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민사의 산증인 박여행사 대표를 만나다

영국 이민사 30여년의 박종은 사장과 차 한잔
운영자 | 입력 : 2007/12/18 [05:55]
  
 

 박종은 박여행사 대표

1950년 8월 29일 부산 생

 

이혜숙 (55년)

令愛 박가영(79년 3월10일)

       나영(80년 12월 10일)

       소영(96년 10월31일)

 

 

미국이나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재영 한인들의 이민사를 돌아보기 위해 박여행사의 박종은 대표를 만났다. 박 대표는 지난 76년 1월 24일 영국에 도착하여 재영 한인사의 산 증인으로 불러지고 있다. 박 대표를 통해 지난 30여 년 간의 영국 정착기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모습을 그려보려 한다.

 

한인신문: 영국 생활 31년 이면 이곳의 역사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는데요. 우선 간략하게나마 개인 이민사를 정리해주시죠.

 

박종은: 영국에 도착하던 76년 당시만 해도 영국은 이민사회라기 보다는 유학생 중심으로 한인사회가 구성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 있던 76년 8월 15일 영국 현지 채용으로 대사관 공보관실에 근무하다가 79년도에 전 유럽에서 한국인 최초로 여행사를 런던에서 시작했습니다. 81년도에는 한국일보 런던지국을 열어 10년 넘게 운영했습니다.

영국에 도착하던 당시만 해도 대사관과 코트라, 그리고 외환은행 정도가 주재원 전부였습니다. 한인들이 적다 보니 상대적으로 결속력이 강했지요. 모든 행사에 거의 모일 정도였으니까요. 저보다 먼저오신 분으로는 김장진 선생이 72년도에 독일에서 영국으로 오시고 그 뒤로 동생분인 김용운 사장이 75년도에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인신문: 그 동안 한인사회에 깊게 관여해오신 것으로 압니다. 한인사회의 흐름과 관련해서 듣고 싶습니다.

 

 

박종은: 한인들이 늘어난 것은 88년 올림픽이 끝나고 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이후였습니다. 그 전까지 재영한인의 숫자는 유학생 포함 3,000명 정도였을까요? 숫자가 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인들끼리 갈등도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2,000년도를 기점으로 한인사회에 좋지 않은 사건들이 생겼다고 봅니다.

저는 79년 10월에 출범한 교민회 총무를 10년 넘게 맡아오다가 90년 한인회와 통합해서도 초대 총무를 맡았습니다.

 

한인신문: 이민생활 30년이 되면 한인회장에 출마하신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이번 한인회장에 출마하실 의향은?

 

박종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한인회의 존재 목적에 대해 짚어보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강대국이라면 굳이 한인회가 필요 없을 것 입니다. 아직 대한민국이 독자적 목소리를 낼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한인들은 뭉쳐야 합니다. 우리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한인들이 일치단결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인회라는 단체가 필요한 것 입니다.

 

한인신문: 일부 재영한인들 가운데 한인회 무용론이 대두되고는 합니다만…지난 2006년도에 한인회 부회장직을 맡았었는데 2007년도에 그만 둔 이유라도 있습니까?

 

박종은: 지난 5년 전 까지만 해도 한인회가 이렇게 욕을 먹은 적은 없었습니다. 2002년도 까지만 해도 한인회장은 추대형식으로 되었습니다. 물론 공탁금제도도 없었고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한인회장에 추대되면 몇 몇이 추대된 분을 설득해서 한인회장에 앉혔습니다. 한인회장은 순수한 봉사단체를 이끌어 가는 자리 입니다. 한인들의 머슴이 될 자세로 회장직을 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업적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혹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회장직을 수행하다 보니 욕을 먹게 되는 것 입니다. 저부터도 5,000파운드라는 돈을 내고 한인회장에 출마한다면 당연 본전생각 안 나겠습니까? 국회의원은 유급직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5,000파운드라는 돈을 내고서라도 출마할만하다 하겠으나 한인회장은 무급 직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시간에 돈까지 써가면서 회장에 된다는 것은 일반상식을 가진 자라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 입니다. 이해타산을 따지다 보면 저도 그 돈 투자해서 한인회장직을 수행하면 회장직을 이용하여 판매하는 비행기표 값으로도 이익이 되겠지요.

 

개인 사업에 바쁘다 보니 한인회에 제대로 봉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한인회가 욕을 먹는 것에 일말의 책임이 없다고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현 한인회는 이사들이 할 일이 없어요. 한인회가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함에도 회장이 그렇게 안 하겠다는데 별 수 있습니까? 한인회의 무용론이 대두되는 것 또한 한인회가 먼저가 아닌 한인회장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한인사회에 봉사할 자세가 아닌 개인을 드러내기 시작한 뒤라고 생각합니다.

 

한인신문: 한인회가 어떻게 운영되는 게 옳다고 보십니까?

 

박종은: 한인회는 책임을 져야 되는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유목민적 자세로 사업에 이용하려 한다거나 개인 영달을 위해 한번 해먹고 말겠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한인회를 맡아서는 안됩니다. 정주민이라 할 수 있는 오리지날 교민들이 한인회를 맡아왔다면 한인회가 이 지경은 되지 않았을 것 입니다. 일 좀 못한다는 소리는 들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한인들로부터 배척당하는 한인회는 되지 않았을 것 입니다.

 

한인신문: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정리 부탁합니다.

