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블랙리스트, 'MBC' 블랙리스트

출연금지 명단이 아니라 블랙리스트가 문제된것 아닌가
최현순 | 입력 : 2010/07/23 [00:55]
“지금 장난하나! 방송 출연금지 명단이 아니라 블랙리스트가 문제 된 것 아닌가”

격분한 마음에 우선 이 한마디부터 목구멍에서 치솟아 오르고 말았다. 지난 7월 6일 개그우먼이자 방송인인 김미화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kbs 관계자로부터 블랙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kbs pd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좀 풀어달라는 짧은 하소연성 글을 남겼다. 
 
트위터가 인터넷에서 짧은 메모형식의 글을 통해 네티즌과 소통하며 친분,교류를 나누는 공간이긴 하지만 유명인사인 개그우먼 김미화씨의 글이기에 사건은 곧 일파만파 퍼지고 말았다.
 
김미화씨의 트위터 글은 곧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었고 kbs는 발끈하며 ‘명예훼손’이라며 김미화씨를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김미화 사건과 관해선 kbs가 이례적으로 매우 발빠르게 대응했다는 점이 눈길이 간다.
 
특히 kbs는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방송사 자체내의 ‘출연정지자 명단’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모두 18명의 명단이 적힌 이 리스트에 오른 방송인,연예인들의 대다수는 근 몇 년사이에 도박, 음주운전, 마약복용 또는 기타 사유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kbs의 이와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김미화씨가 폭로한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에 대한 세인의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편 김미화씨와 kbs측의 공방은 결국 19일 김미화씨가 영등포 경찰서에 출두 6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는데까지 이르렀다.

한편 김미화씨의 블랙리스트 운운 한 트위터글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한 가운데 인터넷 일각에선 또다른 블랙리스트 주장이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현재, 김미화씨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기도 한 모 인터넷 웹진 대표 ㅂ씨가 한 라디오 시사프로와의 인터뷰에서 오히려 ‘mbc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한때 안티조선 운동을 하기도 했고, 요즘은 조갑제, 김성욱, 조영환등 우리사회 대표적 극우인사들의 글을 자신의 웹진에 자주 소개하고 있기도 한 이 인사는 자신이 mbc 백분토론에 몇 번 출연한바 있고, 이후 또다른 주제의 백분토론에서 조희문 인터넷 문화협회 위원장에게 섭외가 들어왔을때, 조 위원장이 자신은 해당부분 전문가가 아니라며 ㅂ씨를 패널로 추천했는데 그때 ‘ㅂ씨는 곤란하다’는 말을 들었다는것이 그가 주장하는 mbc 블랙리스트 존재설의 요지다.

하지만 김미화씨 파동 와중에 난데없이 불거져나온 mbc 블랙리스트 존재설 파문에 대한 방송사측의 반응은 kbs와 크게 다를바 없다. 최기화 mbc 홍보국장은 ㅂ씨 주장에 대해 ‘대꾸할 가치도 없는 비상식적인 논리’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kbs의 방송출연 정지자 명단처럼 mbc의 방송출연 금지 명단 역시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물론, 여기에 공개된 인물들의 상당수도 대개는 사회적 물의를 읠으켰거나 방송사고를 낸 적이 있는 방송인, 연예인이며 mbc 방송출연 금지자 24명의 명단에 ㅂ씨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것이다. kbs가 되었건 mbc가 되었건 이른바 블랙리스트 주장에 대한 방송사의 대응방식은 붕어빵처럼 똑같다. 일단 ‘블랙리스트’란건 존재하지 않고, 대신 반론적 차원에서 내놓은것이 이른바 ‘방송출연 정지자’ 명단이다.
 
대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거나 방송사고를 일으켰던 방송인,연예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명단이고 사실 이와같은 명단이 존재하는건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거나 방송사고를 낸 적이 있는 공인을 공익성을 띠어야할 방송이 일정부분 제재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건 이른바 ‘정치적 이유’로 방송출연을 제지 당하고 있는 방송인이나 연예인이 있느냐 하는 문제다. kbs와 mbc는 국민과 시청자를 바보로 아는가. 정치적 핍박을 받아 한동안 tv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연예인은 지난 권위주의 정권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두룩하게 존재했음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 국민은 거의 없다.

거슬러 올라가 저 80년대 5공시절에도 꽤 유명한 아나운서 한명을 한동안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일이 있었고, dj,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뚜렷한 사유나 특별한 이유도 모른채 갑자기 방송에서 사라진 방송진행자, 연예인이 종종 있었다.
 
따라서 그와같은 블랙리스트가 방송가에 존재하지 않을것이라 확신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도 아니나 다를까 친노성향을 띠었던 방송인들이 몇차례 프로그램 개편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하나 하차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유야 프로그램의 시청률 저조, 오래된 진행자 교체등 제각기 그럴듯한 이유가 있지만 그 대상이 하필이면 하나같이 친노성향 방송,연예인이었다는 걸 뻔히 지켜본 국민이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고 대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방송인,연예인을 제재하는 출연정지자 명단은 존재한다’는 해명을 누가 신뢰할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방송, 연예인이 정치적 이유로 핍박이나 탄압을 받는일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서구 선진국에선 연예인들도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거나 민감한 시사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기입장을 밝히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우리는 방송, 연예인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자기소신을 밝히기엔 정치인들의 의식수준도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그러한 문화를 받아들일수 있을만큼까진 성숙하지 못했다.

따라서 김미화씨가 되었건 다른 누가 되었던간에, 방송사에 (정치적 이유로 출연을 기피하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주장에 명예훼손 운운하며 대응하는 방송사들의 입장은 실망스럽기 짝이없다. ‘블랙리스트는 없고 출연정지자 명단은 존재한다’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이런식의 해명을 그대로 믿어줄 국민과 시청자가 누가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설사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방송사가 그것을 정직하게 공개할리 만무하다. 방송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정치적 이유로 핍박받는 연예인,방송인 명단이 공개되었을때 사회에 미칠 파장을 모를리 없을것이다.
 
또 그와같은 명단은 설령 있더라도 방송사의 핵심적인 인사들 사이에서나 오가지 아무나 수시로 접할수 있도록 그렇게 허술하게 나돌아다니진 않을것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것 자체가 우리나라 방송사와 정치풍토가 그만큼 후진적인것을 증명하는것 밖에 안되는데 그걸 순순히 시인할 방송사가 누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기왕에 터진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한 kbs와 mbc 두 방송사의 대응방식은 더더욱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업자 아니랄까봐 대응방식이 붕어빵처럼 똑같다. ‘방송출연 정지자 명단은 존재해도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노골적으로 방송사가 시청자와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또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을 그런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식 해명을 순진하게 믿어줄 그런 어리석은 수준의 시청자들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 더더욱 화가 치민다. 방송사들에게 요구하는데, 시청자와 국민앞에 정직하라고까진 바라지 않겠다. 최소한 납득할만한 수준의 해명이라도 하는 그런 예의있는 방송사가 되어주기 바란다.


                                               [ 본보 제휴사: 신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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