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절규 - 안토니오 살리에리

차 한잔후의 클래식 산책 - 1
정암 | 입력 : 2009/03/21 [04:53]
 
▲  안토니오 살리에리  (antonio salieri)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신이여 ! 당신은 왜 모차르트에게만 천재성을 부여하시고 나 살리에리에게는 그토록 평범한 것만 주셨나이까? ”

이와 같이 신을 향하여 처절한 절규를 하는 모습의 살리에리 그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독살자로 묘사되었었다. 모차르트가 사망하였던 당시에도 빈 음악계에는 독살설이 파다했고 살리에리가 독살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 되었고 영화[아마데우스]는 단지 오늘날의 상업성 흥행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물론 이 영화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더욱 빛냈으며 살리에리는 단순한 기회주의자로 나타냈으나, 우리에게 잊혀졌던 작곡가인 살리에리를 일깨워주었으며 그의 음악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17-18세기 이탈리아의 많은 작곡가들은 조국을 떠나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였는데 살리에리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1750년 8월 18일 이탈리아 베로나 근교에서 태어나 베니스에서 공부하였다.
그리고 1766년 빈의 궁정 악장이며 작곡가였던 가스만(florian leopold gassmann)에게 소질을 인정받고 함께 빈으로 갔는데 살리에리의 스승이며 후원자였던 가스만은 당시 빈 음악계의 활동적인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살리에리의 음악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황제인 요셉2세에게 소개하였다.

1774년 1월 20일 가스만이 세상을 떠난 후 살리에리는 스승의 후임으로 궁정의 작곡가 겸 이탈리아 오페라의 지휘자가 되었는데 이 지위는 당시 매우 중요한 위치로 살리에리는 서서히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1784년 파리에서의 비극 오페라[레 다나이드]les danaides 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는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의 후원으로 이룩된 것으로 처음에는 글룩이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믿게 하였다가 후에 젊은 작곡가인 살리에리의 이름을 밝히고 그에게 영예를 돌렸다.

살리에리는 40여 곡의 무대를 위한 음악(희극, 비극, 희비극, 파스토럴: 17세기 프랑스에서 발달한 초기 오페라)을 비롯하여 종교음악, 기악곡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빈 음악계에서 살리에리의 위치는 하이든, 모차르트나 후에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 중에는 전혀 위협을 받지 않았으나 가장 나이벌이라 할 수 있는 모차르트를 독살 하려 했다는 루머가 생애에서뿐만 아니라 후세에 까지 그의 명성에 약간의 손상을 입혔다. 

작곡 외에 훌륭한 오페라 지휘자였으며 또한 베토벤, 슈베르트, 및 아직 어렸던 리스트 등 제자들의 교육에도 헌신하였으며, 1825년 5월 7일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에는 거의 세상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고 말았다.

살리에리의 작품 중 기악곡은 그 수가 주목할 만큼 많지는 않지만 그의 뛰어난 재능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2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바이올린과 오보에 첼로를 위한 협주곡 등의 작품은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특성과 비슷한 빈의 고전주의 형식을 갖고 있다.


* 작품 추천

sinfonia veneziana “ la scuola del’gelosi” 베네치아 풍의 교향곡
allegro assai
andantino grazioso-presto

sinfonia “ il giorno onomastico” 교향곡 “성인 축일”
allegro quasi presto
larghetto
minuetto
allegro

variazioni sull’aria “la follia di spagna” 스페인 라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

 
                  <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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