트라, 그리고 외환은행 정도가 주재원 전부였습니다. 한인들이 적다 보니 상대적으로 결속력이 강했지요. 모든 행사에 거의 모일 정도였으니까요. 저보다 먼저오신 분으로는 김장진 선생이 72년도에 독일에서 영국으로 오시고 그 뒤로 동생분인 한인신문: 그 동안 한인사회에 깊게 관여해오신 것으로 압니다. 한인사회의 흐름과 관련해서 듣고 싶습니다. 저는 79년 10월에 출범한 교민회 총무를 10년 넘게 맡아오다가 90년 한인회와 통합해서도 초대 총무를 맡았습니다. 한인신문: 이민생활 30년이 되면 한인회장에 출마하신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이번 한인회장에 출마하실 의향은? 한인신문: 일부 재영한인들 가운데 한인회 무용론이 대두되고는 합니다만…지난 2006년도에 한인회 부회장직을 맡았었는데 2007년도에 그만 둔 이유라도 있습니까? 개인 사업에 바쁘다 보니 한인회에 제대로 봉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한인회가 욕을 먹는 것에 일말의 책임이 없다고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현 한인회는 이사들이 할 일이 없어요. 한인회가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함에도 회장이 그렇게 안 하겠다는데 별 수 있습니까? 한인회의 무용론이 대두되는 것 또한 한인회가 먼저가 아닌 한인회장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한인사회에 봉사할 자세가 아닌 개인을 드러내기 시작한 뒤라고 생각합니다. 한인신문: 한인회가 어떻게 운영되는 게 옳다고 보십니까? 한인신문: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정리 부탁합니다. 또 올 해부터는 코리안 페스티벌이 광복절 기념식과 분리돼 치러졌는데 광복절 기념식을 왜 한인회가 주최하게 됐는지 그 과정이 있습니다. 김장진 한국 문화원장께서 혼자 열어오던 코리안 페스티벌을 모든 한인들이 모여 한인 한마당을 만들려는 취지로 당시 오극동 한인회장 재임 시 통합 했습니다. 그래서 대사관에서 해오던 광복절 기념식을 한인회로 이관하게 된 것 입니다. 올해처럼 고작 2-30명 모여 광복절을 기념하자고 대사관에서 이관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이사들 몇 명 모아놓고 정관을 바꿀게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토의되고 여론을 들어 총회를 통해 변경해야 잡음이 없었을 것 입니다. 50여 년의 이민사를 가진 재영 한인사회에 이제 한인1.5세대와 2세들이 나설 때 입니다. 한인회장이 나설게 아니라 실제 전문화된 실무종사자들이 봉사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지금처럼 운영되다가는 그나마 한인회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말 것 입니다. 한인회보가 이런 것을 써야 합니다. ‘비 오는 날 거행된 한인 페스티벌이 성공했다.’라고 쓰는 것은 누가 봐도 억지입니다. 한인회는 수익을 남기기 위한 단체가 아닙니다. 돈을 벌기 위한 행사가 아닌, 기업 체든 개인이든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명분이 있는 행사가 되어야 합니다. 교육기금만 해도 그래요. 정부에서 지원한 돈 조차 집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이 만약 기업체에서 일어났다면 벌써 잘렸을 것 입니다. 받은 돈 조차 쓸 줄 모르면서 그 기금을 가지고 온통 시끄럽게만 굴었지…결국 이 상황은 내외적으로 영국 한인사회의 창피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한인회의 갈등은 지난 5년으로 족합니다. 한인회장에 출마하는 사람은 한인회를 멋지게 꾸려나가려는 태도로는 안됩니다. 머슴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존중 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세대간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영국에 살아야만 하는 자식들을 생각한다면 가볍게 처신해서는 안될 것 입니다. 30년 뒤 재영 한인사회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2세들이 자리를 잡고 살아갈 이곳의 비전을 보여주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한인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인사회에 20년 이상 된 분으로 한인사회를 한인회장 자리보다 사랑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나서야 합니다. 한인신문: 좀 가벼운 주제로 들어갈까 합니다. 영국에 사는 것이 어떻습니까? 가장 힘들었던 때 그리고 가장 기뻤던 순간은? 그리고 궁합이 맞는 제 아내 입니다. 예쁜 자식을 셋이나 나주었으니……특히 가장 기뻤던 순간은 제 막내를 46살에 낳았을 때 입니다. 지금 막내가 학교 여자 축구대표로 뛰고 있고 곧 태권도 검정띠도 딸 예정 입니다. 그 아이들이 살아야 할 영국 땅이기 때문에 저에게는 영국이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한인사회도 더욱 소중하고요. 가장 힘들었던 때는 모든 사업하는 사람들이 겪는 일이겠지만 91년도에 사업체 문을 닫았을 때 입니다. 사무실 임대비 1달치와 전화비 사용료 못 낸 것 빼고 1페니도 한국인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한인신문: 인터뷰를 정리할 때 항상 하는 질문입니다. 여행사를 운영하시니까 누구보다 많은 곳을 여행하셨을 텐데요. 영국 최고의 여행지를 꼽으라면? 한인신문: 장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최종 질문으로 다시 하겠습니다. 한인회장에 출마하실 의향은 대답을 피하셨는데요. <저작권자 ⓒ London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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