 

박종은: 어떤 단체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관이 필요합니다. 후세를 위한 기록으로도 당연하고요. 최근 들어 한인회 정관이 너무 쉽게 바뀌고 있는 것이 사실 입니다. 누가 한인회장이 되더라도 바꿔서는 안 되는 게 있습니다. 기존 운영방침이 그렇게 역작용이 없는 한 지속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송년잔치에 참석하는 것이 공짜 도시락을 먹기 위한 것은 아니잖습니까. 송년잔치에 참석하는 것이 단순히 정기총회가 목적은 아닐 것 입니다. 오랜만에 못 만나던 얼굴들과 그간 안부도 묻고 잘하면 선물도 타겠다, 아이들 재롱도 보겠다 등등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올 해부터는 코리안 페스티벌이 광복절 기념식과 분리돼 치러졌는데 광복절 기념식을 왜 한인회가 주최하게 됐는지 그 과정이 있습니다. 김장진 한국 문화원장께서 혼자 열어오던 코리안 페스티벌을 모든 한인들이 모여 한인 한마당을 만들려는 취지로 당시 오극동 한인회장 재임 시 통합 했습니다. 그래서 대사관에서 해오던 광복절 기념식을 한인회로 이관하게 된 것 입니다. 올해처럼 고작 2-30명 모여 광복절을 기념하자고 대사관에서 이관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이사들 몇 명 모아놓고 정관을 바꿀게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토의되고 여론을 들어 총회를 통해 변경해야 잡음이 없었을 것 입니다.

 

50여 년의 이민사를 가진 재영 한인사회에 이제 한인1.5세대와 2세들이 나설 때 입니다. 한인회장이 나설게 아니라 실제 전문화된 실무종사자들이 봉사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지금처럼 운영되다가는 그나마 한인회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말 것 입니다. 한인회보가 이런 것을 써야 합니다. ‘비 오는 날 거행된 한인 페스티벌이 성공했다.’라고 쓰는 것은 누가 봐도 억지입니다.

 

한인회는 수익을 남기기 위한 단체가 아닙니다. 돈을 벌기 위한 행사가 아닌, 기업 체든 개인이든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명분이 있는 행사가 되어야 합니다. 교육기금만 해도 그래요.

정부에서 지원한 돈 조차 집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이 만약 기업체에서 일어났다면 벌써 잘렸을 것 입니다. 받은 돈 조차 쓸 줄 모르면서 그 기금을 가지고 온통 시끄럽게만 굴었지…결국 이 상황은 내외적으로 영국 한인사회의 창피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한인회의 갈등은 지난 5년으로 족합니다. 한인회장에 출마하는 사람은 한인회를 멋지게 꾸려나가려는 태도로는 안됩니다. 머슴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존중 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세대간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영국에 살아야만 하는 자식들을 생각한다면 가볍게 처신해서는 안될 것 입니다. 30년 뒤 재영 한인사회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2세들이 자리를 잡고 살아갈 이곳의 비전을 보여주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한인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인사회에 20년 이상 된 분으로 한인사회를 한인회장 자리보다 사랑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나서야 합니다.

 

한인신문: 좀 가벼운 주제로 들어갈까 합니다. 영국에 사는 것이 어떻습니까? 가장 힘들었던 때 그리고 가장 기뻤던 순간은?

 

박종은: 언젠가 이브닝스텐다드와 소수민족 영국 생활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오르는군요. 궁합이 맞는 게 둘 있는데 우선 영국을 말씀 드리면 정신적으로 자유롭다고 할까요? 지난 30년 동안 경찰에게 불심검문 한번 당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몇 해 전 음주위반으로 걸려 3년 면허정지를 받을 때도 경찰이 제가 운전하던 차의 브레이크 등이 안 들어온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세웠다가 음주운전 사실을 알아서지 음주운전 측정을 하려고 일부러 세웠던 것은 아닙니다. 환갑이 내일 모레인데 백발이 성성한 채 찢어진 청바지에 아이스크림을 물고 다녀도 눈치 볼게 없습니다. 가난하게 살아도 삶이 좀 불편할 뿐이지 한국처럼 상대적 빈곤에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제 정도의 수입이라면 토.일요일 날 골프 칠 여유가 없었을 것 입니다.  앞으로 살기 어려워 질 것 같아요. 영국 정부가 돈 독이 올랐어요. 버스 타고 한 정거장만 가도 2파운드(4,000원)에 출퇴근 시 기차비가 12파운드면 말 다했지요. 시내 주차도 이젠 시내 거주자 아니면 힘들어졌어요.

 그리고 궁합이 맞는 제 아내 입니다. 예쁜 자식을 셋이나 나주었으니……특히 가장 기뻤던 순간은 제 막내를 46살에 낳았을 때 입니다. 지금 막내가 학교 여자 축구대표로 뛰고 있고 곧 태권도 검정띠도 딸 예정 입니다. 그 아이들이 살아야 할 영국 땅이기 때문에 저에게는 영국이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한인사회도 더욱 소중하고요.

가장 힘들었던 때는 모든 사업하는 사람들이 겪는 일이겠지만 91년도에 사업체 문을 닫았을 때 입니다. 사무실 임대비 1달치와 전화비 사용료 못 낸 것 빼고 1페니도 한국인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한인신문: 인터뷰를 정리할 때 항상 하는 질문입니다. 여행사를 운영하시니까 누구보다 많은 곳을 여행하셨을 텐데요.  영국 최고의 여행지를 꼽으라면?

 

박종은: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입니다. 풍경이 편안해요. 가서 봐야 아! 이런 곳이구나 할 겁니다.

 

한인신문: 장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최종 질문으로 다시 하겠습니다. 한인회장에 출마하실 의향은 대답을 피하셨는데요.

 

박종은 : 이번은 힘들 것 같습니다. 저 보다 좋은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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